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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지막 한수
2009-04-23 17: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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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 계열소설상 수상작(2000년)

 

김 훈

병아리가 죽었다. 징후적인것이였다. 그가 죽기를 각오한 날에 병아리가 죽었다는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예고같았다. 두다리를 쭉 뻗고 굳어진 병아리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자기의 죽은 모습도 이런 꼴이겠다고 생각을 해봤다. 처참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허거픈 웃음이 나갔다.

병아리는 아이것이였다. 봄철이면 병아리를 파는 사람들이 북경의 거리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사람들은 생명체인 병아리를 아이들 장난감으로 팔고 산다. 병아리들은 애들 손에서 장난감으로 몇일 주물리다가 나중에는 죽어간다.

며칠전 그도 아이한테 병아리 한 마리를 사주었다. 다섯 살난 아이는 잘 때면 꼭 병아리를 넣은 자그마한 함을 베개머리에 놓고서야 잠에 들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텔레비죤수상기앞에 붙어앉아 시간을 보낸다. 병아리를 사준후로는 아이는 텔레비죤수상기앞을 떠나 병아리와 무슨 말을 쉴새없이 조잘거리며 놀았다. 아이는 병아리한테 리나라는 이름까지 달아주었다. 언젠가 아이는 에미한테 녀동생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에미는 아이가 소학교에 가면 녀동생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때 아이는 동생이 만들어지면 이름을 리나라고 지어야 한다고 했다. 에미가 가출해버리자 아이는 녀동생을 만들 수 없다고 며칠 울었다. 녀동생이 생기면 지어줄 이름을 아이는 병아리한테 지어주었다. 그러고보면 병아리는 아이한테는 녀동생 맞잡이였다.

그런 병아리가 죽었다. 병아리의 죽음을 아이한테 보일수 없었다. 아이가 깨나기전에 그는 병아리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곤 담판석상에 나설 때 입던 멋진 명표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는 죽음도 일종 인생의 마지막 담판이라고 생각했다.

1915년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당한 루지테이니어호와 함께 수장된 미국의 연극 감독인 프로우먼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할 것 없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

그는 프로우먼의 그 말에서 죽음을 택할 용기를 얻었고 또 그 말로 자기의 죽음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하긴 《자살은 참회의 기회를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살인의 최악의 행태》라고 영국의 시인 콜린즈가 말했지만 그러나 독일의 철학가이며 시인인 니체는 《자살하려는 생각은 커다란 위안으로서 자살로하여 사람은 수많은 괴로운 밤을 성공적으로 지낸다》라고 했다. 또한 무덤은 망각의 대안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에 대한 망각을 위해 그는 망각의 그 대안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라는 죽음을 맞이할 곳을 그는 북경 석가장간 고속도로우로 세워진 인도교로 택했다. 한것은 그로하여금 망각의 대안으로 가는 길을 택하게 한 빌딩이 바로 그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변에 8층으로 된 빌딩은 그가 자금을 모아 짓다가 만것이다. 인민페로 거의 4천여만원이 들어갔다. 채 완공되지 못하고 콩크리트구조물만 엉성하니 솟아 창문구멍들만 훵하게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마치도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같아 보였다.

인도교아래로 지나간 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시속 백키로 속도로 오가고 있다. 이제 그가 인도교우에서 몸을 날리면 차에 치인 그의 몸뚱이가 날아오를 것이다. 언젠가 그는 텔레비죤에서 사람이 차에 치여 죽는 장면을 보았다. 교통규칙을 어기고 차도를 횡단하던 사람이 시속 백키로의 속도로 달려오는 차와 충돌하는 순간 사람 몸체가 신기하게도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그 사람이 생의 모든 번뇌를 잊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흐르는 차량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약간은 후회했다. 가급적이면 생을 마감할 장소를 경관이 좋고 조용한 곳으로 택했더라면 더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쩔수없이 한 장소를 머리에 떠올렸다.

그 곳은 기암과 운해로 소문난 황산이였다. 6년전 신혼려행때 그는 안해와 함께 황산에 갔었다. 운해와 일출이 장관인 황산에서 잊혀지지 않는 곳이 한 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련심쇄(連心鎖)》라고 이름지어진 곳이다. 주변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벽가에 유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쇠사슬을 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쇠사슬에 는 각양각색의 자물쇠가 빈틈없이 매달려 있었다. 근처엔 자물쇠만 파는 사람까지 있었다. 영문을 물으니 그 대답이 이러하다.

옛날 옛적, 서로 사랑하는 처녀, 총각이 이승에서는 결합할수 없어 저승에 가서라도 영원히 함께 살자고 둘의 마음을 련결한다는 뜻에서 《련심쇄》를 절벽가에 걸어놓고는 함께 절벽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친 두 련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또 변치않는 사랑을 다짐하는 뜻에서 지금도 황산을 찾은 부부들이나 련인들은 꼭 이곳을 찾아와 자물쇠를 사서는 쇠사슬에 달아놓는다고 한다. 그날 그도 안해와 함께 자물쇠 하나를 사서 쇠사슬에 달아놓았다.

《사랑을 위하여 절벽아래로 뛰여내릴 용기가 있나요?》

안해가 묻는 말에 그는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암, 절벽이 아니라 칼산 불바다라도 서슴치 않지.》

그날 안해는 장담하는 그의 가슴에 행복에 겨운 얼굴을 묻었다. 그 뒤로 4년이 지나서 안해는 가출하면서 그에게 쌀쌀하게 이런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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