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는 이름이 양옥환(楊玉環)이며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 고대 4대 미녀로 불리우고 있다. 중국 성구에서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가 바로 이 4대 미녀를 형용한 것이다.
양옥환은 양아버지의 임지(任地)인 사천성에서 자랐으며, 어릴적부터 춤과 노래에 능숙했고 비파 등 각종 악기들 다룰줄 알았다. 17세 때 양옥환은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었으나 대신들의 추천에 의해 현종은 양옥환이 절세미인임을 알게 되어 결국 후궁의 궁녀로 삼고 6년만에 귀비로 책봉했다. 그뒤로 양씨네 많은 가족은 고관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하였다.
당현종의 총애를 받은 양귀비는 당시 황후 못지 않은 대우를 받았는데 그녀만을 위한 자수공예가만 해도 7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양귀비는 남방에서 나는 여지를 특별히 즐겨 먹었기에 사람들은 천방백계로 신선한 여지를 진상했다고 하여 여지를 "비자소(妃子笑)"라고도 불렀다.
755년 그녀의 친척 오빠인 양국충과의 반목(反目)이 원인이 되어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안사의 난) 황제, 귀비 등과 더불어 사천으로 도주하던 중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호위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현종에게 양귀비의 목숨을 요구하였다. 현종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자, 양귀비는 군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사실 안사의 난은 양귀비와 무관한 것이었으나 양귀비는 당현종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양귀비는 당조 궁중 음악가, 무용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녀의 예술적 재능은 역대 황후와 귀비 중에서 최고의 실력이라 할 수 있다. 양귀비는 절세의 풍만한 미인일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뛰어났고 또한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총명을 겸비해 후세에도 그녀의 전기는 각종 희곡이나 극작품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