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小心翼翼"이 성구는 작을 소(小)자에 마음 심(心)자 날개 익(翼)자로 이루어졌다.
뜻풀이
여기에서 "小心"은 조심하다는 뜻이고 "翼翼"는 엄숙하고 신중한 모양을 가리킨다. "조심스럽다", "조심조심"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래
가황중(贾黄中)은 북송(北宋)시기의 걸출한 인물이다. 그는 학식이 깊었을 뿐만아니라 글도 잘 썼고, 성실하게 정무를 보며 또한 백성들을 사랑했다. 그는 사욕을 버리고 오로지 공익을 위해 힘썼으며 정의로운 일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가황중은 열다섯살 어린 나이에 진사(进士)가 되여 당시 사회를 들썽케 했다. 그때의 진사시험은 매우 어려웠는데 글을 배우는 사람들은 3-5년에 한번씩 진사시험을 볼 수 있었다. 한번에 백여명을 모집하는 진사시험에 응시자는 수천,수만명에 달했다. 하여 당조때에는 50세에 진사시험에 급제한 사람들은 그나마 젊은 축에 속했다.
가황중이 어린 나이에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엄한 가정교육과 갈라놓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황중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부친을 따라 글을 읽었다. 밥먹을 때에도 야채만 먹었지 종래로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것은 "진사시험에 급제하기 전까지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부친의 말을 명기했기 때문이었다.
진사에 급제한 가황중은 비서성교서랑(秘书省校书郎)직을 맡았다. 관례에 따르면 몇년뒤 랑중(郎中)으로 진급되게 되어 있었다. 가황중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좀 더 단련시킨 다음에 중용하려고 생각한 송태종(宋太宗)은 그를 의주(宜州)에 태수(太守)로 파견했다.
가황중이 부임된지 얼마 안되어 의주에는 백년에 한번도 보기드문 한재가 들었다. 몇달동안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아 땅이 갈라지고 나무가 말라죽고 백성들까지 굶어죽게 되었다. 가황중은 조정에 도움을 청한 한편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아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을 구했다. 손권(孙权)이 동오정권을 수립한 이후로 줄곧 여섯개 조대의 서울이 되었던 금릉(金陵)은 물산이 풍부하고 인구가 밀집된 곳으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금릉의 태수가 다른곳에 파견된지 얼마 안되어 송태종은 가황중에게 이곳을 맡기려고 했다.
가황중은 태수로 파견된지 얼마 안되어 이곳을 질서있게 다스렸다. 사회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관리들 역시 성실하게 정무를 돌봤다.
이번에는 부고(府库)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뜻밖에 많은 진귀한 보물들을 발견했다. 그 가치는 짐작할수조차 없었다. 가황중은 급히 황제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송태종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까지 부고에 이렇게 많은 보물들이 들어있는것조차 몰랐던 전임 관리들의 소홀함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심없이 이 사실을 보고한 가황중의 청렴함에 기쁘기도 했다.
송태종은 마음속으로 과연 사람을 잘못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를 궁에 불러들여 중서사인(中书舍人)직을 맡게 했다.
그리고는 가황중의 모친을 만나 이 모든것은 아들을 잘 가르친 어머니의 덕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황중에게도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매우 신중했고 큰 일을 두고 결단성이 부족했다. 때문에 송태종은 "조심하여 나쁠 것은 없지만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것 또한 좋지 않느니라"고 타일렀다.
"小心翼翼"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로 매우 조심스러워함을 비겨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