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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방송듣기
2014-06-19 15:14:44 cri
 이번에는 장춘의 윤수범 청취자가 보내주신 편지 사연 만나보겠습니다.

남: 한창송,송휘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춘경제개발구 조선족로인협회 85세의 로옹 남하진의 즐거운 노년 생활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금년 만 85세인 남하진 노인은 1929년 룡정시 지신진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습니다.

1948년부터 지신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50년에 연변가무단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담당하였고 그후 선후 석현 중학교, 대흥구 중학교, 라자구 중학교에서 음악교원을 담임하였습니다. 그 기간 연변대학 함수부 조선어학부를 졸업하고 라자구 중학교에서 조선어교수도 겸직하였습니다. 1981년에 왕청현1중에 조동되어 선후로 음악교원, 전직 공회주석을 담임하였고1985년에 왕청현2중에 조동되어 일어 교원을 담임하였으며 1989년에 정년 리직하였습니다.

1965년1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남하진 노인은 사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여러차례 왕청현의 우수교사,모범당원으로 선정됐습니다.

1959년에 연변음학가협회에 가입한 남하진 노인은 "무엇을 하든지 음악에 대한 흥취만은 줄곧 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가로 작곡한 노래가 20여수에 달합니다. 주급이상 우수상을 수여받은 작품이 5수인데 그중 리직 휴양 후에 발표한 작품 "축배가"도 포함됩니다.

1992년8월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4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된 노래집"60청춘닐리리"에는 남하진 노인이 작곡한 노래 "문명한 가정 꾸려 가리라"와 "즐거운 로년"이 편입되였습니다. 첫곡은 맏아들의 결혼잔치를 계기로 지었는데 1980년 연변주 "5강4미"(五讲四美)응모작품에서 우수창작상을 수여받았습니다. 방송을 탄 후로는 대중 속에서 재빨리 보급되었고 KTV카라OK의 노래목록에도 올랐으며 지금까지 남하진 가문의 주제가로 되고 있습니다.

로년을 즐겁게 보내는 남하진 노인의 비결은 우선 일을 찾아 해야 하고 베품을 통해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처음 몇해는 왕청2중 로년협회 회장직을 맡았으며 왕청진 3개 중소학교 관악대의 지도교원으로 활약하였고 장기간 음악테프를 제작하여 로인무도협회 등 여러 부문에 제공하였습니다. 90년대에 일본으로 연수를 가거나 로무를 가는 청년들의 요구에 따라 2년 남짓한 기간에 칠팔명의 청년들에게 일어를 가르쳐주었습니다.

2005년에 장춘에서 사업하고 있는 두 아들이 장춘시 이도구 도화원에 100여평방미터 되는 집을 구입하고 고래희를 훌쩍 넘은 부모님을 모셔왔습니다.이로부터 남하진의 장춘생활이 시작되였습니다.남하진은 장춘에서도 로인협회에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2010년,81세 고령인 남하진은 사비 2만원을 털어 노래집 "우리의 노래"를 출판하여 장춘시 각 로인협회 성원들에게 선사하려는 기발한 구상을하였습니다. 시조선족로인협회에서는 로인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로년생활을 즐기려는 남하진의 념원과 집체를 위해 헌신하는 그의 고마운 처사를 높이 평가하고 전 시 조선족로인협회회원들에게 이 책을 널리 추천,소개하였습니다. 시조선족로인협회에서는 "이 책은 우리에게 귀중한 선물로 될뿐 아니라 보귀한 정신적재부로 길이 전해질 것이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의 천여명 회원들은 저마다 기쁜 심정으로 이 책을 증정받았습니다. 그후 요구에 따라 통화현문화관,룡정시공상은행에도 여러 책을 증정하였으며 개별적으로 연길,왕청,해남도에까지 전해졌습니다.

2013년 봄에 남하진이 살고있는 도화원에서는 복숭아나무를 대량으로 전지하고 나머지 가지를 버렸습니다. 옛날부터 복숭아나무지팡이는 장수지팡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남하진은 장수지팡이를 로인들께 나누어 주려는 생각을 하고 봄에 굵직하고 곧고 단단한 나무가지를 골라 여름,가을을 지나면서 반년간 말리웠다가 겨울내내 집안에서 깍고 다듬고 칠하면서 깜찍하고 반들반들한 T형장수지팡이60여대를 만들어냈습니다. 처음 로인협회에 나가 몇사람에게 주면서 선보였더니 달라는 사람들이 확 모여들며 어떻게 이런 재주를 배웠는가고 궁굼해하였습니다.기실 남하진은 문화대혁명시기 라자구공사 가공공장 목공반에 가서 1년 넘어 "개조"를 받은 력사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남하진은 가구를 짜는 솜씨까지 배워냈습니다. 그러한즉 지팡이 만드는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회원들은 너도나도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일부 회원들은 "오늘 활동일에는 남영감의 장수지팡이가 욕심나서 나왔다니까"하고 리유를 더 붙이는것이였습니다.이런 정경을 보는 남하진의 심정은 자못 흐뭇하였습니다. 자기의 로동가치가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긍정과 환영을 받는것이 무엇보다도 귀중해 보였습니다. 뭇사람들이 다투어 장수지팡이를 달라고 하는 리유도 그 지팡이가 길상의 상징물이라는데도 있겠지만 더우기는 84세 로인의 그 고마운 마음을 자기도 간직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수십대의 지팡이가 얼마 안 가서 협회로인들의 손에 쥐여졌습니다.연변자치주림업국에서 사업하는 시집 간 딸이 부모집에 왔다가 이 지팡이를 보고 연길로인들께도 드리겠다고 하며 5대를 가지고 갔습니다.

