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 카자흐족 목축민의 사랑을 받는 리진서(李振西) 의사
청취자 여러분, 중국 신강 우룸치현의 천산(天山)의 목축구에는 카자흐족 목축민들의 사랑을 받는 의사가 한분이 있습니다.
이곳 목축구에서 30여년간 생활하면서 목축구 군중들의 건강을 지키고 있는 이 분이 바로 우룸치현 토리향 위생원의 리진서 원장입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카자흐족 목축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리진서 의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리진서 원장은 첫 인상에 얼굴이 수척하고 풍상고초를 많이 겪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크가 크지 않고 얼굴색이 검어 60살이 넘어 보이지만 사실 올해 나이가 53살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랜세월 카자흐족 목축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는 카자흐족의 일상용어들을 유창하게 구사할수 있습니다. 지어 중국말을 하면서도 카자흐어의 방언을 섞어 쓰군합니다.
얼마전 그는 왕진가방을 메고 목축구로 순회 진료를 나갔다가 백건촌(白建村) 카자흐족 목축민 바산 베크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올해 67살인 바산 베크는 친인을 대하듯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하며 리전서 의사와 포옹을 합니다.
바산 베크의 말입니다. 음향1
"동생 잘 보냈나? 일은 바쁘지 않고. 좋은 사람이지."
이 두사람은 지난세기 70년대부터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중의세가(中醫世家)에서 태여난 리진서는 감숙(甘肅)으로부터 신강에 와서 우룸치현 토리향 백건촌에서 의사로 있었습니다.
당시 젊고 기력이 왕성했던 바산 베크는 이 마을의 촌지부서기로 있었습니다. 이 마을의 촌민들은 대부분 카자흐족으로 한어를 아는 사람은 바산베그를 비롯한 몇명밖에 없습니다.
이진서는 카자흐족 목축민들의 생활에 차츰 적응해가면서 시간을 짜내 바산베크에게서 카자흐족의 일상용어를 배웠습니다. 10여년간의 농촌의사생활을 통해 리진서와 바산베크는 깊은 우정을 맺었습니다.
지난세기 80년대 중반기 리진서는 우룸치현 토리향 위생원으로 전근갔습니다. 1990년 그는 이 위생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우룸치현 토리향은 우룸치현정부에서 3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합니다. 목축업을 위주로 하는 이 향은 우룸치현의 주요 목축구의 하나입니다.
전향에는 4000여명의 목축민들이 있는데 이들은 천산의 깊은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외지에 나가 병을 보이기 아주 불편했습니다.
1992년 리진서는 휴대폰을 샀습니다. 주야를 불문하고 눈과 비가 오는 날씨를 불문하고 목축민들의 병치료 전화를 받기만 하면 그는 왕진 가방을 둘러메고 인츰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바산베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향2
"우리가 전화를 하면 리진서 의사가 인츰 달려옵니다. 출근시간이든 휴식시간이든 상관없이 주야를 불문하고 제때에 환자집으로 옵니다."
우룸치현 정부관원 역경(易卿)도 감명깊게 이렇게 말합니다. 음향3
"군중들은 병을 보임에 있어서 120 구급전화를 치는것이 아니라 리진서 의사의 휴대폰전화를 찾습니다. 이진서 휴대폰이 120 구급전화가 되었습니다."
리진서의 핸드폰이 120번 구급전화로 된것은 그에 대한 카자흐족 목축민들의 최대의 신임과 표창으로 될것입니다.
토리향에 뿌리를 내려서부터 지금까지 리진서 원장은 연인수 20여만명에 달하는 현지 군중들을 치료해주었는데 위생원은 그의 집과 별반 다를바 없습니다. 군중들을 치료하기 위해 그는 늘 병원에서 생활했습니다.
