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东光
2020-07-30 16:03:59 출처:cri
편집:金东光

白面書生(백면서생)

 

◎글자풀이: 흰 백(白 bái), 얼굴 면(面 miàn), 글 서(書 shū), 날 생(生 shēng)

◎뜻풀이: ①백면서생, 샌님. ②글만 읽고 세상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

◎출전: 남조(南朝)• 양(梁) 심약(沈約) 『송서•심경지전(宋書•沈慶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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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남북조(南北朝)때 오군(吳郡) 무강(武康)이라는 곳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릴때부터 큰 뜻을 품었고 힘이 장사였다. 동진(東晉) 말년에 진(晉)나라 장군인 손은(孫恩)이 반란을 일으켰고 무강을 공격해왔다. 이때 심경지는 열살남짓한 소년이었는데 집안의 어른들을 따라 성을 지키는 전투에 참가해 누차 공을 세웠다. 이때부터 심경지는 용감하고 싸움에 능한 사람으로 이름을 날렸다. 후에 그는 정로장군(征虜將軍) 조륜지(趙倫之)의 아들인 경릉태수(竟陵太守) 백부(伯符)의 부하로 들어갔다. 경릉지방은 늘 소수민족들의 침공을 당하군 했는데 심경지의 용맹함이 알려지고 나서는 안정을 되찾았고 백부는 지방안정을 실현한 공을 인정받아 장군으로 승진했다. 후에 심경지도 혁혁한 전공을 세워 효무제(孝武帝)에게 천거되었으며 건무장군(建武將軍)을 제수받아 변경을 지키게 되었다.

원가(元嘉) 27년에 송문제(宋文帝)는 북방정벌을 결심하고 왕현모(王玄謨) 등을 파견해 북벌군을 감독하게 했다. 심경지가 여러번 문제에게 과거 몇명의 북벌장수들이 실패한 교훈을 상기시키면서 출병이 불가함을 주장했다. 심경지의 고집을 꺾지 못한 문제가 문신 두사람을 파견해 심경지와 변론을 하게 했다.

이에 심경지는 이렇게 말했다. “국사를 처리하는 일은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과 같은 도리입니다. 농사일은 실제 일을 하고 있는 머슴에게 알아 보아야 하고 베짜는 일은 천짜는 시녀에게 물어야 합니다. 폐하께서 지금 북벌에 관한 일을 담론하시려 하실진대 응당 장군에게 물어야 마땅합니다. 백면서생들과 이 일을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심경지의 거듭되는 권고에도 문제는 북벌의 뜻을 거두지 않았고 결과 전쟁에서 참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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