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一鳞半爪" 이 성구는 하나 일(一)자에 비늘 린(鳞)자, 절반 반(半)자에 오이 과(瓜)자로 이루어 졌다.
뜻풀이
구름 사이로 드러난 용의 비늘 한 조각과 발톱 반쪽을 가리킨다.
유래
당대(唐代)의 가장 유명한 시인으로는 백거이(白居易)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시는 강렬한 서정을 띠면서도 어구가 통속적이며 유창한 특징이 있어 글을 배우지 못한 노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백거이는 기층 백성들과 널리 접촉하면서 평소 그들의 생활을 알아보기도 했다.
동도(东都)에서 직무를 맡고 있을 때 백거이는 늘 술로 세월을 즐기며 살았다. 당시 상서(尚书) 노간사(卢简辞)에게는 강옆에 위치한 별장이 한채 있었다. 겨울이 되면 노간사는 아들과 조카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 아름다운 경치를 흔상하곤 했다. 어느날, 그들은 도롱이와 삿갓을 쓴 두 인부가 작은 배를 타고 오는 것을 보았다. 뱃머리에는 청색 장막(帐幕)을 드리웠는데 거기에는 평민과 스님이 마주앉아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는 노상서의 집앞을 지나게 되었다. 배안에서는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렸고, 이따금씩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노상서는 눈앞의 정경에 황홀해졌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서야 아까 시를 읊었던 그 평민이 바로 백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백거이는 스님과 함께 건춘문(建春门)에서 향산의 절로 향하던 길이었다.
향산(香山)절에 도착하자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일찍부터 백거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과 요리가 상에 오르자 백거이는 "이렇게 아름다운 밤에 여러 벗들과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데 우리 한번 시로 벗을 사귀고 나서 다시 술을 마시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찬성했다. 백거이는 한참 생각하더니 "지난번 모임에서는 <남조(南朝)의 흥성과 쇠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으니 이번에는 <금릉(金陵)을 그리워하며>란 제목으로 시를 짓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신이 나서 붓을 들었는데 유독 류우석(刘禹锡) 한사람만이 시를 짓기 전에 술부터 따라 마셨다. 사람들은 어찌 시도 짓기전에 술부터 마시는 것이냐고 다급히 말렸다.
류우석은 당시 유명한 시인이며 또한 철학가이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더니 종이와 붓을 가져다 단숨에 시를 다 써내려갔다.
시를 읽어본 백거이는 "정말 훌륭한 시로구나, 원래는 모두가 함께 용을 찾아내려 하였으나 네가 먼저 용구슬을 찾았으니 나머지 비늘과 발톱을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감탄했다. 그 뜻인즉 중요한 부분을 다 찾아냈으니 나머지 부분은 별로 쓸데가 없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웃으며 붓을 놓고 즐겁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一鳞半爪"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