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4-01 12:49:56 | cri |
[편지왔어요]
남: 편지왔어요, 이 코너에서는 여러분이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사연들을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먼저 한국의 김연준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부터 만나보겠습니다.
여: 해남에서 개최된 2016 박오 포럼이 성공적으로 폐막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극강 총리께서 하신 개막식 연설에서 중국 경제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세계 경제가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지만 중국 경제는 합리적인 구간을 유지하며 운영되고 장기적으로 볼 때 내수가 여유가 있고 혁신에도 수단이 있어 장기적인 호전세를 이어갈 수 있고 총 수요를 적절히 확대하고 구조개혁을 추진해 중고속 성장을 유지하며 중고급 수준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경제가 불리한 대외 여건을 극복하고 여전히 지속 성장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 중국과 밀접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습근평 주석께서 체코를 국빈 방문하신 내용을 CRI 홈페이지를 통해 잘 보았습니다.
중국과 체코 양국이 수교한지 67만에 처음으로 중국 국가 주석의 국빈방문으로 더욱 의미가 있는데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이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유해 36구를 중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입관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이들 유해는 31일 인천공항에서 한중 유해인도식 행사를 통해 중국에 인도될 예정입니다.
2014년에 한중 양국은 중국군 유해를 송환하기로 합의하고 그해 437구를 송환하였으며 작년에는 68구를 송환하였습니다.
곧 청명과 한식을 앞두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는 중국지원군 열사를 추모하며 그들의 넋을 기립니다.
청취자 여러분 환절기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즐거운 청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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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이어서 연변의 박철원 청취잡니다.
남: 방송과 동행하는 사람들
연변조선어방송애청자협회 설립10주년 기념대회가 3월 26일 연길 텔레비전방송국 공개홀에서 열렸습니다.
큰 잔치를 맞이한 주내 각지 270명 회원 대표들이 산뜻한 조선족 복장차림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날 공개홀 행사장은 방송을 듣고 찾아온 분들로 넘쳐났습니다.
장엄한 국가 합창에 이어 협회 회장단 10명의 집단인사로 기념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중국국제방송 조선어부 김동광 주임을 비롯한 각계 방송사 책임자와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 대표, 대련애청자대표 박남권, 한국청취자 김연준 등 인사들이 보내온 축사가 발표됐습니다.
이어 협회 박철원 회장이 "조선어방송과 동행한 10년"이란 제목으로 총화회보를 했습니다. 그는 총화에서 연변애청자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4개 조선말방송을 자유로이 청취하며 혁명전통교양을 잊지 않고 조화사회건설에 기여하면서 실천해온 자랑찬 발자취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 귀 방송이 우리에게 베푼 사랑과 지도에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
"조선어방송 전파로 맺어진 방송인과 청취자들 사이의 정은 중화부흥의 꿈 실현에 강력한 활력소로 될것입니다!"
이는 협회에서 4개 방송국에 증정한 감사패에 적힌 글발입니다. 또한 4개 방송국과 애청자협회 연명으로 10년간 열심히 방송을 애청하면서 기여가 큰 6명 오랜 애청자들에게 감사패와 생화를 안겨드렸습니다. 그 감사패에는 "당신이 방송을 사랑하며 열심히 동행해온 그 정성과 수확에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애청자의 본보기로 이끌어 주시는 협회 사랑에 충심으로 감사 드립니다!"라고 씌여졌습니다.
"시대선봉", 본보기들이 많이 모인 애청자협회는 지금 400여명 회원이 전주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 차세대관심사업 선진개인"으로 표창받은 화룡시3중 퇴직교원 리성진이 대표발언을 했습니다. 그는 50년간 방송을 즐겨 들으며 방송으로 자신의 교학내용을 픙부히 하였고 퇴직 후에도 방송청취를 견지하면서 차세대교양에 정열을 몰부은 소감을 토로했습니다.
제2부로 펼쳐진 애청자 축하프로는 훈춘시 청취자 채규억이 이끄는 진달래예술단에서 지난 8월 전국민족가무경연에서 최우수종목상을 수여받은 무용 "진달래"로 막을 열고, 박철원 청취자가 맹인반장 김봉숙을 모시고 자작곡 "나는 지팽이"를 불러 청중들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룡정분회 류영숙의 "박연폭포", 안도분회의 "황혼의 기쁨", 연길분회의 북공연 "진또배기"등 프로들마다 조선족 특색이 짙고 기량이 높아 애청자 대오에 재간둥이들이 많음을 과시했습니다. 축하무대는 훈춘분회의 "옹헤야" 상모돌리기로 막을 내렸습니다.
