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서- 예악지" 기재에 의하면 당명황(당현종, 당나라 황제)은 악공(樂工, 주악하는 사람) 300명과 궁녀 수백명을 뽑아 이원(梨園, 중국어로 배밭이란 뜻)에서 음악과 무용을 연습시켰으며 이름을 "황제이원제자"로 명명했다. 이로부터 이원은 연극과 극장의 대명사로 되었고, 당명황은 연극계의 조상으로 불리웠다.
중국 "무형문화유산"의 대표로서 복건성 천주시의 남음(南音), 이원희(梨園戱), 인형극 등은 ACCU(아시아태평양문화센터)에 의해 전통민간예술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되었다. 동시에 입선된 중국 연극예술로는 티베트극, 강주고악, 곤극, 나극 등이 있는데 이러한 극종은 대부분 가면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 인형극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중국에서의 인형극은 주로 줄인형극을 말하는데 배우가 막후에서 끈이 달린 인형을 조종해 진행하는 연극을 말한다. 중국 인형극은 한나라때부터 시작되어 원, 명, 청나라때 성행했다. 인형극은 민간 특유의 연극형식으로서 보는 사람들을 황홀케 한다. 배우들의 조종하에 무대위의 인형은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액션을 훨씬 초과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함박만큼 커진 입, 서커스에서만 볼 수 있는 덤블링, 눈앞을 어정쩡하게 만드는 팔다리 액션 등은 현실 생활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환상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인형극에 사용되는 인형은 휴대가 편리하고 연출형식이 영활해 장기간 줄곧 중국 민간에서 가장 중요한 오락방식 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었다. 오늘날 여전히 대표적인 인형극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광동 인형극 속의 "부용선자", "손오공이 백골정을 세번 치다", "나타가 바다를 뒤흔들다" 등과 중국 인형극단의 "대림과 소림", "방울", "백조", "8신선이 바다를 건느다", "학과 거북"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