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나는 가을을 유난히 사랑한다. 어릴적 초중에 들어가 뿌쉬낀에 흠뻑 빠지다보니 자연히 그의 가을시들도 사랑하게 되였고 그가 가을의 《림종의 미》가 좋다고 하길래 나도 덩달아 《자연의 조락》을 사랑하게 된것이다.
《내집에서 천대받는 아이 내맘을 이끄듯》, 《때로는 페병 든 아가씨가 그대의 마음에 들듯이》라는 뿌쉬낀의 시구가 매력적이라는건 알았지만 그가 왜 하필 가을이면 창작의 불길이 타오른다고 하였는지는 그때의 나로서는 미처 다 알턱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시인을 본따서 자신을 가을사랑론자로 거뜬히 치켜세울수 있는 시절이 바로 초중시절이다. 내가 락엽의 가을을 환희의 계절로 알게 된데는 모방성의 힘이 컸다는 점을 나는 솔직히 인정한다.
인생의 단계로 말하면 지금도 나는 뭐나 알듯말듯하고, 그러면서도 뭐나 알고싶어 질정을 못하던 초중시절을 제일로 친다. 시 한수에도 밤잠을 설치던 그 시절, 뭘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렸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기에는 저마다의 꿈이 너무나 분방했던 그 시절을 나는 인생의 황금기로 안다. 나의 이런 심경을 초중숭배라 해도 좋고 초중콤플렉스라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인지 동창모임도 초중동창모임이 기중 잦았던것 같다. 작년 초가을에는 졸업 43주년이 되는데도 나의 집에서 또 한번 초중동창모임이 열렸었다. 그까짓 수십년 세월은 아무것도 아나라는듯이, 똑마치 오랜 퇴역군인들이 나라의 소환을 받기라도 한듯이 통지 하나에 그처럼 쉽게 우러나와 만나지는게 초중동창들이고보면 나의 초중사랑은 일정한 공감대를 가진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바람잘새 없는 바다처럼 불온(不穩)한 시절이였다. 옛날 서양학자들이 우아한 벽난로앞에서 유식한 담론을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면 그때 우리에게는 난로가의 이야기모임이라는게 있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수업시간에도 그토록 장난이 심했던 조무래기들이였건만 우리는 단지 옛말에 대한 호기심 하나때문에 방과후 저녁무렵까지 난로가에 모여앉아 동창이야기군의 림꺽정이야기에 시간가는줄 몰랐었다. 한회가 끝나면 하회가 궁금해 다시 모이군 하던 장난꾸러기들, 그 로변(爐邊)의 즐거움을 되새겨보고저 동창들은 수십년만에 다시 만난것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집요하게 찾아하는 몇몇 괴짜의 얼굴도 잊혀지지 않는다. 남녀동창들의 시선이야 야릇하든말든 휴식시간이 되면 늘 괴이쩍은 목소리로 영화관해설사(동시번역)의 말투를 열심히 흉내내던 애가 있었다. 휴식시간이면 음악시간이기라도 한듯이 목에 힘을 주며 정확성이 미심쩍은 발성연습에 골몰무가하던 애도 있었다. 늘 반복되는 그 괴상망측한 소리의 이중주(二重奏)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유모아로 즐겨주던 학급이 바로 우리 학급이였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불온한자이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사이에도 나의 생각은 곧잘 창문밖의 푸른 하늘과 이랑진 구름사이를 배회하기가 일쑤였다. 교과서에 갇혀있기에는 나의 호기심은 너무나 허기져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년관람불가였던 영화 《야밤의 노래소리》를 보자고 영화관에 갔다가 엄격한 문지기한테 학생증을 차압당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뒤에 학교 교무주임이 그 학생증을 대신 돌려주면서 왈?
《왜 학생증을 압수당한 사실을 진작 말하지 않았습니까?》
가슴이 두근거려나면서 나는 기여드는 목소리로 여쭈었다.