연변애청자들은 이토록 활기찬 자기들의 "모임의 장", "교류의 장", "사랑의 쉼터"가 있음으로 하여 기뻐하면서 조선어를 더욱 사랑하며 방송을 즐기면서 나라 건설에 기여하겠다고들 다졌습니다.
아울러 연변조선어방송애청자협회 설립10주년을 맞으며 노일대 애청자들의 간곡한 부탁에 응해 기념문집을 내오게 되었습니다.
책속에는 우리말방송 애청자들의 방송사랑 이야기가 쌓여 있으며 질 좋은 민족방송프로를 꾸려가는 방송인들의 노고가 담겨져 있습니다.
황금같은 기사들로 무어진 300여 페이지 책이 마침내 편찬돼 지난 20일 인쇄에 앞선 마지막 교정을 마치고 책 표지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책 표지는 책의 얼굴이지요. <<방송은 우리의 길동무>>라고 이름진 책의 표지를 어떻게 설계할까?
오랜시간의 구상을 걸쳤고 넣고 싶은 내용이 정말 많았습니다. 방송이라 생각하니 국제방송국이며 중앙인민방송국 건물부터 떠 올렸고, 중앙TV타워며 상해동방명주도 외국의 유명탑도 구상해봤습니다.
전파도 있고 고운 꽃이 만발한 풍경도 넣고 싶고 이 세상 멋진것들을 다 넣고싶은 마음이였습니다.......
최종 앞표지에는 전파속에 파묻힌 마이크와 이어폰(耳机)----바로 방송국과 방송인의 상징인 전파가 발송되는 마이크, 그 한마당에 수용자 상징의 이어폰이 잡혀져있습니다. 정다운 전파가 하늘 높이 지구촌에 펴져갑니다.
하단에는 놀랍게 변모해가는 연길의 모습을, 뒤표지에는 전파속에 흐르는 희망의 노래 악보, 세계에로 매진하는 공중열차를 나래치게 하였습니다.
바로 그 속에 내가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국외의 청취자 벗들을 만나러 갑니다.
전파로 이어진 방송인과 청취자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진 책속에 우리들이 함께 있습니다.
한가족다운 정(情) 이야기를 수록한 문선은 이런 이미지로 곱게 물들인 겉옷을 입고 3월26일 기념행사에서 <<우리방송과 동행한10년>>의 240점 사진 묶음과 함께 방송인과 수용자들에게 선물했습니다.
3월26일
박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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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연변조선어방송애청자협회 설립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0주년을 계기로 우리 방송가족분 모두가 합심해 협회의 더 큰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남: 10년간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순금 청취자도 이 행사에 참가해서 내내 행복에 겨웠고 기쁨으로 벅찼다고 소감을 적어주셨는데요, 감사합니다.
여: 조만간 10주년 기념 책자도 받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박철원 회장님을 비롯한 협회 회원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남: 이어서 장춘 구태구의 윤영학 청취잡니다.
여: 한국땅 중국인민지원군열사묘지를 찾아서
어느덧 춘분도 지나 청명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왕년 이맘 때면 내마음은 고향땅 부모님 산소와 내가 다녀왔던 국내 여러 열사릉원으로 줄달음쳤는데 올해 청명은 왕년과는 달리 나도 걷잡을수 없이 멀리 황해넘어 한국경기도 파주시 중국인민지원군열사묘지로 달려갑니다.
이 묘지와 나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맺어졌습다. 2013년 9월 17일 "길림신문"에서 연변대학예술학원 남희철 교수님이 쓰신 "화해평화로 가꾸어진 한국의 중국인민지원군묘지" 라는 기사를 읽고 나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기사의 주요내용인 즉 한국정부와 인민들이 한국땅에 파묻힌 중국인민지원군열사들의 유해를 다시 이장하여 정성스럽게 묘지를 가꾸며 참배하고 있다는 사연입니다.
