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중경)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일흔 네 번째는 안개 속 산의 도시 중경(重慶)이다. 중경은 도시가 산세를 따라 조성되었다고 해서 산의 도시 산성(山城)이라 부르고 해마다 겨울과 봄이면 안개가 자욱하다고 해서 안개의 도시 무도(霧都)라고도 부른다.
여름이면 맑고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중경은 ‘중국의 3대 화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도시가 바로 장강(長江)의 기슭에 산세를 따라 조성된 유명한 역사도시 중경이다.
고대에 파주(巴州), 유주(渝州)라 불린 중경은 중국의 서남부, 장강과 가릉강(嘉陵江)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쪽으로 산에 의지하고 삼면으로 강물을 이웃한 중경은 3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다.
(사진설명: 중경의 고건물)
기원전 700년대의 춘추(春秋)시대에 강주(江州)라 불린 중경은 파(巴)나라의 도읍이었다. 그 뒤 진(秦)나라가 파나라를 멸하고 중경에 파군(巴郡)을 두었으며 강주성을 축조했다.
226년 촉한(蜀漢)의 도호(都護) 이엄(李嚴)이 강주성의 외곽에 둘레 7km 길이의 성을 쌓았다. 북송(北宋) 때 중경은 유주라 불렸는데 당시 유주의 지방관 조심(趙谂)이 역모를 꾀했다.
사전에 상황을 파악한 송효종(宋孝宗)이 조심의 역모를 진압한 후 유주라는 지명이 불길하다고 생각해 모두가 송왕조의 지배를 공손하게 따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공주(恭州)라 명칭을 바꾸었다.
(사진설명: 번화한 조천문 일대)
1188년 공주가 임지인 황자 조순(趙淳)이 공왕(恭王)으로 책봉되고 그 해 2월 송효종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공주는 ‘두 가지 경사가 났다’는 의미로 중경으로 개명해 오늘날에 이른다.
명(明)나라 초반에 중경성을 증축하면서 9궁8괘(九宮八卦)의 수에 따라 17개의 성문을 냈는데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성문이 조천문(朝天門)이다. 이 성문은 송왕조 천자가 있는 남경(南京)을 향하고 이 곳에서 황제의 어지를 받는다고 해서 조천문이라 이름했다.
장강과 가릉강이 합류하는 곳에 깊숙이 들어간 조천문에는 오늘날 광장이 조성되고 근처에 조천문 부두가 있는데 초여름이나 늦가을이면 두 갈래의 강물이 모여 만드는 험한 소용돌이를 볼 수도 있다.
(사진설명: 번화한 해방비 일대)
민족로(民族路)에 위치한 해방비(解放碑)는 1947년 8월 항일전쟁의 승리와 중경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오늘날 중경의 심벌이 된 해방비는 1950년 ‘인민해방비’로 이름을 바꾸었다.
27.5m 높이의 해방비는 처음에 목조 건물이었으나 후에 시멘트 구조로 개축했다. 비석 내부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조성되어 등정이 가능하며 주변에 중국의 서남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상가가 조성되어 있다.
삼면이 강물이 잇닿아 있고 한 쪽으로 산세에 의지한 중경은 도시 전체가 독특한 입체도시 경관과 입체 교통경관을 자랑하며 산의 도시라 불린다. 또 중경의 주변에는 아늑하고 수려하며 험준하고 웅장한 진운산(縉雲山)과 온천 등 많은 명산과 정원이 있으며 유명한 장강삼협(長江三峽) 명소도 있다.
(사진설명: 장강삼협 중 구당협의 가을)
중경과 호북(湖北)이 만나는 곳에 이른 장강은 갑자기 기복을 이룬 무산(巫山) 산발을 만나자 엄청난 자연의 힘으로 산발을 뚫고 흐르며 장강구간에 가장 험준하고 가장 기이하며 가장 수려한 협곡경관을 조성했다.
중경의 백제성(白帝城)에서 호북의 남진관(南津關)까지 이르는 200km 길이의 장강삼협은 험준한 지형과 수려한 경치, 웅장한 기세, 수많은 명승고적으로 세상에 명성을 떨친다.
장강 기슭, 장강 삼협 중 한 구간인 구당협(瞿塘峽)의 북쪽, 백제산(白帝山) 위에 건설된 백제성은 서한(西漢) 후반에 공손술(公孫述)이 처음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백제성)
장강삼협의 관문인 백제성은 역대 군사가들이 서로 다투는 요충지였다. 오늘날의 백제성은 청(淸)나라 때 개축했으며 명량전(明良殿)과 무후사(武侯祠) 등 건물을 거느린다.
역대로 수많은 학자와 명인들이 백제성에 올라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해서 백제성은 일명 시의 성, 시성(詩城)이라 불리기도 한다. 장강삼협 댐이 건설되면서 원래 강가에 위치했던 백제성이 현재는 섬이 되어 더욱 매력적이다.
3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경은 아름다운 자연경관 외에도 풍부한 파유(巴渝) 문화와 배도(陪都) 문화를 자랑한다. 중경에는 조어성(釣魚城) 고대 전쟁 유적지와 대족석각(大足石刻), 무산(巫山) 고대 인류 화석 유적지 등 많은 문화 명승이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대족석각)
중경에서 160km 거리에 위치한 대족석각은 당(唐)나라 때에 조성을 시작해 오대(五代)와 송(宋)나라를 거쳐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에 마감되어 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40여 곳의 석각과 5만 기의 불상이 있는 대족석각은 중국의 대표적인 석굴예술 중 하나이다. 넓은 면적의 대족석각에서 북산(北山)과 보정산(寶頂山)에 석각이 가장 많이 집중되고 이 두 곳의 석각 규모가 가장 크며 밀집도도 최고이다.
유구한 역사와 눈부신 문화를 자랑하는 중경은 또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보유한 홍색의 도시이기도 해서 많은 혁명유적을 보유한다. 항일전쟁 때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중경에는 국민당 고위 관리들의 저택과 사무실, 국민당 군대의 군수고 등 많은 건물이 건설되었다.
(사진설명: 가락산의 백공관)
항일전쟁 승리 후 이런 건물들은 국민당이 혁명가와 공산당인을 감금하고 취조하고 살해한 장소가 되었다. 오늘날 국민당의 비밀 감옥이었던 백공관(白公館) 등 건물이 있는 이 지역은 가락산(歌樂山) 혁명열사릉으로 재조성되어 중국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을 기린다.
유구한 역사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형성했다. 중경의 음식 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샤브샤브인 중경화과(重慶火鍋)이다. 맵고 얼얼하고 시원하고 고소하고 매운 특징의 중경화과는 중국의 음식문화 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중경의 거리를 거닐면 거리와 골목 곳곳에 여러 가지 브랜드의 샤브샤브 집이 줄지어 있고 그런 음식점마다 손님들이 가득 차서 중경은 또 ‘화과의 도시’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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