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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일 방송듣기
2014-10-03 16:46:40 cri

[편지왔어요]

남: 편지왔어요, 오늘은 먼저 장춘의 김석찬 청취자가 보내주신 편지 사연부터 만나보겠습니다.

여: 한창송,송휘선생님;그간안녕들 하셧습니가?

우리들에게 항상 좋은 프로를 만들어 주시느라 노고가 많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변변치 못한 "고향기행문"을 보내니 다듬어서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국경절을 열흘 앞두고 9월20일 아들 며느리가 자가용을 이용해 우리 내외와 함께 장춘을 떠나 우리 노친이 몇십년 동안 손꼽아 기다리고 오매에도 그리던 자신이 태어난 곳ㅡ화룡현 복동으로 떠났습니다. 우리 일행4명은 저녁에 룡정시에 도착하여 외조카네집에서 하루밤을 묵고 이튿날 외조카의 안내로 복동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집사람은1942년9월 복동에서 태어나 3살때 어머니가 세상 뜨고 8살에 아버지마저 여의고 고아신세가 됐는데 그때 옆집의 자식없이 지내던 늙은 양주가 자기 집에 대려다 일을 시키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런 불쌍한 상황을 지켜보던 향정부의 약40세쯤 되어보이는 간부 아주머니가 늙은 양주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몰래 그를 데리고 숲이 우거진 오불고불한 산길을 따라 높은산 두개를 넘어 이틀이나 걷고 걸어 그를 용화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유감스러운 일은 우리 집사람이 지금까지도 그때 당시 자기를 범의 아구리에서 구해준 은인의 성씨도,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일을 후회하고 한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지금 어디서 편안히 살고 계시는지? 65년이지난 오늘 머나먼 장춘에서 늦게 나마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나중에 우리 집사람은 장춘의 베쑨의과대학 유치원 에서 근무하다 91년에 정년 퇴직하였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8살때 복동을 떠나 65년만에 자기가 태어났고 부모의뼈가 묻혀있는 그곳을 찾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65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변해도 여섯번 이상 변했으니 옛날 옛터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자기가 살던 집터는 흔적마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노친은 너무나 서운하고 실망해서 이곳 저곳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지켜보는 우리들도 눈시울이 뜨거워 났습니다.

집사람이 몇십년 동안 고향생각을 하면서 한번쯤은 꼭 가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65년이 지나도록 이 꿈을 이루어주지 못한 주요 책임이 남편인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물론 객관적 원인을 본다면 우리가 결혼50주년 금혼까지 지내면서 젊었을 때는 직장 일에 바삐보내면서 눈코 뜰 사이없이 지내고, 정년 퇴직 후에는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고 또 외손녀의 뒷바라지까지 하다나니 여태까지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이렇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집사람이 중병에 걸린 오늘에야 비로서 실천하게 되니 나의 죄책감은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남기고 집사람과 함께65년만에 고향 복동의 물을 마시고 나서 귀로에 올랐습니다.

1953년 제가 룡정에서 1년동안 공부 할때만해도 룡정 시내는 좁디좁은 골목길에 모두 오막살이 초가집으로 빼곡 하였는데 이번에61년만에 가보니 천지개벽하여 온 시내가 버젓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 그 눈부신 발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일행은 도문시 중조변경을 찾아 조선 남양군을 건너다보았고 마지막 코스로 훈춘시의 "한눈에 3국을 본다"는 방천 전망대에 올라 러시아와 .조선을 한눈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훈춘시도 원래는 조그만한 마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개혁개방의 혜택을 받아 40여만인구가 살고 있는 고층건물로 가득찬 변방중진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시내에서는 오가는 러시아인들을 자주 볼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5일간 연변 기행을 통하여 우리 위대한 조국의 휘황한 발전성과를 실감했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중국의 부흥의 꿈을 실현 하기 위하여 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65년전 복동향 정부에서 근무하던 좋은 일을 하신 아주머니 혹은 그의 후손이 이 방송을 들으시면 저에게 연락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편지가 너무 두서없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량해해 주십시요 .

장춘애청자클럽 록원구소조 정금자.김석찬 올림 201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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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추억과 아픔이 묻어있는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곳을 떠나 그곳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여: 그렇습니다. 고향은 우리들 모두에게 추억이고 삶의 시작입니다. 65년만에 고향을 찾아 낯설어진 고향땅을 둘러보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정금자 청취자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하면서 우리의 마음도 뭉클해 졌습니다.

남: 많은 분들의 눈가가 촉촉해 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정금자 김석찬 청취자와 함께 박옥경 김춘자 큰이명숙 최윤이 주순자 조동관 이명숙 방인숙 최명옥 청취자가 9월의 퀴즈 답안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여: 사전에서는 고향의 의미를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등으로 정의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비단 사람에게만 고향이 존재할까요? 김석찬 청취자의 편지에 이어서 잠깐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남: 동물들의 세계는 구경 어떠할까요? 육지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물들 역시 모두 자신들의 고향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여: 아마 그렇겠죠. 고향이 없다면 생물에게 탄생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으니까요…

남: 녜.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계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고향을 존재를 인간이 생각하는 고향 존재처럼 인식시킬 수는 없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대부분의 생물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살기 위해 처절한 생존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여: 그러나 어떤 생물에게는 고향의 존재가 인간의 고향보다 더 절실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본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몇해 전에 은빛 연어와 눈맑은 연어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동화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작품도 있었는데요, 바다에서 살던 연어가 강으로 돌아와 산란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남: 물고기는 크게 바다와 민물이라는 서식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요,바다와 민물을 왕래하는 물고기도 존재합니다. 바로 연어처럼 말이죠. 바다에서 살다가 민물로 올라가 번식하는 종류의 물고기를 일컬어 소하성 어종이라고 하는데요, 이와 반대로 민물에서 성장하고 바다에서 알을 낯는 물고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강하성 어종이라고 합니다.

여: 모천 회귀성은 연어와 같은 물고기들이 가진 물고기들의 독특한 특성 가운데 하나인데요, 말 그대로 자신이 태어난 모천으로 되돌아온다는 말입니다. 바다에서 살던 물고기들이 민물로 올라 올때 가장 먼저 봉착하는 문제가 바다와 민물은 물의 성질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남: 그렇죠.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바닷물을 맛본적이 있을 것인데요, 바닷물이 짜죠.

여: 녜, 그런데 이와 다르게 민물의 맛은 밍밍한 맛입니다. 바닷물이 짠 것은 염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같은 바닷물과 민물의 염분 차이는 물고기들에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바다에서 민물로, 민물에서 바다로 가는 물고기들의 대부분은 기수역에서 몸의 염분 농도를 조절하기 위한 적응의 시간을 가짐으로서 서식지의 변화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남: 참 그 적응력 대단한데요…북태평양에서 살던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모천으로 이동한 거리는 무려 3천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 자신의 고향에 대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7일간의 국경절 연휴가 한창인데요, 이 연휴를 이용해 고향을 찾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남: 고향찾는 분들, 연휴를 즐기는 분들 모두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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