이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해본 일입니다. 조선전쟁 당시로 말하면 중국인민지원군은 한국의 적군이였으니 그 봉분을 파던지거나 돌멩이질 하지 않으면 천만 다행이겠는데 이렇게 적군의 묘지를 정성스럽게 가꾸고 참배까지 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처사인가! 이는 인류문명발전상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혁신으로 응당 높이 긍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80넘도록 살아오면서 이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여서 빨리 달려가 그 고마운 지성인들께 허리굽혀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척추외상으로 출국할 수 없는 실정에서 그 간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3년이 지나 건강이 일정하게 회복되니 출국준비를 다그쳐 올해 1월초 안해와 함께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나는 일반 서민이어서 이번 참배행사가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은근히 걱정되여 출국 그전날 한국의 초청을 받고 그곳에 다녀온 남희철 교수님께 도움을 청했더니 그이는 초면부지인 나를 책임지고 한국 관계부문에 연줄을 달아주었기에 참배행사는 생각밖으로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떠나기 3일 전 중국인민지원군 묘지를 총책임진 금강사묵개스님 (아래에 '묵개스님' 으로 약칭함)께 전화를 올렸더니 남교수님의 전화를 이미 받았다고 하시면서 서울에 도착하는 날 자기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동행하겠으니 근심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약속대로 우리는 서울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내가 투숙한 구로구 구로동호텔에 모셨는데 그이는 여로의 피로도 마다하고 우리가 참배하려는 묘지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지원군 묘지"는 38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는데 조선전쟁 당시 적아 쌍방 교전이 치렬한 곳이였기에 쌍방 살상손실도 많았다고 하였다. 1953년 7월 조선전쟁이 정전된 후 한국정부는 한국군 유해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게 되였는데 한국군인들이 이 일을 맡아나서게 되였다. 유해를 땅속에서 파내는 족족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한국군으로 판정되는 유해는 다른 곳으로 이송하였다. 그런데 나머지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으로 판정된 유해를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하는 문제에서 시초에는 내부 의견상이가 컸다고 합니다. "적의 유해인데 우리가 관계할게 무엇인가?"하는 문제였습니다. 특히는 조선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한국군인들의 반발심이 강했다고 합니다. 이때 묵개스님을 비롯한 지성인들이 앞에 나서서 전사(战死)한지도 반세기가 지난 유해도 그냥 적으로 봐야하는가? 이러면 도량 넓은 군인이 될수 없다고 내심하게 설복한데서 그들은 생각을 돌려 인간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새 마음으로 유해를 전통 토기항아리에 정성스럽게 넣고 뚜껑을 봉해 차에 실어보내면서 "친구야, 잘가"라는 인사까지 했답니다.
그리고 이 지원군묘지의 명칭을 다는데도 의견상이가 있었다고 하였다. 시초에는 통속적으로 "적군묘지" 라고 하여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사회민간단체 지성인들이 나서서 힘쓴 결과 인정미가 풍기게 "조선군, 중국군묘지" 로 개칭하였고 이 묘지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민간단체를 결성하게 되였는데 그 명칭을 "조선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명칭 그대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데 유조한 활동과 중한친선을 도모하는 좋은 일을 많이 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 참배 행사에는 주요 성원6명이 가는데 한중친선협회 이승래 부회장님께서 더 상세한 소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 양주는 그의 소개를 감명깊게 다 듣고나서 중국에서 가지고 간 중한 친선이 한가슴에 안겨오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유해 귀환에 관련되는 사진3장을 올렸더니 매우 소중한 사진이라 하시면서 즐거워 했습니다. 그이도 미리 준비했던 족자를 나에게 증정하였는데 이런 글문이였습니다.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되리니, 한방울 물이 대해에서 만나듯…."
