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태산여행
중국의 명산들 중에서 태산처럼 옛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숭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명산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태산하면 예로부터 제왕들이 제사를 지내는 전문장소로 간주되어 왔으며 중국 고대문명과 신앙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와 함께 태산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간주
해발높이 1500여미터의 태산은 중국 동부 산동성 태안시에 위치해 있다. 태산의 태는 중국어에서는 아름답고 안정하다는 뜻이다. 중국어 속담에 <태산이 평안하면 온 천하가 평안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은 태산을 극히 중요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천하제1산>으로 불리고 있다.
고대 황제들이 태산을 오를 때 그 기점은 언제나 산기슭에 있는 대묘(岱廟)였다. 고태안성의 남문에서 시작하여 태산 산정까지 직통하는 황제길이 있는데, 대묘는 바로 이 길의 중추선에 놓여 있다. 대표는 제왕들이 등산대전을 지내던 곳으로 이곳에 있는 석각과 비림들은 하나의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런 석각비림들은 중국 고대의 제사의식과 옛날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모시던 풍속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가이드 이신봉씨는 기원전 3세기부터 제왕들은 매번 태산을 찾을 때마다 대묘에 발자취를 남겼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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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석들은 대부분 황제들이 왔을 때 건설된 것입니다. 황제들은 이곳에 온 후 비석에 글을 남겼는데 주로 사찰보수, 태산신 제사 등과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비석에 새겨진 글들은 많이 풍화되었습니다.>
간주
대묘에서 돌계단을 따라 태산으로 오르다보면 태산의 제1산문인 천문(天門)을 지나게 된다. 이곳에는 돌비석과 "공자등림처"라고 하는 패방이 있다. 중국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가 태산에 올랐다가 태산의 웅위로움에 천하가 보잘것 없어보인다고 감탄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공자등림처"패방은 바로 후세들이 공자의 태산등산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천문에서 제2산문인 중천문까지 가는 사이에 우리는 "금강경"을 볼 수 있다. 이 "금강경"은 산길옆에 있는 큰 돌위에 새겨져 있는데 지금까지 천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발높이 800여미터의 중천문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도시속의 고층빌딩들이 마치도 바닥판위에 있는 바둑알처럼 촘촘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면 구불구불한 산길이 마치도 구름다리인양 허공에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천문에서 출발하여 케이블카로 지세가 가장 험악한 구간을 건너면 제3산문인 남천문에 이른다. 지세가 험악한 구간에 이르면 많은 여행객들이 케이블카를 이용하지만 사실 등반도 가능하다. 올해 60세 나는 여행객 유여사는 태산에 오면 험악한 산길을 직접 걸어보아야 하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서 참으로 유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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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케이블카를 탄다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수림속을 걷는다면 정말 좋을텐데, 오늘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서 조금 유감스럽습니다. 직접 걸어 올라왔다면 등반의 쾌감을 진정으로 맛볼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간주
태산으로 오르는 등산길에서 가장 험악하고 장관인 구간은 바로 십팔반이다. 태산의 십팔반은 세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십팔반의 세 구간은 또 "빠른 십팔반, 느린 십팔반,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십팔반>이라 불린다. 세 구간의 돌계단은 1600개가 넘지만 길이는 천미터도 되지 않으며 반면 수직높이는 400미터나 된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점점 가파로와 지는데 가장 가파른 곳까지 이르면 돌계단에 발 하나를 편히 놓을 수도 없다. 때문에 이곳을 오르는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지팡이를 꼭 짚고 거센 숨을 몰아쉬면서 조심조심 산을 올라야 한다.
