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东光
2021-02-11 16:45:50 출처:cri
편집:金东光

평이근인(平易近人)

평이근인(平易近人)_fororder_100.平易近人

글자풀이: 평평할 평(平 píng), 쉬울 이(易 yì), 가까울 근(近 jìn), 사람 인(人 rén).

뜻풀이: ①태도가 겸손하고 온화하여 쉽게 접근할수 있다. 붙임성이 좋다. 사귀기 쉽다. ②(문장 따위가)평이하여 쉽게 이해되다.

출처: 한(漢) 사마천(司馬遷)『사기•노주공세가(史記•魯周公世家)』

 

유래: 서한(西漢) 초의 유명한 정치가 주공(周公)은 성이 희(姬)요, 이름은 단(旦)이며 주무왕(周武王)의 동생이다. 주공은 무왕을 도와 상(商)나라를 멸망시켰다. 무왕이 죽은 후 그 아들인 성왕(成王)이 보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 주공이 섭정하였다. 주공은 젊은 성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소홀함이 있을가 걱정되어 『다사(多士)』, 『무일(無逸)』 등 문장을 써서 성왕에게 올렸는데 이런 글들은 모두 『상서(尙書)』에 수록되어 있다.

사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백금(伯禽, 주공의 아들)이 노(魯)나라에 책봉을 받아 3년만에야 그곳의 상황을 주공에게 알리니 주공이 물었다. “왜 보고가 이토록 늦었단 말이냐?”이에 백금이 답했다. “저는 그곳의 풍속과 예의제도를 개혁하여 상을 당하면 최장 3년후에 상복을 벗도록 하였습니다. 하여 보고가 늦어졌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태공(太公) 망(望)도 제(齊)나라에 부임하였고 5개월 후에 주공에게 국정운영을 보고했다. 이에 주공이 물었다. “왜 보고가 이토록 빠른 것인가?” 이에 태공은 “저는 군신의 예를 간단히 하고 현지의 풍속에 따라 정사를 펼쳤습니다”고 답했다. 주공은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제나라가 노나라보다 강하구나. 노나라의 후손들은 제나라에 항복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나라의 법령이 평이하고 백성들의 생활에 밀착하면 백성들은 반드시 이를 따를것이다.(平易近民, 民必歸之)”

  “평이근민(平易近民)”은 후에 성어 “평이근인(平易近人)”으로 고착되었으며 태도가 겸손하고 온화하여 사귀기 쉬움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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