《말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교무주임이 가로되
《말하지 못한게 아니라 말하지 않았지?!》
일문일답은 이 선에서 급정거하였다. 위험부담을 진작 예상했으면서도 기어이 관람불가영화를 보고야만 불온한 학생, 그런 나의 심리를 환히 꿰뚫어보고서도 관용을 베푼 교무주임선생님. 지금도 이 장면을 생각하면 너그러운 교무주임선생님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금할수 없지만 그러나 이런 혼뜨검을 감수하면서까지 하고싶은 일에 빠져들고마는게 그 시절 우리의 기본이요, 불문률이였다.
사실 그 호기심이 값진것이고 그 불온이 아름다운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 갇힌다해도 불씨만 남아있다면 사람은 광명을 찾을수가 있다. 유약한 인간이 만약 호기심의 불씨, 환상의 불씨마저 갖고있지 않다면 그에게 도대체 뭐가 남겠는가?
사람이 나서 제딴의 흥취를 가지고 선의의 탈선을 경험해보는것은 일종 초월이며 축복이다. 사람이 나서 스스로의 장미빛꿈에 미쳐보지 못한다는건 일종 비애이다. 기행이라면 좋을지 장난기라면 좋을지 한마디로 찍어말하기는 어려워도 아무튼 각자 원하는대로 뭔가를 골라잡고 뭔가에 열중하고 뭔가를 시작하며 어딘가를 떠나는 행동은 불온에서 출발한다. 그 불온에서 한 사람의 독자적인 동기가 주어지며 그 불온에서 한 사람의 인생행로가 설계된다. 씨앗을 묻으면 곡식이 자라나듯 동기가 주어지면 노래가 지어진다. 가장 미숙한 시절에 가장 서투른 솜씨로 가장 엄숙한 설계를 하는것이 얼음지치기처럼 아슬아슬하고 자칫 실수나 영원한 아쉬움을 낳을수도 있는것이지만 그러나 그 기회를 어정쩡하게 놓쳐버린다면 한평생 근사한 출발을 해보지 못할수도 있으니 어찌하랴.
확실한 파악은 없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모두가 말리는 이른바 《탈선》을 저지르더라도 자기가 진심으로 소망한바를 자유롭게 실천해보는 시절은 그래서 불온한 시절이면서도 기대에 찬 행복한 시절이요, 가슴 울렁이는 아름다운 시절이 아닐가?
바로 이런 까닭에 나는 계절로는 원숙하고 평온한 가을을 사랑하고 학창으로는 미숙하고 불온했던 초중시절을 각별히 사랑한다. 가을에는 자연의 조락과 더불어 첫서리와 다가오는 겨울추위를 반기며 청춘의 활기를 되찾을수가 있다. 불온의 초중시절을 사랑하면서 나는 생명의 약동, 내면의 활기, 출항의 흥분과 함께 한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지긋한 오늘에 와서도 나는 결정판이고 완결형인 기념행사나 총화행사들보다는 내용미상의 개시형의 포럼이나 개막행사들에 더 짙은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사람은 적당히 숙성하고 적당히 세련되는게 좋다고 믿는다. 너무 숙성하면 새로운 기다림이 없이 자아도취에 빠지기가 쉽고 세련된 옷을 잔뜩 껴입다보면 자칫 그속에 묶이고 갇히기가 십상일테니까 말이다.
어느덧 다시 맞는 초가을이다. 창밖으론 씻은듯 청청한 가을하늘이 유정하다. 솜뭉치같이 탐스러운 구름의 유혹에 이끌리며 나는 오늘도 철없던 소년시절을 꿈꾼다. 고풍의 안락의자보다는 뭔가를 골라잡고 뭔가를 시작하며 어디론가 떠나는 길손으로 남기를 원한다. 어렸기에 자유로왔고 미숙했기에 담대했던 초중생의 들뜬 환상과 가슴뛰는 랑만과 못말리리는 집념을 영원히 간직하고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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