남천문까지 오르면 시야가 갑자기 확 트인다. 고대 시인들이 형용한바와 같이 이곳에 서면 "만리청풍이 오는 듯"하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눈앞에 가없는 흰구름, 어렴풋한 산봉우리들이 그림같이 펼쳐지면 산을 오르던 그 고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계속 동으로 걸어가면 번화한 천가-하늘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태산에서 비교적 평탄한 구간으로 현재는 상업거리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할수 있으며 또 숙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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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에는 "벽하사(碧霞祠)"라고 하는 도교유적이 있다. 도교는 중국의 본토 종교로 대산에는 도교건축들이 아주 많다. 이 중에서도 벽하사는 가장 유명하다. 대묘관리처의 왕준산선생이 벽하사에 깃든 이런 전설을 들려주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벽하원군은 태산의 보호자로 그는 오빠인 황비호장군과 지반을 쟁탈한 적이 있었다. 당시 누가 먼저 태산에 오르면 태산을 통치할 수 있었는데, 무예가 오빠만 못했기 때문에 벽하원군은 작은 꾀를 부려 결국은 무예가 강한 오빠를 이기고 이곳을 통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왕준산 선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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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일찍 벽하원군은 사람을 시켜 수놓이 꽃신을 후산에 묻어두게 했습니다. 무예가 강한 오빠가 태산에 와서 며칠을 기다렸는데 여동생 벽화원군이 그때야 느릿느릿 다가와서 하는 말이 자신은 벌써 일찍부터 이곳에 와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동생이 이 벽하사에 남게 되었고 오빠인 황비호는 대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간주
지금 벽하사는 벽하원군의 동상을 여전히 모셔두고 있는데 그 자태가 아주 점잖다. 대묘에 있는 수많은 제왕비석들과 마찬가지로 태산위에는 또 마애비석이라고 하는 유명한 비석이 있다. 1300여년전 당나라 이융기 황제가 태산에 제를 지내려 왔다가 제사한 글이 13미터 높이의 절벽에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마애비석이다. 사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들과 제왕들이 모두 태산의 낭떠러지에 태산의 웅위로움을 칭송하는 먹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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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최고 정상인 옥황정은 마애석각의 위에 있다. 이곳에 있는 평지는 옛날 황제들이 향을 피우고 제를 지내던 곳이다. 태산에 올라 제를 지내는 것은 고대인들의 아주 숭고한 의식으로 황제는 천지제를 지내면서 천지신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럼 가이드 송홍강씨의 소개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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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제는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입니다. 산정에서는 봉천이라고 하는데 원시사회때는 목재를 태워 하늘제를 지내다가 나중에 향을 피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정에서 지내는 제천입니다. 그 뜻은 자신의 공로를 하늘에 돌린다는 뜻입니다. 산기슭에 내려가면 또 네모난 제전이 있는데 작은 언덕위에 제전을 두고 땅에 제사를 지냅니다. 역시 공로를 땅에 돌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지전례입니다.>
간주
이번 태산여행에서 올해 78세 나는 미국 여행객 데비드 브라트선생을 만났다. 그는 중국에서 생활한지 몇년이 되며 현재는 산동성 소재지 제남의 한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한다. 그는 태산 국제등산축제에 여러번 참가한 적이 있다. 체중에 꽤 많이 나가는 그가 옥황정에 올랐을 때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그래도 문화내함이 깊은 태산에 오르는 것은 아주 도전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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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또 아주 높아서 오르기가 쉽지 않지만 난 그래도 태산의 역사, 태산의 문화가 좋습니다. 제왕들이 이곳에서 제를 지내면서 하늘이 복을 내려줄 것을 빌었다고 하죠.>
간주
옥황정의 경치는 아침 저녁으로 다르다. 먼동이 터올 때면 사람들은 조용히 이곳에서 해뜨기를 기다린다. 어두운 장막이 걷히고 날이 서서히 밝아오다가 갑자기 둥근 해가 구름층을 뚫고 우쏙 솟아오른다. 순간, 산중턱을 감돌던 흰 구름바다는 온통 금빛으로 물들며 숨죽이고 있던 여행객들은 환호를 터뜨린다. 낮이면 이곳은 구름이 걷힌 뒤여서 멀리 바라보면 황하, 대문하가 보인다.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산봉우리들은 모두 발밑에 있는 듯하다. 저녁이 되어 태양이 서서히 구름속으로 잠들 때면 산정은 또 온통 금황색의 물길속에 휩싸인다. 어두운 장막이 완연히 드리우면 가을벌레가 울기 시작하며 태안성은 하나둘 등불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태산의 고요한 가을밤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간주
태산으로 가는 교통편은 아주 편리한데 기차나 버스로 모두 태안시에 이를 수 있다. 태산의 유명한 현지 미식들로는 태안점병, 삼미두부, 태산불고기 등이 있다. 태산 불고기가 태산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6년전의 일이다. 태산불고기는 주로 세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양고기에 양념을 뿌린 후 가늘게 썬 양파와 함께 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편으로 썬 양의 내장꼬치를 작은 냄비에 담아 숯불에 삼는 것이다. 그외 하나가 우리가 흔히 먹는 양꼬치가 있다. 태산불고기의 매력은 모두 뷔페식이어서 양도 충족하고 또 맛도 진하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으면서 큰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산동사람들의 전형적인 음식문화이기도 하다. 이런 미식들은 가격 또한 저렴해서 인민폐 몇십원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