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숨쉬는 민들레

또 그것이다. 스파게티, 빵에 버터,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 주중에 두 차례식 되는 미국인 교사들에게 차려진 특혜의 점심식사 시간이긴 하지만 교사모두의 점심 파티이기도 하다. 입을 갖고 식사의 행복을 표정에 듬뿍 묻히고 점심마다 모이는 것의 궁극이 바로 이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싱겁기만 하고 살만 찌는, 만나자 마자 내 입맛의 집에서 쫓겨난 맛의 지옥이다. 빠아갈 고추장이나 짭잘한 졸임의 맛 앗긴 식생활은 싱거운 성격의 서양인을 만들어낸 이유가 아닌지 모르겠다. 흘리는 웃음속에 담긴 hi나 hello도 스쳐지나는 바람결마냥 진실한 감 마음에 와닿음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표정 속에 정감의 가나다라를 환하게 그리고 있는 그러한 모습에 젖어버린 시야의 시골스러움인지…..

등돌리고 나왔다. 벙긋거리는 봄은 그리움의 이별을 이기고 마주 선 애인마냥 두 팔을 활짝 펴 보인다. 넓고도 포근한 봄의 품에 안기니. 민들레나 캐여보자는 봄아씨 다운 서정이 살폿 찾아든다. 에어콘을 품은듯한 봄빛의 은근한 키스를 온몸의 입술에 받으며 봄탯줄을 끊고 나온 나물풀들의 자취를 찾아간다. 봄은 아기자기한 부부마냥 하많은 생명을 세상에 선물해야 사랑의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산과 밭이 이어진 연접의 곳들엔 아름다운 오솔길이 나 있었고 길 양가엔 민들레들이 유난히 파아란 마을들에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은 봄빛의 자취 따라가며 폭신해진 땅의 젖을 물고 파아란 미소를 짓고 있다. 장유가 없고 순차가 없이 살고 싶은 곳에 태여나서 나름대로의 새 생의 보람됨을 즐기며 정심 양광의 은혜에 파릇파릇한 봄인사 보내고 있다.

'겨우내 안녕하셨나요 ' 하고 곱상스레 허리굽히는 모습에 기분은 봄의 망또를 걸친다. 하지만 아릿다운 인사의 메시지도 본능의 사나움 앞에선 어쩌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을 팔고 말았다. 유혹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없듯이 따뜻한 문안에 해답의 미소 보내길 거절하고 아름다운 봄 사냥에 고집을 앞장세웠다.

민들레의 얼굴만 갖고 있으면 선별없이 캘 수 있는 그 만족에서 오는 재미에 얼이 쏘옥 빠진 것도 같다. 내년 기약도 하지 못하게 몽땅몽땅 캐여버리면 난 정말 어떻게 해요? 하는 식의 애원 가까운 불만이 내 마음의 귀에 분명 파고 들어오는 소리를 느끼면서도 그 하소연 가엾이 품어주고 살펴줄 만한 고운 심상은 이미 욕망의 독 채우기에 자리양도를 하고 있음이다. 눈과 판단과 힘을 투자한 욕심쟁이의 마음이라 여지란 없었다.

소복소복 차오르기 시작한지 얼마쯤 지났다. 주머니의 배는 봄천사 민들레를 만삭이 되게 잉태하고 있음이다. 생명이 생명 속에 가서 생명의 신장을 받들어주는 새 보람의 전설은 바야흐로 만들어 지고 있었다.

봄의 부부가 보내주는 생명의 정기와 자리를 같이하고 봄을 캐고 있으니 신부가 되는 시각 만인의 축복 속에 받은 남편의 키스마냥 한없이 부드럽고 끝없이 이쁘장 해지는 마음은 아름다운 너울을 쓴다. 겨울 심술의 사슬에 얽혀 웃음 한번 풀어놓고 해본적 없었던 심정의 허리가 쭈욱 펴진다. 마음의 집엔 봄의 손님들이 빼곡히 앉아 잔칫상 푸짐히 차려놓고 자연의 환담을 즐기고 있다.

