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 한족사람이 폭행으로 숨졌는지 확인하지 못했으나 숨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하면서 "현장은 핏자국이 가득했으며 젊은 사람의 얼굴도 피투성이가 되어 알아볼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싱크라일은 모 대학의 강사입니다. 그는 라싸에서 겪은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이미 소동은 준비하고 있은 듯한 듯한 느낌을 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란의 첫날인 3월13일 싼야사를 관광하기 위해 버스를 탔을 당시 벌써 경찰들이 버스에 올라 검사를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들은 여권을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승려와 비구니들을 차에서 내리도록 했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중국 정부당국이 곧 발생하게 될 소란을 알고 있었다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토론토스타지"는 장편 보도의 끝에 카나다 관광객 몇명이 라싸에서 겪은 공포와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웨트모레와 켄우드, 신크라일은 모두 티베트에서 중국 정부당국과 티베트족들의 환대를 받았다고 적었습니다.
웨트모레는 "우리는 아주 슬프고 두려운 것을 봤고 또 일부 놀라운 것도 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줄곧 아주 아주 훌륭한 접대를 받았으며 훌륭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영국 "타임스지"는 3월19일 "관광객들, 티베트 소란의 놀라움과 공포를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고 티베트를 갓 떠난 외국인들이 목격한 라싸 소란의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타임스지"는 그 전 주 라싸에서 발생한 이틀간의 소란을 묘사하면서 티베트를 떠난 관광객들은 큰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으며 특히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티베트족 폭도들이 돌멩이로 길을 가는 한족들을 구타하는데 대해 깊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보고했습니다.
현장에서 전반 과정을 목격한 서양관광객은 사람들이 습격목표를 보기에 한족인듯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물건으로 정했으며 오토바이를 탄 사람을 구타하고 철봉으로 그들을 구타했으며 그 차에 불을 질렀다고 말했습니다.
"타임스지"의 논평은 이런 서양관광객들은 폭란현장의 잔혹함을 설명했으며 이는 중국측이 말한 티베트 지역에 평화와 번영을 갖다줬다는 설법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달라이 라마가 일관하게 주장하던 비폭력항쟁 설법도 파괴했다고 논술했습니다.
카나다의 대학생 켄우드는 18일 라싸에서 까뚜만두에 도착한후 기자의 취재를 받으면서 "라싸에서 발생한 모든 것은 어느편에도 서기 어렵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0여일간 라싸를 여행하면서 "티베트족들이 자체문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설법에는 공감하나 그들이 한 행동은 공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켄우드는 라싸시 중심의 베이징로를 따라 걸어갈때 군용트럭 네대가 라모체사로 통하는 작은 길에 멈춰서는 것을 봤으며 일부 사람들이 트럭에 거대한 돌들을 던져 트럭의 유리를 깨뜨리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그는 곧이어 3, 40명의 무장경찰이 방패와 곤봉을들고 다른 트럭에서 뛰어내렸다고 회억했습니다. 켄우드는 무장경찰은 모든 길어구를 봉쇄했으나 잠깐사이에 많은 티베트족들에게 포위당했고 티베트족들은 무장경찰들에게 돌을 던졌다고 했습니다. 켄우드는 돌을 가득 담은 상자 세개는 분명히 봤으나 누가 폭도들에게 그 돌들을 제공해 줬는지는 보지 못했다고 회억했습니다. 켄우드는 몇분 뒤 경찰이 다가오자 티베트족 청년 두세명이 라모체사쪽으로 도망갔으며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도망을 갔으나 잠시후 되돌아 와서 한족들의 상점과 길가는 베이징로의 한족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켄우드는 "타임스지"에 적어도 다섯명의 한족이 많은 티베트사람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직접 봤으며 그들중에는 구타당한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오토바이를 탄 젊은 한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켄우드는 그 전 주말 자신은 줄곧 베이징로 동쪽의 호텔에 묵었으며 밖의 총소리와 최루탄소리를 들을수 있었고 군용차가 거리를 지나는 것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켄우드는 3월18일 라싸를 떠날때 대다수 학교와 상점, 기타 점포들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티베트족과 한족들도 다시 거리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정부측에서 폭도들에게 자수할수 있는 최후기간을 통보한후 라싸 거리에서는 젊은 티베트족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25살의 스위스 관광객 바르시겔은 3월8일 라싸에 도착했습니다. 티베트를 떠나 까뜨만두에 도착한후 그도 같은 경력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나이든 한족이 비참하게 티베트족에게 구타당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미친듯이 승냥이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한족과 관련된 물건,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바르시겔도 "타임스지"에 카나다관광객한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한족을 구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말하면서 라싸의 정세가 아주 긴장하며 100여명이 숨지고 1천여명이 붙잡혔다고 현지인들이 말했다고 했습니다. 바르시겔은 3월17일 라싸를 떠나 공항호텔에서 하루밤 묵은뒤 18일 비행기로 까뚜만두에 도착했습니다.
41살의 뉴질랜드 관광객 톰프손은 라싸에서 소란이 발생한 당일 사이캉이라고 하는 여관에 투숙했습니다. 그는 폭도들이 건축물의 유리를 파괴하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위험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관광팀의 일부 사람들은 아주 무서워했습니다. 그중 관광객 한명은 돌에 부상을 입었고 한명은 머리에 부상을 입었습ㄴ다."
1 2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