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발자국 걷는 사이에 시 한수를 짓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총명한 사람이겠죠? 그럼 성구이야기 오늘은 바로 일곱 발 걷는 사이에 시 한수 지어냈다는 성구의 유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일곱 걸음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七步之才, 칠보지재를 성구가 있습니다.
七步之才,칠보지재—이 성구는 七 일곱 칠자, 步 걸음 보자, 之 갈 지자, 才 재주 재자로 이루어져서 뛰어난 글재주를 형용할 때 쓰입니다.
삼국시대의 영웅이었던 위왕 조조는 무장 출신이었지만 건안 문학의 번영을 가져왔을 정도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맏아들인 비와 셋째 아들인 식도 글재주가 출중했습니다. 특히 식의 시 재주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그래서 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비를 제쳐놓고 식으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비는 어릴때부터 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오던 차에 후사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식에 대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습니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비는 후한의 헌제를 페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문제라 일컫고 국호를 위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문제는 동아왕으로 책봉된 조식을 불러 이렇게 하명했습니다.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짓도록 하라. 짓지 못할 땐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조식은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읊었습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본시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심히 핍박하는가>라는 뜻의 칠보시를 듣자 문제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칠보지재란 성구는 바로 이렇게 유래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성구는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