장춘경제개발구조선족로인협회의 성원인 남하진은 협회의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할뿐만 아니라 매년 1천원씩 기부하고있습니다. 2012년에 협회에서는 남하진의 일관적표현에 근거하여 그에게 특수공헌상을 수여했습니다.

남하진이 로년을 즐겁게 보내는 다른 하나의 비결은 문명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것입니다.

남하진은 자기의 일거일동을 통하여 자식들의 존경을 받으며 자식들의 효도 역시 극진합니다.

2002년,74세의 남하진은 70세의 김정옥과 재혼하였습니다.남하진의 자식들은 부친의 선택을 존중하였으며 재혼후 새로 들어온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친절하게 대하였습니다. 재혼후 3년만에 량부모를 자기들 신변 장춘에 모셨습니다.

장춘에 이사하여 온 해에 부친이 당뇨병으로 앓으신지 벌써 몇해 된다는것을 알아채린 자식들은 다짜고짜 부친을 고급병실에 입원시켰습니다.20일 입원기간에 로친이 곁에서 간병하고 두 아들은 매일같이 문안을 오며 큰 며느리는 병석에 계시는 시아버지의 음식을 하여 나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2013겨울에 남하진이 급성페염에 걸려 입원하였습니다.공교롭게도 큰아들 부부는 외지에 가고 없었습니다.둘째 아들 부부가 밤낮 륜번으로 간병하며 때마다 음식조리도 잘해 드렸으며 고독한 다른 환자도 함께 돌봐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영감은 참 훌륭한 자식을 두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하였습니다.

주말이면 남하진의 자식들은 부모뵈러 옵니다. 이는 "로인법"이 나오기전에 벌써 자식들의 자각적인 행동이 되였고 제도화 되였습니다. 남하진의 가장 큰 흥취는 낙시질입니다. 아들,며느리들이 평시에도 차를 몰고 부친을 모시고 낙시터를 갈때가 있으며 주말에도 흔히 부모를 모시고 야외에 나갑니다. 남자들은 낙시를 하고 여자들은 민들레며 냉이며 미나리를 캐고 마지막엔 잡은 물고기와 캔 들나물로 풍성한 회식을 차립니다. 몇해 전 천진시에 조동해 간 맏아들이 간혹 집에 오게 되면 역시 부친과 집안 사람들과 함께 야외에 나가 하루를 즐깁니다. 출가한 두 딸(남하진의 친딸과 김정옥의 친딸)은 부친에게 "낙시비용"으로 매년 천원씩 보태 드립니다.

자식들은 거의 매년 부모들의 관광을 마련해 드립니다. 남하진 부부는 전국 각지는 물론,일본,한국,조선 등 외국 관광도 여러차례 다녀왔습니다. 2012년에는 두 아들,두 며느리가 별도로 6일간 청가를 맡고 직접 중형 버스를 몰고 부모를 모시고 뜻깊은 려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부친의 고향 룡정시 지신,모친의 고향 도문시 량수 그리고 살며 사업하며 자취를 남겼던 왕청,십리평,라자구,배초구 등지를 돌아 보았고 삼합,훈춘 등 관광지를 구경하였습니다. 그들은 지신에 가서 목수였던 남하진의 부친이100여년 전에 지어놓은 집이 지금까지 지역의 문화재로 고스란히 보존되여 있음을 보고 조상에 대한 자호감을 느꼈습니다. 고향 산천을 구경하며 옛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래동안 간직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게 되여 부모자식 모두 감개무량하고 흔쾌한 기분에 잠겼습니다.

남하진 노인의 세 손군도 문명가정의 영향을 받아 조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합니다. 그중 맏손녀(맏아들의 딸)는 길림대학 베쮼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길림대학 제2병원의 의사로 되였는데 가정에서는 보건의사의 역할을 주동적으로 맡았습니다. 손자(둘째 아들의 장남)는 장춘리공대학을 졸업했고 둘째 손자(둘째 아들의 차남)는 작년에 서남정법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남하진의 가문에서 제1대는 조부모인데 그들은 인자하고 자식과 손군들을 사랑하고 사회의 찬양을 받고있습니다.제2대는 두 아들과 두 며느리인데 맏아들은 품행이 단정하고 사업에 성취가 있고 둘째 아들은 흉금이 넓고 사업에 몰두하며 맏며느리는 성격이 활달하고 남을 도와주기를 즐기는 "집안 가무떼기" 이며 둘째 며느리는 활발하고 부지런하고 배우기를 즐깁니다.제3대는 세 손군인데 모두 부지런히 공부하고 어른을 존경합니다.1대는 집안의 뒷심이고 본보기이며 2대는 집안의 기둥이며 3대는 집안의 희망입니다. 조손3대9명 성원 중에 8명이 대학졸업생입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도우며 화목한 가정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전국조선족로년협회친목회에서 금년 하반년에 "문명가정"을 표창하기로 합니다.그중 3개의 명액이 장춘시에 떨어졌습니다. 최근 장춘시조선족로년협회에서는 남하진 가정을 그 3개 명액 중의 하나로 선정하였습니다. 남하진이 지난 80년대에 창작한 노래 "문명한 가정 꾸려 가리라"에는 "문명한 가정 화목한 가정 꾸려 가리라"는 가사가 씌여져 있습니다. 남하진은 이 꿈을 실현하였습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지내는 남하진의 로년이 어찌 "즐거운 로년"이 아니겠습니까!

장춘시 애청자 윤수범 올림.6월 15일.

***

여: 남하진 노인의 행복하고 즐거운 노년생활상을 적어주신 윤수범 청취자 고맙습니다. 행복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듯 싶습니다.

남: 그렇네요. 항상 이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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