2001년 겨울, 향위생원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양권구(羊圈溝)촌의 한 임산부가 대출혈로 앓았습니다. 그러나 위생원에는 수술조건이 없었습니다. 리진서는 영하 30도의 혹독한 추위속에 무개차에 환자를 싣고 100여리밖에 있는 우룸치시 친선병원으로 달려가 환자의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카자흐족은 소금과 고기를 많이 먹고 채소를 적게 먹는 음식습관이 있어 고혈압과 심뇌혈관 질병을 앓는 사람이 많습니다. 리진서는 목축구에 깊이 들어가 이런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아주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어느 한번 위글족 여성 아와르 구리가 일을 하다가 갑짜기 쓰러졌습니다. 리진서가 전화를 받았을 때는 아와르 구리는 이미 심장박동이 멎고 맥박도 거의 없었습니다. 리진서는 다년간의 경험에 따라 긴급구조를 벌려 그녀를 사경에서 되살렸습니다.
아와르 구리는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음향4
"2006년 8월의 어느날 저는 갑짜기 쓰러져 심장도 박동을 멈추었습니다. 리진서 의사는 심근경색으로 진단하고 저를 구했습니다. 지금도 늘 저희집을 찾아 문안합니다. 정말로 고마운 리진서 원장입니다."
리진서 원장은 목축민들의 병만 치료해준것은 아닙니다. 그는 선후로 자기의 돈 인민폐 6만원을 내서 경제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도왔습니다.
이 마을에는 매신부(買新富)라고 부르는 회족 농민이 있습니다. 10년전 그의 딸이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리진서 원장을 찾아 도움을 청했습니다.
리전서 원장은 두말없이 우룸치시의 여러 병원을 다니며 대학동학들과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해 매신부의 딸이 제일 저렴한 비용으로 병을 치료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 병치료에서 매신부는 돈 한푼도 빚을 내지 않았습니다.
지금 매신부의 딸은 결혼해 아이도 낳고 행복한 생활하게 살고 있습니다. 매신부도 식당을 꾸리고 자동차를 사서 수송업도 하면서 현지에서 이름높은 부유한 가정으로 되었습니다.
10여년전 딸이 병치료하던 일을 회억하면서 매신부는 감동을 금치못합니다. 음향5
" 저는 원래 아주 가난했습니다. 자식들이 병치료에 쓸 단돈 5원도 마련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지난해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혼례차를 임대하는데만 인민페 2만원을 썼습니다. 이런 좋은 생활은 리전서 원장의 덕택입니다. 제가 제일 어려울때 이분이 우리를 도왔습니다."
농촌에서 흔히 발생하는 병들을 치료하는 외에 리진서 원장은 또한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음식습관을 홍보하면서 점차 마을사람들의 생활습관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더욱 많은 목축민들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카자흐족 목축민들은 밥이나 채소를 많이 먹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고혈압, 뇌경색 등 심뇌혈관 질병을 앓는 사람들도 줄어들었습니다.
리진서 원장의 뛰여난 기여를 표창하기 위해 2010년 국무원에서는 그에게 "서부개발공헌상"을 수여했습니다. 향의 간부는 리진서 의사가 너무 힘들게 사업하는것을 보고 그더로 조건이 좋은 농업구 병원으로 전근갈것을 권유했지만 리진서는 좋은 말로 거절했습니다.
리진서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향6
"지난 30여년간 토리향에 있으면서 저는 많은 농목민들과 깊은 감정을 맺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들을 떠날수 없고 이들도 저를 수요합니다. "
30여년간의 의사활동에서 리진서 원장은 자신이 몇차례의 왕진을 나갔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토리향 카자흐족 군중들과 쌓은 깊은 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몇년전 리진서 의사의 딸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향에 사는 카자흐족 목축민들은 너도나도 혼례식 준비에 바삐 돌아쳤습니다.
목축민들은 카자흐족 혼례풍속대로 신혼방을 꾸미고 성대한 혼례식을 올렸습니다.
리진서 의사와 30여년전부터 인연을 쌓은 목축민 바산베크는 리진서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음향7
"우리 토리향 사람들은 모두 리진서의 봉사태도에 만족합니다. 그는 민족을 따지지 않고 모두 열심히 봉사합니다. 그는 좋은 의사, 좋은 원장입니다. 우리를 친형제처럼 대합니다. "
카자흐족 목축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리진서 의사에 대한 소개로 이 시간 [사회생활] 방송을 전부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희는 다음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