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족은 중국 56개 민족 중의 하나로 그 언어는 인도-유럽어계 슬라브어족 동슬라브갈래에 속한다. 중국 경내의 러시아족은 러시아 문자를 사용하며 통상 러시아어, 한어, 위구르어, 카자흐어 등 여러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한어와 한문을 사용할줄 알며 가정이나 본 민족간의 내왕에서는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자를 사용한다. 중국의 러시아족은 과거 러시아 이민의 후예들이며 다른 민족과의 공동생활 과정에 그 외모나 풍속,습관 등에서 러시아의 러시아인들과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이며 자신만의 민족특색을 형성해왔다.
러시아족은 신강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내몽고(內蒙古)자치구, 흑룡강성(黑龍江省), 베이징(北京)등 곳들에 살고 있으며 신강위구르자치구의 서북부와 흑룡강 북부, 내몽고자치구의 동북부에 위치한 후룬베르시(呼倫貝爾市)산하의 어지나시 등 곳들에 집거해 있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의 집계로 보면 중국 경내의 러시아족 총 인구는 1.5만여명이다.
“러시아인”이라는 단어는 유럽의 고대 슬라브인의 부족 명칭인 로스(羅斯)에서 기원했다. 기원 1세기 경 로마의 사학자들이 이들을 “위러디인”이라 했고 원나라 문종황제때 지금의 러시아 경내에 있는 만명의 로스군인들을 당시 수도인 대도(大都)에 징집해 친군으로 있게 하고 이들에게 땅을 하사했다. 역사상 이들을 색목인(色目人)이라 불렀다.
청나라 문서중에는 “나찰(羅刹)”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러시아족 조상인 로스(羅斯)부락의 음역이라 한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말, 러시아 10월 혁명 전후까지의 기간에 짜리 러시아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많은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 등 지를 거쳐 중국 신강 북부지역에 들어왔다. 신강군벌 성세재(盛世才)는 1934년에 신강제1차 민중대표대회를 열었고 이때 이미 중국 국적에 가입한 러시아인들이 “귀화족(歸化族)”의 명의로 회의에 참석했다.
1935년에 신강에서는 제2차 민중대표대회를 개최했다. 회의는 신강 각 소수민족의 획분과 칭호에 대해 세부적인 규정을 하고 관련결의안을 통과했다. 그중 중국 국적에 가입한 러시아인과 기타 유럽인들을 “귀화족”이라 지칭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후 러시아족으로 명명했다.
중국의 러시아족은 주로 러시아에서 이주해왔다. 청나라 순치(順治)원년 즉 기원 1644년에 중국 흑룡강지역을 침략했던 짜리 러시아정부의 군사들이 포로로 잡혀 항복했으며 이들은 베이징에 호송되어 8기에 편입되었다. 그후 1650년과 1668년 그리고 1683년부터 1685년에 이르는 기간에 러시아군사 100여명이 흑룡강 북부의 야크싸성에서 군대를 따라 베이징에 왔다. 현재 베이징의 라(羅), 하(何), 요(姚), 전(田), 하(賀) 5개 성씨의 러시아족은 약 200여명인데 이들이 바로 청나라때 들어온 러시아인들의 후예이다.
18세기를 전후해 러시아에서 도망친 병사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온 농민들, 전도사 등이 중국 신강의 북부지역에 들어왔다. 아편전쟁후 짜리 러시아가 중국을 침략하고 신강북부와 흑룡강 북부에 주민정착소를 세웠고 이때 많은 러시아 농민들이 중국경내에 들어왔다. 러시아는 여러가지 불평등조약을 통해 신강의 이리(伊犁), 탑성(塔城),우루무치(乌鲁木齐)등지들에 영사관과 무역권을 세웠으며 이때 러시아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이 함께 들어왔다. 10월 혁명후 이들은 대부분 중국국적에 가입했다. 10월 혁명 기간에 신강에 들어온 러시아 병사들은 이리와 탑성, 아러타이(阿勒泰), 우루무치에 안치되었다. 1932년부터 1938년까지 소련 극동지역에서 정착하던 많은 화교들이 강제로 송환 귀국되었으며 이런 화교들이 결혼한 러시아부인들과 함께 신강에 들어왔다. 집계로보면 당시 이리와 탑성에 들어온 사람들만해도 1.9만여명이었다. 현재 신강의 러시아족 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때 이주민들의 후예이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의 기간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인들이 다시 구소련으로 돌아갔고 신강의 러시아족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다.
그외 내몽고자치구의 엘고나좌기(額爾納左旗), 엘고나우기(右旗)의 러시아와 집경한 지역에도 일부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조상들은 살길을 찾아온 산동(山東)인들이며 황금채굴과 벌목 혹은 농사일에 종사했다. 그러다가 후에 엘고나강 대안에 살고 있던 러시아족과 통혼했다. 현재 엘고나강 유역일대에 있는 러시아족 대부분이 이들의 후손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후 러시아족은 신강의 전쟁을 종식하고 신강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데서 많은 공을 세웠다. 1931년 신강성 정부가 조직한 러시아 “귀화군”은 인원수가 많을때는 세개 연대에 달했고 감숙의 군벌 마중영(馬仲英)부대와의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1933년 귀화군은 신강 여러민족과 함께 김수인(金樹仁)군벌 정부의 반동통치를 전복했다.
1944년부터 1949년까지 러시아족은 신강 제3구역 혁명군사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군사지식과 전투경험이 풍부한 러시아족 군관들이 각 급 지휘관으로 되었고 러시아인들이 소대, 중대, 대대의 지휘관을 맡은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는 제3구역 정부의 군사 및 내부부문에서 요직을 맡기도 했다.
2001년 4월 16일에 내몽고자치구 민정부문의 비준을 받아 후룬베르시의 엘고나시에 전국의 유일한 러시아족 민족향인 실위(室韋)러시아족 민족향이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