계절의 생리란 돌아오는 날을 위해 쉬임없는 행정과 같이 함이다. 민들레란 아가씨는 그 흐름의 띠를 타고 여름의 민박에서 다리쉼을 마치고 재 출발을 약속한다. 얄미운 '남자'의 손에 의해 꺽기기도 하는 경우 한 두번 아니겠지만 모든걸 한숨 속에 날려 버리고 드디여 가을의 집에 도착하는 날을 맞아 온다. 가을에도 민들레는 주렁진 열매를 안아름 수놓으며 백발에 깃든 파아란 만남의 약속 전해 온다. 하지만 한토막 생을 마치게 되는 겨울여행 떠나 보내야 하는 그 눈물 어림때문에 답장을 보내고 용기 내여 그의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못남이 내내 내 마음의 향기를 앗아간다..서러움 덮어 참을 줄 모르는 연약함을 하얀 설탕묻은 말로 달래여 본다. 그리고 그리운 그 얼굴 보게 될 봄의 집에서 그 품을 다시 느낄수 있는 사람으로 있을 그날을 그려본다.

삶과 하직하는 민들레의 가슴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가! 서러움의 정상에 서서 사멸의 두려움에 잡혀 떨고 있을가? 다시 찾아와 줄 봄애인의 모습만 가슴에 새기고 웃음으로 생의 여정에 끝점을 찍을가, 여름의 푸른 사랑을 내키는데로 펴지 못하고 가을에 백발 되는 너무 짧은 자신의 한생을 한탄하고 있을가…….

갈 때가 되였다. 더 담을 그릇도 없거니와 워킹 시간이 금방이다. 넘치게 찬 주머니를 들고 넘치게 받은 봄사랑에 감사하며 귀로에 오른다. 미처 마음을 주지 못했던 쪽은 눈요기라도 해주고 가야 할 것 같어 눈길을 보낸다. 겨울 사나이의 냉대에 몸부림치다 죽어버린 봄들이 덤불 되여 전신을 비꼬고 비틀어진 난리상을 하고있다. 저러한 삶에 생명의 나물이 사는 집이 있을가 의심하면서도 눈길 보내게 하는 욕심쟁이의 마술에 이기는 수 없이 걸려든다. 헌데 눈길에 묻어나오는 광경은 마음의 박수 소리를 불러내고 흥분으로 하여 벌려진 입은 사랑에 젖은 연애와도 같이 오래 동안 다물어 지질 않는다.

거기는 과연 민들레의 왕족이 모여 사는 곳이였다.

잎만 봐도 윤기 함초롬하고 아름다운 연녹색인데다가 그 크기 또한 으뜸이라 민들레의 황제나 왕비라고 불러야 할 만큼이다. 너무 넉넉해서 마구 넘쳐나는 기분에 끌려 고운 손이 긁히우는 것도 내버려 둔채 덤불을 해친다. 드문드문 나 있는 민들레건만 내 느낌의 공간은 빈틈 없는 찬탄으로 가득 해진다.

뿌리내리기 쉽고 존재 알리기 쉬운 삼터를 찾아가는 동족을 바램하고 원 터전을 틀림없이 지키는 그 바위같은 의지의 세계에 감동의 키스를 보내고 싶어진다.

민들레에게도 하늘이 있는가 보다. 조만간에 이룩할 수 없는 차원의 땅에서 수확을 만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곰상곰상하는 시녀가 아니라 허리를 내 맡긴 그이 앞이라야 미소 보이는 공주의 품성이였다. 깊숙히 뿌리를 박고 있어 신경을 만땅으로 기울이고 소심해야 했었다. 깊숙히 대주고 힘껏 아래로 파면서 칼의 날쪽을 힘주어 돌려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아니 하면 잎들은 금방 뿌리에서 잘려나가 제 각기 낯가림을 하여 퍽 성가시게 된다. 황차 주머니가 수확에 만삭이 된 상황이라 그 흩어진 것들은 별로 소중하지가 않게 된다. 각자가 뭉쳐 하나로 되여 있을 것이 필요함은 민들레도 알고 있었나 보다.

민들레는 긍지에 부푼 파아란 가슴들을 쏙옥쏘옥 내밀고 연녹색의 홍보판을 대롱거렸다.

'뿌리라는 것은 육안에 환히 보이진 않아도 생명의 발원지로 산다. 그리고 생에 투기를 하는 식구는 순간을 빌어 마침표를 찍어주는 종말의 날카로움도 다분히 갖는다. 이것이 삶을 만드는 나의 룰이다.

그러했다. 뿌리의 삶에도 양면의 세간살이는 그 생명에 필수적인 숨통인가 보다.

인간도 한포기 풀인양. 자연이 낳은 자식으로 숨쉬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