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오늘은 이 와신상담이란 성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卧薪尝胆, 와신상담—이 성구는 卧 쉴 와, 薪 섶 신, 尝 맛볼 상, 胆 담 담자로 이루어졌습니다.
춘추시기의 오나라와 월나라 이 두 나라는 끊임없이 전쟁을 했었습니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 왕 합려는 병사를 이끌고 월나라를 들이치게 되었는데 그 번 싸움에서 오왕 합려는 크게 패하고 자신도 중한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임종시 합려는 아들 부차에게 월나라를 잊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2년후 월왕 구천은 부차가 밤낮없이 병사를 훈련시키면서 월나라에 대한 복수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손을 써서 오나라가 월나라를 들이치기전에 먼저 오나라를 진공하려 했습니다.
이에 신하 범리가 한사코 간언했습니다.
<안되나이다. 무기는 흉기라고 들었나이다. 싸움을 일으키는 것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옵고 무력쟁탈은 정사에서 하책인줄로 아나이다. 싸움에서 모험은 하늘이 금지하는 일이오니 이를 어겼다간 큰 해를 입게 될 것이나이다.>
이에 구천이 말했습니다.
<이는 짐이 이미 결정한 일이니 더 말치말게!>
뒤이어 월왕 구천은 무력을 발동하여 오나라를 진공했습니다.
미리 준비가 있었던 오나라는 모든 정예부대를 출동시켜 월나라의 진공을 막아내고 월나라 군사를 크게 패배시켰습니다.
월왕 구천과 그의 5천명 군사들은 회계산이란 곳에서 오나라 군사들에 의해 첩첩히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후회막급인 월왕 구천이 범리에게 물었습니다.
<짐이 경의 말을 듣지 않은 탓으로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고?>
이에 범리는 오나라에 사람을 파견하여 겸손하게 사과하고 후한 례물을 보내어 화해할 것을 월왕에게 권고했습니다. 범리는 만약 오나라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월나라 모든 것을 오나라에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월왕 구천은 범리의 이 제의를 받아들이고 대부 문종을 파견하여 오나라에 가서 화해하도록 했습니다.
문종은 오왕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월나라의 화해의사를 말했습니다. 문종은 월왕 구천이 오왕의 신하가 될 것을 바라고 있으며 그의 안해는 오왕의 첩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오왕은 마음이 조금 동해 화해청구를 받아들이려고 했으나 오자서가 이에 동의하지 말것을 한사코 권고했습니다. 오자서는 이 기회를 빌어서 마땅히 월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종이 돌아와서 이 일을 월왕에게 알리자 월왕 구천은 검을 빼들고 자기 안해를 죽이고나서 오나라와 끝까지 싸워보려고 했습니다.
이에 문종을 구천을 말리면서 말했습니다.
<오나라의 태재비는 여자와 재물에 탐욕스러운 사람이오니 그자를 이용하면 좋은 수가 있을것으로 아나이다.>
구천은 문종을 시켜 비밀리에 태재비에게 미녀들과 재물을 가져다 주도록 했습니다. 과연 태재비은 이를 쾌히 받아들이고 대신 오왕에게 좋은 말들을 해주겠다고 승낙했습니다.
비록 오자서가 월나라를 멸망시킬 것을 극구 주장했지만 태재가 오왕앞에서 많은 좋은 말을 한 탓으로 오왕은 끝내 군사를 철수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하여 월나라는 한차례 재앙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갖은 굴욕을 받은 월왕 구천은 어느때 가서든지 복수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일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포기하고 매일 섶우에서 자면서 끼니마다 먼저 쓰거운 열을 맛보군 했습니다. 쓰디쓴 열을 맛볼 때마다 구천은 이 치욕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일깨워주군 했습니다.
몇년 후 월나라는 끝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기록되어있습니다.
卧薪尝胆, 와신상담이란 성구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 성구는 원쑤를 갚기 위해서 스스로 분발하여 노력하거나 큰 뜻을 위해서 간고분투하면서 뜻을 키우는 것을 형용할 때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