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9 09:42:52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92] 이사라: 이족의 첫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이사라촌)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중 아흔 두 번째는 이족의 첫 동네 이사라(迤沙拉, Yishala)촌이다. 이사라촌의 넓은 포도밭에 서면 벌판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은은한 선율과 함께 이족처녀의 귀맛좋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이사라촌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전인 명(明)나라때 조성된 마을이다. 이족언어인 이사라의 그 뜻은 “물이 새는 곳”이다. 마을 총 인구의 96%가 이족인 이사라촌은 중국에서 이족의 첫 동네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유구한 이민역사와 특이한 역참(驛站)의 지위로 인해 이사라촌은 중국의 이민사와 서남역도사, 민족촌사, 이족과 한족의 교류사 등을 한 몸에 모은 살아 있는 교과서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이사라촌의 일각)

크지 않은 이사라촌에는 이족과 한족문화의 융합을 보여주는 유적과 제갈공명이 군사를 주둔시켰던 장소, 남부 실크로드 연선의 역참, 포도밭, 특이한 고대 음악, 풍부한 음식문화, 다른 지방의 이족과 전혀 다른 특이한 이족의상 등 많은 역사문화보물들이 남아 있다.

남부 실크로드로 불리우는 고대 중국 서남역도(驛道)는 사천(四川, Sichuan)성의 소재지 성도(成都, Chengdu)에서 시작해 운남(雲南, Yunnan)을 거쳐 버마에 이른다.

그 중 이사라촌은 사천경내에서 운남경내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전한데 의하면 그 때 이사라촌의 나루터에는 사천과 운남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로 “촉진교회”라는 네 글자를 새긴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이사라촌)

이사라촌의 이족 중에 한족의 성씨인 모(毛)씨나 장(張)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데 고증에 의하면 이들은 중국 중원지대의 소산(韶山) 모씨와 동족이라고 한다.

오늘날 이사라촌에 사는 대부분 이족은 명나라때 중국 중부의 남경(南京, Nanjing)이나 강소(江蘇, Jiangsu), 강서(江西, Jiangxi)일대로부터 남진한 군인의 자손이다.

지난 600여년동안 두고온 고향을 잊지 못하는 그들은 “남경 응청부(應天府), 대패 유수만(柳樹灣), 생계를 위해 사천으로 종군했네”라는 노래를 자자손손 부르고 있다.

(사진설명: 이사라촌의 건물들)

오늘날 이사라촌의 이족은 거의 모두가 이족과 한족의 혼혈아 자손으로써 오랜 세월동안 이족의 풍속에 익숙해졌지만 한족의 많은 문화와 풍속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때문에 이사라촌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른 곳의 이족과 다르고 집안에 가마를 거는 이족의 풍속과 달리 이 곳에서는 집집마다 불단만 만들고 가마를 걸지 않는다.

이사라촌의 건물에서도 이 곳 사람들이 구도와 골목의 설계를 아주 중시했음을 볼수 있다. 집집마다 정원이 딸리고 하얀 벽에 검정 기와를 얹었으며 날아갈듯한 처마를 하고 있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이사라촌)

때문에 아늑한 정원과 꼬불꼬불한 길, 정교한 조각물이 즐비한 이사라촌에 들어서면 중국 남부의 시골이 아니라 강남의 어느 이름없는 마을에 들어선듯 착각하게 된다.

중화민족 역사상 특수한 민족 대 융합의 전과정을 지켜온 이사라촌에 들어서면 마치 세월의 터널을 뚫고 몇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사라촌이라는 자그마한 창문을 통해 두 민족의 융합사를 보는 듯 많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사라촌에는 통양구이와 쇠고기찜, 호박닭, 양고기 전골, 양곰탕 등을 비롯해 많은 음식이 있다. 세상과 동떨어진 아늑한 곳에서 유구한 문화유적을 보고 맛 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위치: 사천(四川, Sichuan)성 반지화(攀枝花, Panzhihua)시 인화(仁和, Renhe)구 평지(平地, Pingdi)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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