이튼날 아침 8시에 우리 양주는 묵개스님과 함께 이승래 부회장님의 자가용차에 앉아 묘지로 출발했습니다. 차는 유서 깊은 한강 연안을 따라 북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파주시에 이르러서는 한강물과 합류하는 임진강 연안을 거슬러 계속 달려서야 파주시 덕성면 답곡리 산기슭에 위치한 중국인민지원군묘지에 도착했습니다. 이날 참배활동에 참가하는 권현철 한국 주재 일본 전임 대사님을 비롯한 네분도 육속 도착했습니다. 저의 양주의 개인 참배에 이렇게 여러분들이 모쪼록 동참하여 지도해 주시니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니 오히려 대방에서 "저희들의 활동을 이처럼 관심하고 지지하여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승래 부회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묘지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안겨오는 정경이 내가 중국에서 상상하던 것보다도 더 원만했습니다. 이곳을 어찌 한적한 묘지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지의 평탄한 잔디밭은 경사진 산 언덕을 깎아 두층의 제전형식으로 되였는데 가로 세로 질서 정연하게 줄지은 흰 대리석묘비, 시멘트 포장 인도(人行道), 화강암 대리석으로 된 층계, 입구에 반듯하게 세워진 묘지 안내판, 묘지 밖의 주차장, 화장실, 줄지은 가로등 …그전날 바람거친 산기슭이 오늘날 이와같이 정결한 환경에 설비가 구전한 묘지로 변하였으니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노고와 그 지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줄지어선 그 많은 묘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니 눈앞이 흐려짐을 막을바 없었습니다. 마치도 그 많은 비석 하나하나가 중국인민지원군 용사가 되여 눈물을 휘뿌리며 두팔 벌리고 달려와 우리를 포옹하며 조국과 고향친인들에게 그리움을 하소연 하는듯 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뒤늦게 찾아온 자책감으로 하여 열사들과 한국 지성인들에게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우리는 봉분마다 제주를 올리고 장미꽃 한송이씩 꽂았습니다. 모두다 옷깃을 정겨히 여미고 묘비 앞에 줄지어 섰습니다. 묵개스님이 주최하고 "조선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 상임대표인 권현철 전임 대사님께서 추모사를 올렸습니다. 그이는 새해를 맞이하여 처음 고인들을 추모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참배행사에는 중국고향친인 두분이 참석하였음을 알린다고 했습니다. 뒤이어 나도 뒤늦게 찾아왔음을 사과하며 조국과 인민들은 당신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며 지금 아시아와 세계의 항구한 평화를 위해 힘 다하고 있으니 시름놓고 고이 잠드시라면서 열사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계절은 바로 대소한 사이여서 제일 추울 때였는데 웬일인지 그날만은 따스한 햇빛아래 바람 한점 없어 따사로운 가을날씨를 방불케 하여 나의 마음은 더욱 애잔했습니다.
참배가 끝나자 이승래 부회장님은 우리 양주를 안내하여 6천여평방미터 잘되는 묘지를 에돌면서 설명을 시작했는데 우선 묵개스님에 대한 찬사가 많았습니다. 이 묘지에는 묵개스님의 노고가 많이 깃들어있다고 하면서 그는 불교 종교인사인데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과 평화에 대한 이념이 강한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묘지는 크게 두개 구역으로 획분됐습니다. 제1구역에는 조선 인민군유해가 묻혀있고 제2구역에는 중국인민지원군유해 외 조선인민군유해도 묻혀있었습니다. 전쟁 당시 합장한 유해는 후에 다시 분간할 수 없어서 그대로 합장하고 유해 몇구라는 숫자만 밝혔는데 묘지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정부에서 5억을 출자하여 재단장하여 오늘날 묘지로 그 면모가 일신되였다고 합니다. 묘지관리도 날따라 완벽해지면서 지금은 한국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경상적으로 청소하고 철따라 벌초하여 항상 깨끗해서 뜻깊은 행사들도 이곳에서 자주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임진평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13년 7월 21일 조선전쟁 정전협정체결 60주년을 기념하여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주제로 하는 "임진평화제"를 이곳에서 진행했는데 무려 200여명이나 참가했다고 합니다. 이 대회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새 세상을 갈망하는 분위기로 차넘쳤습니다. 한국의 유명 가수 설운도씨가 중국인민지원군열사유해송환을 주제로 한 "귀향" 이란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는데 그가 오늘 이 대회에 참석하여 60년만에 나젊은 충혼들이 오매불망 잊지 못하던 그립고 그립던 고향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그 절절한 심정을 너무나 구슬프게 불러 장내는 온통 울음바다가 되였다고 합니다.
