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12-25 16:31:41 | cri |
여: 국제방송국 임직원 선생님들 인민의 방송사업을 위해 수고하십니다.
나는 오늘 수년간 교육사업에 몸담아 온 전금녀 선생의 사적을 듣고 감동되어 필을 들었습니다. 전금녀 선생은 1953년 5월 3일 화룡현 복동진의 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같은 또래들과 잘 어울렸으며 남들과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는 화룡현 복동진 고중을 졸업하고 농촌에서 적극적으로 일하고 선두 모범 역할을 보이면서 1977년 6월 30일에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전금녀 선생은 1985년 연변사범학교 화룡분원을 졸업하고 고향인 복동진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화룡현 교육국의 배치에 따라 화룡현 용수평 중심소학교에 조동되어 교도주임업무를 맡다가 연변사범부속소학교 교도주임 그리고 연길시 백산실험소학교 교장직을 맡았습니다. 전금녀 선생은 교육일터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열정적으로 일해 선후로 화룡현 우수교원, 화룡현 도덕교육선진실무자 연길시 우수교원 중국수학학회 회원, 중국올림픽수학우수지도원, 중국올림픽수학 일급교원 등 영예를 따냈으며 5편의 논문은 성급이상 학술계에서 표창받았고 12편 교육논문이 중국 조선족 교육잡지에 발표됐습니다.
전금녀 선생은 15년간 반주임을 담임하면서 늘 생활이 어렵고 곤난한 학생들을 많이 도와주고 실제 곤난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노임으로 어렵게 사는 학생들의 옷과 필기장, 연필 등 기타 생활 및 학용품들을 해결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각종 활동 특히 6월 1일 어린이의 날 등 활동 때면 그들의 점심반찬까지 챙겨주어 나어린 학생들의 가슴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하여 사회군중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상급으로부터 수차례나 도덕교육선진인원으로 표창받았습니다.
그가 1988년부터 1992년 화룡현 용수평 중심소학교 교도처에서 주임을 담임하던 기간 수학에 남다른 흥취가 있고 학습성적이 우수한 학생 3명을 일년동안 무보수로 명절도 마다하고 지도해주어 전국올림픽수학경연에서 보잘것없는 농촌소학교의 학생 3명이 절대적인 우세로 도시학생들을 제치고 2명 학생이 전국올림픽 1등상, 한명이 2등상을 수여받았습니다.
하여 이 학교는 단체 우수상 칭호도 수여받았습니다. 이런 기적은 화룡현 교육사상 종래로 있어본적이 없으며 공백을 미봉해 화룡현 정부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금녀 선생은 상급의 업무적 수요로 연변사범분원 부속소학교 교도처 주임을 맡은 기간에도 아무런 보수도 없이 학생들의 과외를 조직해 13명 학생의 수학써클을 지도해 전국급, 성급 경연에서 1등과 2등상의 영예를 따냈습니다.
전금녀 선생은 한 가정의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어머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엄마를 잃은 두 남자형제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 큰애는9살에 소학교 2학년생이었고 6살난 동생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는 친척집을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찰나에 전금녀 선생은 사상고민이 많았습니다. 두 형제를 데려다키우자니 힘겨울 것 같았고 그냥 보고만 있으려니 불쌍하고…그래서 결국 자신을 설득해 큰 결심을 내리고 두 형제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래서 아들 넷의 엄마가 됐습니다.
남편이 외국으로 나간 12년동안 전금녀 선생은 홀몸으로 아들넷을 키우면서 아빠, 엄마의 중임을 떠매고 정성껏 마음바르게 키웠습니다.
자기가 낳은 큰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또 석사연구생과정을 마치고 지금 용정시 정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에서 사업하고 있습니다.
또 마음으로 키운 두 아들은 처음에는 학습성정이 차하고 생활상에서 절주가 없어 많은 애로를 겪었지만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속담처럼 점차 맑은 모습으로 마음도 바르게 잘 키웠습니다. 큰애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전국수학올림픽경연에서 1등상 영예를 따냈으며 지금 청화대학 화학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작은 애는 북경대학 심리학부에서 재학중입니다.
이 애들은 우리집 애들과 친형제처럼 잘 보내고 있습니다. 전금녀 선생은 아들넷을 공부시키고 성인으로 성장하는 10연간 홀몸으로 생활하면서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아들부자로서의 마음은 항상 기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전금녀 선생은 이미 정년퇴직했습니다. 글로벌화 시대의 흐름속에서 우리 주변에는 부모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머니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전금녀 선생은 수년간의 교육일터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실천을 통해 2000년부터 지금까지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어렵게 보내고 있는 35명 학생들을 매일 2시간씩 보도해주고 보살펴주면서 그들의 학습성정과 생활습관 등 여러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희망의 나래를 펼쳐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한창송 선생을 비롯한 방송국 선생님들이 추운 겨울에 건강하게, 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기원하면서 필을 놓습니다.
연길에서 주룡린, 박봉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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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편지 소개가 늦어진 점 먼저 양해구하겠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에 대한 소개가 많이 늦어졌는데요,이제라도 접하고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 아울러 훈훈한 소식 보내주신 주룡린, 박봉녀 청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드립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은 지금 외동자녀를 키우는 부부들이 많은데요, 다들 자기가 낳은 자식도 훌륭하게 잘 키우기 버거운 형편인데 전금녀 선생은 가슴으로 키운 아들까지도 모두 훌륭하게 잘 키워 청화대학, 북경대학까지 보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육아이념을 재점검해보는 계기가 될 것같습니다.
남: 참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어쩜 이렇게 맡은 아이들마다 전국 그리고 성급 올림픽수학경연에서 모두 1,2등을 석권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은 무엇인지, 참 궁금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꼭 듣고 싶습니다.
여: 사연 보내주신 주룡린, 박봉녀 청취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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