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12-17 12:52:40 | cri |
남: 그럼 계속해서 장춘의 김석찬 청취잡니다.
한창송,송휘선생님:안녕하십니까?
오늘 보내는 글 은 12월24일,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에서 조직한<우리말 방송 소감 발표대회>에서의 저의 발원고입니다. 저는 더많은 애청자들이 김봉숙 할머니와 박철원부부의모범사적을 알고 따라 배우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 글을 준비했습니다.
국제방송 청취소감---박철원 선생은 나의 본보기
연변조선말방송 애청자협회 회장이며 연길시 로인뢰봉반자원봉사자인 박철원 선생은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 지역사회 노인 뢰봉반 반장, 올해 78세인 김봉숙 할머니의 제3대 "지팡이"로 되었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16살에 공장 일터에 나선 김봉숙 할머니는 29살에 외동딸을 잃고 비통을 이기지 못해 두눈이 실명되고 남편마저 페암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면서 홀로 외롭게 지내게 됐습니다.
박철원선생은 5년전에 연변방송을 들으며 늘 "가요 데이트" 나 "이 밤을 함께 합시다" 프로에 열심히 참여 하는 김봉숙로인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때 김할머니의 생활은 80고령의 뢰봉반 고문인 한무길 선생과 박연희 노인이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김봉숙 할머니에게 가족의 힘을 실어준 제2대"지팡이"역할을 하게 되었고 박철원 선생은 이에 가담해 김할머니를 돕고 또 다른 로인들의 힘도 덜어줄 수 있지 않는가 하는 마음에서김봉숙 할머니의 제3대"지팡이''로 나섰습니다.
할머니는 집도 땅도 저금도 없는 청빈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 음력설을 맞으며 박철원 선생은 특별히 안해와 아들딸,두 손군을 데리고 김봉숙 할머니집을 찾아 함께 설을 쇠었습니다. 뢰봉반 로인 몇분도 참석한 자리에서 그는 맹인로인 김봉숙할머니를 "고모" 라 부르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할머니는 전주 김씨이고 안해 봉선이도 전주김씨이다보니 한집안이라며 "고모" 로 모시고 살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로 부터 그는 할머니의 생활을 살피며 뢰봉반사업을 협조하는 "비서"로 나섰습니다. 그날 그들 3세대는 차례로 큰 절을 올리며 할머니의 허락을 받았으며 할머니는 날따라 늘어나는 "식솔"들의 정성에 감격해하며 아이들에게 의미심장한 덕담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정식 할머니의 "지팡이"자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마음속으로부터 설레이며 충실히 ,알뜰히 살펴드리리라 작심했습니다.
당산 지역사회에서 로인대학을 세울 때 할머니는 첫 사람으로 학잡비를 냈고 학교에 다녔습니다."지팡이"도 가이드학원이 되어 아침에 모셔가고 방과후에는 모셔오면서 열심히 배웠고 어떤 날에는 다른 행사가 있다 보면 학교에 모셔다 드리곤 달려가 행사활동을 마치고 다시 모시러 가군 했습니다.
하루는 안해가 조용히 그 한테 입을 열었습니다.남들이 "너의 남편은 왜 소경할머니의 팔장을 끼고 다니느냐?","너의 복을 다 떼간단다."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고 말한다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안해가 "우리 남편은 기자다."라고 한마디 대꾸 했답니다. 참 잘하고도 잘한 대답이었고 너무도 감사한 대답이었습니다.
박선생은 가는 곳마다에서 "지팡이"주인인 "뢰봉할머니"의 사적을 소개하며 사회문명을 호소했습니다.
2011년8월, 그는 할머니를 모시고 구태시 신립촌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의 로인들은 "연변뢰봉"의 사적에서 큰 감동을 받았으며 연변의 맹인할머니가 저렇게 자랑찬 삶을 살아가는데 몸 성한 우리들이 왜 못하는가?하면서 그들도 로인뢰봉반을 설립하고 불우이웃돕기에 나서며 사회에 열심히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로서 또 한번 "지팡이"활약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박선생은 "지팡이"를 기다리는 로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2012년에는 90차, 2013년에는 계획200차, 실제로 272차 내왕하며 "지팡이"역할을 했습니다. 연길시 하남에서 자전거로 북대촌의 언덕을 올라 할머니 댁에 가고나면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땀벌창이 되군 하지만 부모님 뵈러 간다는 마음에 힘든줄 몰랐고 환한 웃음으로 문을 열어주며 반겨줄 때마다 그 기쁨은 오로지 그 "지팡이"만이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하루는 건너도 이틀은 넘기지 않고 달려갔으며 뢰봉반 행사도 설계하고 전화도 눌러드리며 혈압을 재드리고 생활쓰레기도 버려주웠고 어떤 때에는 할머니 혼자서는 식미가 없지만 그 "지팡이"를 위해 식사상을 갖추어 주며 함께 맛나게 식사하는 와중에서 많은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반년간 약수도 날랐습니다.우리집에서는 딸이 사다준 정수기물을 마시고 있지만 할머니는 수도물을 마시는걸 보고 그와 안해는 한가족인 우리할머니도 좋은 물 마시게 하려고 이틀에 한번씩 약수를 날라드렸습니다.아무리 시간이 바빠도 오늘 못가면 할머니가 뭘 마시겠는가 고 생각하니 짬이 꼭꼭 있게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보건품경영회사의 경리가 할머니집에 놀려왔다가 "약수사연"을 알고는 할머니의 건강도 살피고 "박기자"도 해방시킨다며 자기네 회사의 정수기 한대를 무료로 가져다주었기에 "지팡이"의"약수배달"이 실업당한 셈입니다.
