得陇望蜀, 득롱망촉—이 성구는 得 얻을 득자, 陇 둔덕 롱자, 望 바랑 망자, 蜀 나라 이름 촉자로 이루어져서 롱을 얻으니 촉을 바라본다는 말로 되겠습니다.
득롱망촉 이 성구는 욕심이 끝없음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서한 말년 왕망이 왕위를 찬탈할 무렵, 극양에서 현관으로 있는 잠팽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 안되어 류현과 그의 아우 류수가 연합하여 여러갈래의 농민봉기부대를 이용하여 곤양일대에서 왕망군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한왕조의 통치를 회복했습니다.
이로 하여 류현은 한갱시제로 불리우게 되었는데 한군이 극양을 진공할 때 잠팽은 부대를 인솔하여 류현에게 항복했다가 후에 류수의 수하에 들어갔습니다.
류수는 하남을 평정한데 뒤이어 하북을 점령하고 산동으로 추격하여 농민봉기군을 탄압한 다음 스스로 한광무제라고 하였으니 약 2백여년간 지속된 동한왕조는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광무제 류수는 동부지구를 평정한 뒤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했습니다. 이때 잠팽은 대장군이 되어 류수를 따라 우선 천수를 깨뜨리고 뒤이어 편장군 오한과 함께 서성에서 외효를 포위했는데 이 외효라는 자는 왕망시기에 왕망의 수하에 있다가 후에 류현에게 붙었다가 다시 류수에게 항복했으나 이때는 류수를 배반하고 공손술켠에 가붙은터였습니다.
그리고 공손술은 왕망 때부터 촉지 즉 지금의 사천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성도에 도읍을 정하고 촉왕이라 자칭한 사람으로서 수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류수가 서진한 목적은 외효와 공손술이 각기 틀어쥐고 있는 롱 즉 지금의 감숙과 촉 즉 지금의 사천 두 지방을 평정하고 전국을 통일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얼마 안되어 류수의 이 목적은 전부 실현되고 외효와 공손술은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잠팽과 오한의 군대가 서성에서 외효를 포위했을 때 류수는 일이 었어 먼저 락양으로 돌아갔습니다.
<후한서 잠팽전>의 기재에 의하면 떠날 때 류수는 잠팽에게 서성을 공략한 다음 즉시 사천을 들이치라는 편지를 남겼는데 거기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은 지쳤어도 만족을 모르매, 이제 롱이 평정될 것인즉 다시 촉을 바라보아라>
성구 得陇望蜀, 득롱망촉은 바로 류수의 이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것을 노리고 탐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