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20-01-15 10:54:39 출처:cri
편집:朱正善

모난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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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혼인:

모난족의 가정은 일부일처제가 위주이다. 모난족의 청년남녀들은 노래로 사랑을 언약하는 자유가 있으나 맞선부터 시작해 약혼, 혼례식 등 혼인대사는 주로 부모의 의도에 따라 진행된다. 모난족의 혼례는 번거롭기는 하나 각별한 운치도 있다. 보통‘남혼례’와 ‘여혼례’ 두가지로 나뉜다. ‘여혼례’는 일반 농가에서 마련한 혼례로 규모가 비교적 작고 혼수도 많지 않으며 절차도 비교적 간단하다. 반면 ‘남혼례’는 규모가 비교적 크고 혼수 명목도 번다하며 영친대오도 방대하다.  또한 ‘여혼례’의 모든 절차 외에도 더 많은 격식을 차려 혼례의 성대함과 호화로움을 자랑하는데 이는 부유한 가정에서만이 치를 수 있는 혼례이다. 모난족은 신부가 결혼 후 인츰 신랑 집에서 살지 않는 ‘불락부가’(不落夫家)의 혼인풍속이 있다. 즉 혼례식이 끝나면 새 색시는 친정에 돌아가 며칠 머문 뒤 신랑 집에 돌아간다. 하지만 자식을 낳아야만 신랑 집에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다.

모난족은 이혼을 아주 불명예스러운 일로 간주한다. 때문에 웬만하면 이혼을 하지 않는다. 허나 역사적으로 볼 때 모난족의 이혼방식에는 주로 세가지가 있다. 최초에는 부부 이혼시 증인이 부부를 마을 어구에 데리고 가 현장에서 바오라기를 둘로 동강낸 뒤 각기 한 오리씩 쥐어 주어 각자 반대방향으로 가도록 했다. 이로써 혼인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 후에는 부부 이혼 시 촌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양측 부모의 의견을 청취했으며 삼촌까지 동의하면 연석을 차려 상기 사람들을 증인으로 청해 자녀의 양육문제와 재산분배 등을 중재토록 하고 서면화 한 뒤 정식으로 헤어진다. 세 번째는 정부에 신고해 이혼 수속을 밟는 것이다.

장례풍속:

모난족은 망자가 숨을 거두면 대성 통곡하는 것으로 부고를 낸다. 과거에는 가정형편이 괜찮은 집안이면  총포를 세 번 쏘아 부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망자의 나이가 36세 미만이면 이런 예우를 받지 못한다. 모난족은 부모가 돌아가면 숙부가 대리인의 신분으로 빈 통에 물을 길어오는데 물을 길으러 샘터에 갈 때면 곡식이삭 한가지와 선향, 지전, 흰 천, 동전을 갖고 가 지전을 태우고 동전을 물에 던진다. 그리고 물을 길어오면 망자의 딸이 상징적으로 금방 숨을 거둔 부모의 몸을 닦아주고 이발을 시켜주며 새 옷을 갈아 입힌다. 그리고 그릇에 밥을 담고 문밖에 나가 ‘오늘 부모가 우리와 사별했습니다.’라고 세 번 외치고는 다시 방안에 돌아와 망자의 입에 음식을 떠넣는다. 모난족의 장례식은 그 내용과 형식이 한족이나 장족과 거의 비슷하다.              

예의 풍속:

모난인들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 아이의 운명을 점친다. 시댁은 며느리가 임신하면 무속인을 찾아 길흉과 운수를 점친다. 무속인은 임산부가 당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가지 재화를 점 친 뒤 그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를 ‘제해’(祭解)하고 한다. 모난인들은 사공(師公)을 청해 신령들에게 제를 지냄으로써 임산부가 안전하게 출산과도기를 넘기고 아기를 낳도록 기도한다. 모난인들은 아이가 태어난 세 번째 날 아침에 ‘3조회’(3 早會)를 마련해 정식으로 사람들에게 아이의 출생을 알린다. 아이가 태어나 3일이 지나면 무속인을 찾아가 출생 연월일을 적으며 무속인은 사주팔자를 적은 종이 쪽지를 건네주고 아이의 운수를 점친다. 이렇게 첫 아이를 낳은 뒤 이름을 지으면 5, 6개월 뒤 비교적 큰 규모의 잔치를 차린다. 모난어로 이 잔치를 ‘페이구지’(肥固畿)라고 한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가 여아일 경우에는 장차 귓걸이를 달기 위해 3세 전에 귓 볼에 구멍을 뚫는다.      

금기사항:

모난인들은 부뚜막을 부뚜막신의 거처로 간주한다. 때문에 발로 부뚜막을 밟는 것을 금하며 부뚜막 안에 침을 뱉어서는 안되고 땔나무를 부뚜막에  넣을 때에도 굵은 쪽을 먼저 넣는다. 또 동유나 의상, 신발을 부뚜막이나 신단에 올려놓는 것은 조상과 여러 신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여겨 절대 금한다. 모난족은 외인들이나 아이들의 곡창 출입을 금하며 비오는 날에는 비옷을 쓰고 집안에 들어서는 것도 금한다. 그리고 금방 태어난 아기한테 첫 사흘간 하늘을 보이지 않으며 아기 출생 만 한 달이 되어야 외할머니가 외 손군을 볼 수 있다. 모난족은 또 노란색이나 흰색 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 모난족은 자신들의 의복, 특히는 내의를 아주 소중히 여기며 심지어 이를 ‘영혼’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이 훔쳐가면 병에 걸릴 가봐 자신의 옷을 마음대로 벗어 놓거나 아무 곳에나 두지 않는다. 모난족은 장사하러 나갈 때 외인이 집 문 앞에 앉아있는 것을 가장 꺼린다. 이런 행위가 장사 길을 막는 불길한 징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몽둥이 두 개를 문에 빗장으로 걸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모난족은 길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면 아주 불길하다고 여긴다. 또 먼 길을 떠날 때 밥이 설거나 그릇을 깨면 그 날은 길을 떠나지 않는다. 강도를 만나 몸이 상하거나 재물을 털릴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한끼 식사시 밥 그릇에 밥을 담을 때면 주걱과 젓가락의 밥알을 밥 가마나 밥 사발 밖에 떨어뜨리는 것을 꺼린다. 길에서 풀에 발을 베이거나 발바닥에 물집이 생길 조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모난족은 설을 쇨 때 많은 금기가 있다. 정월 초하루 날, 욕이나 상스러운 말을 할 경우 쌍방에 모두 불길하다고 여겨 절대 금하며 아이들은 설에 동네나들이를 다니지 않는다. 정월 초하루부터 초이튿날 까지는 밭에 야채가 잘 자라지 않을가 우려해 야채를 먹지 않으며  초하루날에는 밥을 국에 말아먹지 않는다. 그것은 논밭의 곡식이 물에 잠길가봐 우려해서이다. 그리고 초하루날에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이날 낮잠을 자면 게을러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 외 초하루부터 정월 보름까지 옷이나 이불을 씻거나 말리거나 하지 못하며 땅바닥을 쓸지도 못한다. 집안의 재물을 쓸어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설 기간에  방아를 찧으면 큰 비가 내려 옥수수의 생장에 불리하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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