예전에는 여러차 입원했고 심장병으로 구급까지 받앗던 로인이 감사하게도 그 "지팡이"의 부추김을 받으면서부터 병원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보건도 따르고 정신요법도 따라가니 건강상황이 많이 좋아진편이 여서 "지팡이'로서 너무나도 기쁜일입니다.
할머니는 방송과 더불어 살고 그 "지팡이"를 믿고 살며 세상소식도 제때에 접하고 사회의 어려운 사연들도 너무너무 잘 알고 있다보니 언제나 도움의 길에 나섭니다.그는 고작 1600원의 퇴직금에서 달마다 1000원은 따로 떼내여 그 누구를 도울 타산부터 합니다..박선생이 매일 일기를 쓰며 할머니의 사랑일기를 적었는데 1012년에는 7500원의 성금이 나갔고 지난해에는 1만2200원의 사랑의 성금을 내놓았습니다.그것도 그 "지팡이"가 많이 설득하며 제한한 실정 입니다. 아니면 2만원을 넘겼을겁니다.올해에 들어서도 첫달부터 언어장애어린이들을 도우며 애심기여가 이어지고 있어 "6.1"절에는500원,운남 로전지진에는2000원을 기부했고 로인절30돐을 맞으며 자기가 받은 상금 5000원을 주 노년협회에 기증하는 등 할머니의 애심은 늘 식을줄 모릅니다.
"지팡이"는 영광스럽습니다. 더우기 "도덕모범"이며 "연변의훌륭한인물" 인 김봉숙로인의 "지팡이"는 더욱 영광스럽습니다.지난해 8월 중앙인민방송국과 연길시당위 선전부에서 공동주최한 행사에서 김봉숙 반장과 그 "지팡이"는 나란히 "시대선봉"으로 표창받았으며 그의 자그마한 기여로 한 장애인이 기쁨을 느낄 때 그 "지팡이"도 행복에 넘칩니다.
안해는 맛나는 음식이 생기면 "고모"부터 생각하고 가족사랑 시간을 할머니에게 많이 돌리라고 떠받들어 줍니다. 할머니도 그 "지팡이"를 너무도 아끼며 사랑하고 맛나는 음식이 생기면 그부터 챙겨줍니다.누군가 닭밥을 보내왔는데 할머니는 한술도 안들고 그더러 소멸하라고 하였습니다.한번은 할머니가 저녁에 샤와하시고 미끄러져 팔을 상했지만 그 "지팡이"가 너무 피곤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온밤을 혼자서 고통을 참으며 알리지 않았기에 이튿날에야 알게 되어 믿음과 사랑, 의리가 앞서는 할머니가 감사하기만 하였습니다.
올해는 국경절을 맞으며 그들 부부는 할머니를 모시고 통화지구 의천양 림업국에 있는 동천에 피부병, 골과부실, 소염효과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요양지로 모셨고 내년에는 할머니가 그리워하시는 조선바다의 해수욕도 체험시킬 타산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부부는 할머니의"지팡이"가 되면서 인생을 다시 한번 터득하게 되였고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더 생동하게 알게 됐으며 문명부강한 나라에서 조화로운 사회의 넘치는 사랑으로 베풀며 사는 인간으로 되리라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박선생은 합격된 "지팡이"로 되어 김봉숙 할머니의 여생을 충실히 보살펴드리며 뢰봉정신 고양으로 로후의 꽃노을을 장식하면서 깊고 깊은 "지팡이" 감수를 터득하리라 디시 한번 다짐해 본다고 말합니다.
저는 국제방송국 <편지왔어요>프로에서 황순금 청취자의 <생활수기 대상 수상>편지를 통하여 연변인민방송국과 연변 제2병원이 공동 주최한 제5회 생활수기 공모수상식에서 박철원 선생이 쓴 생활수기 <지팡이 소감>이 대상을 수상했으며 대상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현장에서 박선생은 3000원의 상금은 주인공 할머니에게 돌리고 생화묶음은 "지팡이"를 열심히 떠밀어준 안해에게 안겨주었다는 수기를 읽고 김봉숙할머니와 박철원 부부의 고상한 품덕과 그들의 숭고한 소행에 매우감동됐습니다.
한사람이 한 두번 좋은 일을 하기는 쉽지만, 한평생 계속 좋은 일을 하는것은 조련찮은 일입니다.
저는 앞으로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열심히 따라 배우겠습니다.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 녹원구소조 김석찬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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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박철원 청취자의 감동적인 사연을 담은 김석찬 청취자의 편지 잘 보았습니다.
남: 박철원 청취자의 사연도 감동적이지만 이토록 우리 청취자들사이에, 그것도 같은 연변 지역도 아닌 장춘과 연변 청취자 사이에 이처럼 돈독하고 끈끈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 참 보기 좋습니다.
여: 그것도 우리 전파를 통해 인연이 쌓이고 이런 인연을 쭉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참 뿌듯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는 응당 "전파만 스쳐도 인연이다"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 것같습니다.
남: 녜, 그렇습니다. 좋은 인연 이어가시기 바라겠구요,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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