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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방송듣기
2014-05-08 12:43:21 cri

[편지왔어요]

남: 편지왔어요, 오늘은 먼저 장춘의 이신숙, 최병성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부터 만나보겠습니다.

여: 국제방송 조선어부

김동광 주임을 비롯한 전체 임직원 선생님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우리 애청자들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여러분들께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청명절을 계기로 화피창 혁명렬사릉원에 성묘를 올리고 돌아오던 차 우리 고향마을인 구태시 신립촌에 들려 그곳 노인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덕담미담을 나눈 이야기를 적으려 합니다.

올해 전개된 중국 조선족모범가정 선정활동에 신립촌에서는 김사철 조길순 양주를 모범가정으로 선출하여 그 자료를 상급에 올렸습니다.

양주께서는 90년대에 벌써 신립촌 노인활동을 이끄신 분들입니다. 안해와 남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시고 고독한 나날을 보내다가 "노인들의 큰 집"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눈과 마음이 맞아 70청춘 연애생활을 마감하고 민정부문에서 발급한 결혼증을 받아안고 깨알 같은 행복한 가정을 이룬 부부입니다. 깨알이 쏟아지는 집안 살림도 알뜰히 노년협회와 그 산하 뢰봉반활동, 애청애독자클럽 활동에서도 여열을 발휘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지는 해가 더더욱 뜨겁지요.

조길순씨는 50년대 연변조양천 접생원에서 잃다 스무살 초반에 친척들의 소개로 길림 관마산 산골마을에 사는 몸이 든든하고 일솜씨가 빠른 무던한 총각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당시 생산대노동에 하루도 빠짐없이 일한 덕분으로 흙집이나마 3칸 짜리를 마련하게 댔습니다. 가정 기물도 웅사패 라디오, 해방패 발마선에 상해브랜드의 손목시계도 남편의 손목에 채워드렸습니다. 남에게 뒤질세라 집뒤엔 오얏나무, 앵두나무를 옮기고 앞마당엔 산머루를 몇뿌리 떠다 심었지요. 3년이 지나 봄이 오니 그윽한 꽃향기를 봄바람에 실고 열어 놓은 뒤창문으로 날아들어왔습니다. 가을이 오면 과일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과수가지가 휘어져 검붉게 익은 탐스러운 오얏들이 땅에 척 드리웠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룬지 3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어 가문의 대를 이을수가 없어 고민하던 끝에 조길순씨는 남편이 그렇게 권유하는데도 마다하고 끝내 갈라졌습니다.

팔자를 탓하면서 몇년 후 고독하게 지내던 조길순씨는 어느 날 내몽고 훅호트시에서 일하다가 안해가 어린 아이 셋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떠난 후 조길순씨가 있는 생산대대에 오게 된 김씨 양반을 만나게 됩니다.

자식하나 없는 조길순 씨는 생산대장의 협조로 그 양반과 연분을 맺게 되고 아이들을 다 키워 시집장가를 보내고 시름을 놓을만 하니 남편이 병으로 떠나게 되어 또 다시 홀몸이 되었습니다.

김사철씨는 김의사라고 하면 이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안도현 석문향에서 태어나 1950년 해방군 변방 15퇀에서 의료사업을 하다 길림성 사평기 공업국 병원으로 전업했습니다. 그러다 1962년 당시 구태현 구교공사 신립대대에 와서 대대위생소에서 사원들의 병을 치료해주었습니다.

60년대 중반 단란하던 김의사의 가정에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의사의 부인 박여사님이 어린 4남매를 두고 총망히 하늘나라로 떠난 것입니다. 김의사는 하늘을 우러러 부인을부르고 땅을 치며 통곡했지만 철부지 애들한테 마음의 상처를 남길가봐 툭툭 털고 일어나 엄마 몫가지하면서 그 어려웠던 시기를 버텨오느라 안깐힘을 다했습니다.

신립촌 구교공사 신립관리구에는 구태진 산하 여러 마을에서 수전농사를 지으며 터전을 닦던 조선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신립촌 제1임 당지부서기 김춘기는 조선전쟁에서 적과 싸우던 그 기백으로 군중들을 이끌고 약 400세대에 달하는 마을을 일떠세웠고 마을 앞 습지 등을 개간해 옥토수전을 만들고 해마다 대풍작을 거두며 사원들의 삶의 질을 높혀 주어 인근 마을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하지만 김춘기 서기는 전례 없던 흑설풍에 반란파라는 루명을 쓰고 직무뿐 아니라 생명까지 빼앗기고 맙니다. 참 허무한 세월이었죠. 일각에 기둥을 잃은 김춘기 서기의 안해 진여사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시부모를 모시고 6남매를 이끄는 진여사의 강한 의지를 우리는 짐작하고도 남지요.

몇년이 지나 시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전례없던"그 시절의 상처가 아물무렵 김의사와 진여사님은 사랑보다는 열명이나 되는 어린 것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1971년 두 집은 합가하게 됐습니다. 또 한번의 무지개가 피어올랐죠.

반장과 부 반장을 담당한 두 분은 어린 것들을 위함이면 무슨 일이던 다해 두 집 큰 아들을 인민해방군에 참군시켰고 두 집 막내들을 하나는 동북사범대학에, 다른 하나는 장춘광전기계학원에 입학시키는 등 이렇게 열남매를 하나 허실없이 시집장가를 다 보내고 나니 40년 세월이 흘렀지요.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사이 없다더니 이제 한 시름 놓고 이집 저집다니며 손자손녀들이나 돌보자고 하니 진여사님이 한발 먼저 떠나면서 김의사의 마음에 또 하나의 멍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앞에서 말씀드린 김사철, 김의사와 조길순 두분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김사철 조길순 부부의 가훈은 "여생에 많이 베풀자"로 정했습니다. 양주는 2만원 어치에 달하는 개인 소유의 의료보건 기자재를 전부 노인협회 휴식실에 기증해 노인들이 자유로이 사용하게 했습니다. 이외에 또 3천원을 들여 당구판을 구매해 활동실에 기증해 회원들의 활력소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또 재해지역과 빈곤지역에 대한 모금행사에는 한번도 빠짐없이 참가해 모범가정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는 부부입니다.

비록 눈이 좋지 않고 손이 떨려 직접 편지를 쓰지는 못하지만 이 두 내외는 귀방송 퀴즈풀이 답안만은 번마다 채수길 애청애독자회장에게 회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이나마 덕담을 나누고 두분의 장수를 기원하면서 귀로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춘 애청애독자클럽 관성구 소조

이신숙, 최병성

4월 23일

***

사연 보내주신 이신숙, 최병성 청취자 고맙습니다. 중국 조선족모범가정 선정행사의 구체적인 시간은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김사철, 조길순 내외분이 선정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부부의 인연은 더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죠. 두 어르신이 따뜻한 사랑의 울타리를 만들어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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