나는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면서 깊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귀한 것이 단 한번밖에 없는 생명인데, 그 한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데 있으랴. 통계에 의하면 조선전쟁에서 목숨잃은 쌍방 군인이 무려 200만이 넘습니다. 중국만하여도 14만명이라는 지원군 열사가 지금 조선반도 남북 땅에 이름 없이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조선반도 13만명 남북 이산가족이 38선 철조망에 가로막혀 60년 세월을 피눈물로 친인을 그리고 그리다가 이젠 그 반수가 유감만 남긴채 황천으로 떠나갔습니다. 지난해 10월 금강산에서 있은 이산가족 상봉을 영상을 보면서 우리 양주는 너무나 가슴아파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으니 그 당사자들의 아픈 가슴이야 더 이를데 있을까요! 이와같이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인류에게 재난만 갔다주기에 그전날의 갈등과 상이한 이념을 뛰여넘어 평화의 일념으로 중국인민지원구열사묘지를 정성으로 가꾸고 있는 이 민간단체성원들이 높이 돋보였고 그지없이 고마웠습니다.
어느덧 오후가 됐습니다. 나는 저녁에 또 다른 용무가 있기에 더 지체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발이 무거워 좀처럼 돌아설 수 없었습니다. 만물은 새봄이 오면 다시 소생하건만 한국땅에 잠든 충혼들은 영원히 소생못합니다. 그들을 뒤에 두고 막상 떠나자니 걸음이 되지않아 오래도록 다시다시 되돌아보며 "열사들이여, 내가 생전에 꼭 다시한번 찾아오리다" 라고 입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배동하신 그 고마운분들께 일일이 작별인사를 올리고 귀로에 올랐습니다. 차가 얼마나 달렸는지 또다시 임진강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흐르는 그 강물을 물끄럼히 바라보노라니 내 마음은 또 찹찹해졌습니다. 수천년38선 이북땅에서 시작해 서남으로 흐르는 임진강은 오늘도 38선을 거침없이 흘러내려 파주시 오두산기슭에서 한강과 합쳐 넘실넘실 춤추고 노래하며 서해로 흘러드는데 무엇때문에 남과 북은 갈등으로 대치상태에 처했는가 하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남북공동선언" 직후 한때는 남북이 공동의 노력으로 갈등이 해소되면서 한때는 올림픽에서 남북선수들이 함께 "조선반도" 깃발을 높이 추켜들고 다정하게 손과 손을 잡고 "아리랑" 노래를 정겹게 부르며 입장하기도 했습니다.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너무 기뻐서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박수치며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호황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유감스럽게도 또다시 대치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60년전의 정전협정은 오늘까지도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우리 모두 세계평화애호인민들과 함께 조선반도에서 또다시 그전날 동족 상잔의 참극이 재연되지말게끔 힘써야 하며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외래간섭이 없이 무력으로가 아니라 평화협상의 방법으로 조선반도 통일의 대문을 여는데 힘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새해에 접어들면서 세계인민들의 염원과는 상반대로 조선반도 남북의 갈등은 고도로 격화되었다. 이런 위기일발의 시각에 한국의 "조선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 은 핵전쟁을 미연에 막으며 계속해서 화해와 평화를 촉구하고 중한 두나라간의 영구한 친선을 도모하는 성스러운 사업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어마지 않습니다.
이번 참배활동은 나의 인생길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번 참배행사를 통해 내 마음을 보다 깨끗하게 정화시켰고 정치적 시야도 더욱 넓혔으며 에너지도 만부하로 충전되여 한결 젊어진 감이 듭니다. 비록 자주 찾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조선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 지성인들과 한 길에 서서 평화촉구사업에 여생을 다 바치려는 결심입니다. 올해 청명절부터는 더 경건한 마음으로 제일 먼저 내마음에 영원히 잊지 못할 한국땅 그 중국인민지원군열사묘지를 향해 묵도를 드리려니 천추에 길이 빛날 열사들이여, 시름놓고 고이 잠드시라.
2016. 3. 25
윤 영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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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또 한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연입니다. 청명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사연을 접하게 되어 더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여: 저도 방금 몇번이나 콧마루가 찡해나는 걸 가까스로 참았는데요, 무게있는 글을 보내주신 윤영학 청취자에게 일단 고맙다는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일부 나라들이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겠구요, 모두의 노력을 통해 평화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길 바랍니다.
남: 그래요.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건 역시 광범위한 인민, 양심있는 인민들이니까요…
여: 맞는 말씀입니다. 이외에도 연변의 이성복 청취자가 지난 3일 연길시 북산가두 차세대관심위원회에서 연길시 9중을 찾아서 뢰봉동지를 따라배워 도덕이있는 사람이 되여야한다는 주제로 안금숙 강사를 모시고 진행한도덕 교육 행사관련 소식을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남: 이어서 퀴즈한마당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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