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门可罗雀" 이 성구는 문 문(门)자에 옳을 가(可)자, 새그물 라(罗)자에 참새 작(雀)자로 이루어졌다.
뜻풀이
여기에서 "罗雀"는 "그물로 새를 잡다"는 뜻이다. "대문앞에서 그물을 쳐 새를 잡을 지경"이라는 말로서 "드나드는 소님이 드물어 문전이 쓸쓸함"을 형용하여 이른다. "문전이 쓸쓸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성구이다.
유래
급암(汲黯)은 자(字)가 장유(长孺)이고 오늘의 하남성 복양(濮阳)사람이다. 젊었을때 로자(老子)와 장자(庄子)의 저작을 즐겨 읽었으며 관직이나 높은 봉록따위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급암은 매우 정직했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매사에 공정했기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지방의 관료들은 급암과 같은 인재가 관리가 되어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그를 추천했다. 급암에 대한 소문은 재빨리 퍼져 어느덧 한무제(汉武帝)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무제는 즉시 그를 주작도위(主爵都尉)에 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암은 동해태수(太守)로 임명되었다.
동해태수로 부임된 급암은 그곳에서도 부하들의 존경을 받았다. 각 현의 현령들은 그를 따라배워 백성들을 아꼈으며, 따라서 백성들은 급암을 우러러 섬기게 되었다. 태수직을 맡는 동안 공적이 뛰어났기에 급암은 다시 조정의 사무를 맡아보게 되었다.
한무제 초년, 한조의 북방변경은 늘 흉노들의 침입을 받았다. 흉노군은 사처에 불을 지르고 가축을 빼앗았으며 재물을 략탈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흉노의 침략을 막아낼 수 없게 된 변강의 관리들은 여러차례나 조정에 위급함을 알렸다.
이대로 나아갔다가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을 뿐더러 흉노들이 더욱 제멋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한무제는 흉노를 공격할 결심을 내렸다.
한무제는 자기의 생각을 대신들에게 전하고 대신들의 의견을 살폈다. 많은 대신들이 현재 한조의 실력으로는 흉노를 물리치기에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차마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지 못했다.
이때 급암이 말했다.
"폐하, 일찍 류방이 30만 대군을 이끌고도 흉노에 의해 평성에 포위되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사옵니다. 유명한 장군인 번쾌(樊哙)마저 포위망을 뚫기 어려웠다고 들었사옵니다. 우리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오니 이 싸움을 시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옵니다."
급암의 말을 들은 한무제는 매우 불쾌해 하면서 급암을 달리 보게 되었다.
정장(郑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태사(太史)로 있을때 문을 지키는 하인한테 "무릇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손님이니 빈부를 따지지 말고 예의바르게 접대하거라"라고 했다.
정장도 매우 청렴한 사람이었다. 비록 자산이 많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돈을 꾸러 오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고, 그때마다 거절하지않고 서슴없이 돈을 빌려주었으며 되받을 생각은 꼬물만큼도 하지 않았다. 나라의 대사에 출중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정장은 인재를 매몰시키는 것은 나라에 불리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무제에게 그 사람을 추천했다. 정장의 한고향사람들은 모두 그가 고향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에 정장의 한 부하가 탐오죄로 회남태수 사마안(司马安)에게 적발되자 정장도 면직당했다.
급암과 정장이 높은 관직을 갖고있을 때, 날마다 드나드는 손님들이 매우 많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주인을 만나기 위해 몇시간을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두사람 모두 면직되자 누구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门可罗雀"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로 "문전이 쓸쓸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