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12-18 11:52:38 출처:cri
편집:朱正善

모난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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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족은 중국에서 인구가 비교적 적은 산간민족의 하나이다. 2010년 제6차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모난족 인구는 총 10만 1192명이다.

모난족의 민족언어는 모난어로 한어-티베트어계 장족뚱족어족 뚱족수이족 갈래에 속한다. 전문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모난족 언어는 약 12세기에 뚱족수이족 갈래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언어로 되었다. 모난족은 집중거주가 위주여서 그 언어는 방언의 차별이 거의 없다. 모난족은 본 민족의 문자가 없으며 한문을 통용한다.

모난족은 중국의 광서장족자치구 환강(環江)현의 상남(上南)과 중남(中南), 하남(河南) 산간지역과 귀주성 평당(平塘)현과 독산(獨 山)현 접경지인 카포(卡蒲)하와 육동하(六硐河) 하곡 지대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특히 환강현의 상남과 중남, 하남 일대의 산간지대는 ‘삼남’(三南)으로 통칭되며 자고로 ‘모난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부 모난인들은 환강현 내의 수원(水源)과 목론(木論), 낙양(洛陽), 사은(思恩) 등 향진 및 주변의 하지(河池), 남단(南丹), 의산(宜山), 도안(都安), 귀주성의 혜수(惠水) 등 현과 시에 산재해있다.  

광서 모난족은 ‘아난’(阿難) 또는 ‘아이난’(哀南), ‘주융난’(竆南)으 자칭하며 그 뜻은 ‘이 지방 사람’이다. 한어로 번역한다면 ‘모난인’이다. 장족은 모난족을 ‘부난’(不南), ‘워언모난’(穩毛南)이라 부르며 그 뜻 역시 ‘모난인’이다. ‘모난’이란 지칭은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최초로 남송 순희(淳熙)연간 주거비(周去非)의 저서 “령외대답”(嶺外代答)에 ‘모탄’(茅灘)이 거론되며 당시 삼남(三南) 지역을 모탄이라고 부르고 이 지역인들을 ‘모탄만’(茅灘蠻)이라고 불렀다. 그 후 한문 고서적이나 비문에 동음자인 ‘모난’(冒南, 毛南)으로 기재했다. 그러다 건륭연간에 모난인이 ‘담가세보’(譚家世譜)를 저술하며 비문에 ‘모난투묘지방’, ‘모난갑’(毛難甲)등 기재가 나온다. 이로써 모난족 민족명칭이 정식으로 등장한다. 모난족의 대성인 담씨성 족보에 따르면 그 시조인 담삼효(譚三孝)는 16세기 중엽 가정(嘉靖)연간에 호남성 상덕부(常德府) 무릉현에서 모난투묘지방으로 이주해 현지인과 통혼하며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956년 7월 민족식별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정식으로 모난족을 단일민족으로 확정하고‘모난족’(毛難族)으로 호칭키로 했다. 그리고 1990년 7월 27일 본 민족의 의견에 따라 ‘어려울 난’자의 모난족을 정식으로 ‘남쪽 남’자의 모난족으로 확정했다.  

모난족의 뿌리에 대한 역사기재는 아주 적다. 방지(方志)비문 족보의 기재에도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지 않다. 보통 모난족이 부이족, 머로족,거로족 등 남방의 민족들과 연원이 깊으며 령남(嶺南) 백월(百越)갈래에서 발전돼왔다고 여기는 설이 주를 이룬다.  역사기재에 따르면 모난족과 장족, 뚱족, 머로족, 수이족 등 장족뚱족어 갈래 민족들이 거주한 지역은 한나라이전에 백월 민족의 한갈래인 ‘낙월인’(駱越人)이 거주한 지역이다. 남북조이후에는 ‘료인’(僚人)들이 이 일대에 거주해 ‘만료’(蠻僚)로 발전했다. 송나라와 원나라 때에는 일부 료인과 뚱족수이족 갈래 민족을 ‘령인’(伶人)이라고 통칭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령인’의 한갈래가 기타 민족과 융합되어 환강 삼남지역에서 모난족이 형성됐으며 귀주에서는 ‘양황’(佯僙)인이라 불렀다. 이런 사료로부터 모난족은 낙월, 료인, 령인, 양황인에서 점차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발전해왔음을 엿볼 수 있다.

모난족은 봉건통치에 맞서 투쟁에 나서기도 하고 항일전쟁시기에는 중국공산당의 호소에 응해 한족과 장족인민들과 함께 항일유격대를 조직해 일본침략자들과 영용히 싸우기도 했다. 1949년 10월 모난족 인민들은 중국공산당의 영도하에 한족과 장족 인민들과 함께 200여명으로 구성된 무장대오를 조직해 모난지역의 국민당 군대와 싸워 100여명을 체포하고 150여 정의 총을 노획하며 인민해방군의 모난지역 해방에 일조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인1950년 1월1일 모난족 지역 인민들은 신 정권과 적극 배합해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인민정권을 세웠으며 봉건토지소유제를 폐지하고 농경지를 배분 받아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1984년 9월 5일, 광서장족자치구 인민정부는 상남과 하남 두 모난족 향의 설립을 허가했다. 1986년 11월 1일 국무원은 환강현을 철회하고 환강모난족자치현을 설립했다. 1990년 2월 14일 환강모난족자치현 제9기 인민대표대회 제4차회의는 ‘환강모난족자치현 자치조례’를 통과했다. 이 조례의 제정과 집행은 환강 모난족 인민들의 정치생활의 대사이다. 모난족은 원시공사사회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으며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반에 원시공사사회가 완전히 해체되고 봉건사회에 들어섰다. 그리고 1949년에 전국의 형제민족과 함께 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에 들어섰으며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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