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6-16 10:45:41 출처:cri
편집:李仙玉

바이충시는 왜 홍군에 길을 내주었는가?

중국 공농홍군(工農紅軍)은 바로 ‘백색정권들 사이의 전쟁’, 즉 장제스(蔣介石)과 광둥(廣東)의 군벌, 광시(廣西)의 군벌, 후난(湖南)의 군벌, 구이저우(貴州)의 군벌, 윈난(雲南)의 군벌, 쓰촨(四川)의 군벌들 간 복잡한 갈등을 이용해 만리장정을 거쳐 북상함으로써 존속되고 발전되었다.

홍군이 장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성된 세 겹의 봉쇄선은 바로 홍군과 광둥의 군벌 천지탕(陳濟棠)간에 달성한 비밀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이어 샹장(湘江) 강에 조성된 네 번째 봉쇄선을 돌파하는 전역에서 홍군의 사상자수는 반수가 넘었으나 역시  봉쇄선을 뚫었다.

홍군이 샹장 강에 도착하기 전에 광시의 군벌 바이충시(白崇禧) 군대와 후난의 군벌 허젠(何鍵)의 군대가 북쪽과 남쪽으로부터 샹장 강을 물 샐 틈 없이 포위했다. 하지만 홍군의 대부대가 샹장 강에 도착하기에 앞서 바이충시는 갑자기 포위권 조정을 거쳐 샹장 강에 100 킬로미터 정도의 빈 공간을 남겼다.

바이충시가 갑자기 길을 내준 것은 홍군이 상장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방향을 돌려 광시에 진입할 것이고 그 때면 홍군의 뒤를 따라 광시에 진입한 장제스의 중앙군이 홍군과 함께 광시의 군벌도 제거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이충시는 광시군벌의 고위장교 회의에서 장제스가 홍군보다도 광시군벌을 더 미워하기 때문에 광시 군벌은 홍군보다 중앙군을 더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충시와 장제스는 중화민국 역사의 만화경이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 하는 관계이다가 갑자기 서로 마주서서 싸우는 관계로 변하기도 하며, 정치적으로는 서로 의지하는 사이다가 갑자기 너 죽고 내가 사는 관계로 바뀌기를 번복하는 사이였다. 1927년 바이충시는 장제스와 협력의 밀월을 보낸 후 곧바로 허잉친(何应欽), 리중런(李宗仁)과 연합해 장제스의 첫 번째 하야를 핍박했다. 그로부터 바이충시는 장제스의 반대편에 섰고 장제스도 기회만 있으면 바이충시를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샹장 강 홍군 포위망 형성 전역에서 장제스는 바이충시의 군대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충시는 홍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광시 군벌의 이익을 위해서 암암리에 포위망 한 곳을 열어놓았고 홍군은 그 기회를 이용해 순조롭게 포위망을 뚫고 샹장 강을 건너 북상의 장정을 계속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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