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义无反顾" 이 성구는 옳을 의(义)자에 없을 무(无)자, 돌이킬 반(反)자에 돌아볼 고((顾)자로 이루어졌다.
뜻풀이
여기에서 "义"는 "도의"를 기리키고 "反顾"는 "되돌아보다"는 뜻이다. "정당하고 합리한 일이라면 되돌아서지 않고 곧추 앞으로 나감", "정의를 위하여 주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성구이다.
유래
사진설명: 사마상여
림충(临筇)의 큰 부자인 탁왕손(卓王孙)은 딸 탁문군(卓文君)이 사마상여(司马相如)와 몰래 도망쳤다는 소식으 전해듣고 "내 허락도 없이 둘이 사통하여 도망치다니,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내가 얼마나 창피해질가, 이런 불효막심한 자식을 두다니, 내 딸이라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내 재산은 한푼도 남겨주지 않겠다"며 대노했다.
탁문군과 사마상여는 성도(成都)에서 림충으로 돌아와 자신이 갖고 있던 마차를 팔고 칸이 여러개 딸린 집 하나를 마련해 자그마한 술집을 하나 차렸다. 탁문군은 자기가 직접 가게를 돌보았으며 사마상여는 아예 옷을 갈아입고 그릇을 씻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손님들을 접대했다.
전 현에서 대부호의 딸이 술집에서 술장사를 하고 사천의 재자(才子)로 불리우는 남자가 그릇을 씻는다는 말을 들은 림충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또는 탁문군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앞다투어 술집에 모여들었다.
덕분에 술집장사는 눈에 띄게 잘되어 현성을 들썽케 했다.
이 일은 어느덧 탁왕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딸과 사위가 술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차마 그냥 넘어갈수가 없었던 탁왕손은 친척과 벗들의 충고를 듣고 딸에게 큰 돈을 돈과 함께 십여명의 나인들을 보내 술장사를 그만할 것을 권고했다.
그때부터 사마상여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편안한 나날을 보낼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景帝)가 병으로 죽자 아들 류철(刘彻)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가 바로 한무제(汉武帝)였다.
한무제는 부친과는 달리 문학에 애착이 있었을 뿐만아니라 사와 부(辞赋)에도 관심이 있었다. 사마상여는 바로 서울 장안(长安)에 있는 친구 양득의(杨得意)의 집에 갔다.
마침 사마상여의 "자허부(子虚赋)"를 보게 된 한무제는 이 문장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사마상여를 한번 만나고 싶어 했다. 양득의는 한무제의 사냥개를 전문으로 관리하는 관리직을 맡고 있었는데 이 기회를 빌어 한무제에게 사마상여를 추천했다.
한무제를 만나게 된 사마상여는 "폐하께서 저희 <자허부>를 즐기신다 들었사옵니다. 실은 저에게 이 문장보다 더 나은 <상림부(上林赋)〉라고 또 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상림부"를 읽었던 한무제는 사마상여의 뛰어난 재능에 대해 더욱 믿음이 가는지라 그에게 관직을 하나 내주고 궁에 남으라 권했다.
몇년후 한무제는 당몽(唐蒙)을 파견해 서남통로를 부설하게 했다.귀주(贵州)와 사천(四川)의 지방 관리들은 이 기회를 빌어 백성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안겼고 당몽은 지방관리들의 이와 같은 행동을 오히려 부추겼다.
본인은 더욱 잔인했는데 제정된 세수액을 완성하지 못한 마을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등 행동까지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많은 소수민족들이 불안에 떨었고 무력으로 충돌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며 사천은 혼란에 빠졌다.
장안에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무제는 이 일을 크게 중시했다. 그는 사마상여에게 "조정은 당몽과 지방관리들의 처사를 엄히 징벌한다. 그들의 처사는 조정의 뜻과 어긋난 것이다"라는 조정의 뜻을 전해 그곳의 소수민족들을 위로하려 했다. 사마상여는 통지문에 "사천의 여러민족은 변강을 엄수하라, 적의 상황을 발견하면 앞장서 적진으로 돌격하며 정의를 위해 주저하지 말라"고 썼다.
서남의 국세를 더욱 온정시키기 위해 사마상여는 한무제의 명을 받들어 중랑장(中郎将)의 신분으로 고향에 돌아가 황제가 맡긴 임무를 출중하게 완성했다.
"义无反顾"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로 "정당하고 합리한 일이라면 되돌아서지 않고 곧추 앞으로 나감", "정의를 위하여 주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