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4 18:28:59 | cri |
(사진설명: 팔달령장성)
만리장성은 몇천년전 북방 유목민족의 남침을 막기 위해 고대중국이 건축한 방어용성벽으로 동쪽은 하북성(河北省) 진황도(秦皇島) 산해관(山海關)에서 시작되어 베이징 북쪽 험준한 산발을 타고 서쪽끝으로 감숙성(甘肅省) 하서주랑에까지 우불구불 뻗어있다.
만리장성은 진(秦)나라시기에 축조된 "진장성(秦長城)"과 명나라시기에 축조된 "명장성(明長城)", 두가지로 구분할수 있는데 진장성은 오랜 역사속에서 성체가 벌써 훼손되어 현재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장성은 명장성이다. 명장성의 길이는 8851.8km, 통념상 "만리"장성이라고 부르는것은 당시 진장성의 길이는 확실히5000여km 즉 1만여리로 만리장성이라고 호칭했으나 현재의 명장성까지 일컬어 "만리"라고 부르는데는 장성의 길이를 볼 때 타당치는 않다.
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의 저서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장성 성벽은 동쪽 요동(遼東)반도에서 시작해 서쪽 임조(臨洮), 즉 오늘날 감숙 민현(岷縣)까지 축조되었다. 진장성은 명장성보다 북쪽에 위치했던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설명: 팔달령장성 성벽)
진장성은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황제 영정이 초(楚), 연(燕), 조(趙) 등 춘추전국시기 국가들이 각자 자국방어용으로 축조한 장성들을 허물 곳은 허물고 이을 곳은 다시 이어 흉노기병방어에 사용했고 명장성은 원(元)나라를 멸망한 명나라가 원군 잔여기병 남침방지에 사용했다.
명장성의 성벽 높이와 구조는 동쪽과 서쪽이 다르다. 산해관, 팔달령(八達岭)지역을 비롯해, 심산골짜기나 가파른 벼랑끝에까지 돌을 쌓아 축조한 장성의 동쪽구간은 대체로 서쪽보다 성벽이 견고하다. 서쪽으로 가면서 사막지대에 이르면 장성 일부 구간의 폭은 1-2m정도인 곳도 있다. 장성은 100여m간격에 망루를 하나씩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사진설명: 철통같은 팔달령장성 성체)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는 명장성 팔달령 구간, 즉 팔달령장성은 첩첩산중에 뿌리를 박은 요새이다. 아아하게 치솟은 칼날같은 기암괴석 자체만으로도 그 바위에 산을 넘어오는 말들의 배가죽이 스쳐 찢어질것 같은데 거기에 또 철통같은 성벽까지 겹겹히 올리쌓고 망루에 병사마저 숨어 활을 쏘았을려니 아무리 영용무쌍한 원군 잔여기병인들 날개가 달려있지 않은 이상 재차 베이징을 넘본다는것은 과연 있을수도 없을 일이였을것이다. 그만큼 진장성이나 명장성은 북방 유목민족의 남침을 가로막는데서 거대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사진설명: 저 멀리 뾰족한 산봉우리와 팔달령장성 외곽)
팔달령장성은 명효종(明孝宗)재위시기인 1505년에 공사를 시작해 명세종(明世宗), 명신종(明神宗)재위시기에 증축되었는데 전체 명장성에서 가장 대표적인 방어구간으로 불리운다. 1953년 팔달령장성은 관광지로 개방, 현재 개방구간은 3741 m다. 이중에 남쪽구간이 1176 m, 북쪽구간이 2565 m를 차지하는데 구간전체에 띠엄띠엄 망루가 16개나 설치되어있다.
(사진설명: 팔달령장성 성벽과 벽돌)
팔달령장성에는 방어용으로 차도성(岔道城)이라고 부르는 건축물을 세웠을뿐아니라 팔달령 입구 산기슭에는 당시 대포 다섯문을 설치한 흔적도 있다.
차도성은 높이가 8.5 m, 동서길이가 510 m, 남북너비가 185 m로 전반 면적이 8.3만㎡인데 봉화대가 두곳 설치되어있고 건물담벽에는 병사가 조망하고 적에게 활을 쏠수 있게 구멍을 작게 뚫어놓았다.
(사진설명: 방어용 군사요새-팔달령장성)
5개 대포중에 가장 큰것은 포신이 2.85 m, 구경이 105㎜짜리로 사격거리가 1000 m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팔달령장성을 망라한 장성축조물은 고대에 진행한 인류사상 가장 거대한 공사인만큼 적지 않은 인부의 목숨을 대가로 했다.
(사진설명: 색바랜 장성)
알려진데 의하면 진나라는 진장성건축에 군대와 인부를 도합 30만명 동원했다.
진장성 건축공사에는 만리장성을 울음으로 무너뜨렸다는 맹강녀(孟姜女)라고 부르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전설이 얽혀있어 관광객을 안타깝게 만든다. 전설내용을 보면 결혼 한달만에 장성축조현장에 부역으로 끌려간 남편을 찾아 맹씨가 장성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사망한 상황, 슬픈 맹씨가 장성밑에서 꼬박 열흘을 흐느껴울자 장성이 무너지며 남편의 유골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다. 또 일부 설에는 흐느껴울던 맹강녀가 그자리에 망부석이 되었다고 전하지만 전설결말과 관계없이 만리장성축조과정에 고대 중국인들의 지혜와 응집력, 분투정신이 반영된것만은 확실하지만 그 희생도 컸음을 간과할수 없다.
(사진설명: 장성의 어제, 그리고 오늘)
1987년 유엔은 만리장성을 "세계문화유산"명록에 등재시켰다. 1991년 8월 유네스코는 팔달령장성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 현재까지 미국 전 대통령 닉슨과 레이건, 영국 전 총리 마가렛 대처, 구소련의 총서기 고르바쵸프 등 국가원수와 유명인사 무려 372명이 이곳 팔달령장성을 찾았고 국내외 관광객 총 1억 3천만명이 이곳에 발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사진설명: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다-모택동")
(사진설명: 세계관광 명소 베이징 팔달령장성)
(사진/김동광 글/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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