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6-16 09:52:08 출처:cri
편집:李仙玉

중국은 왜 사회주의를 선택했는가

중국에서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하고, “10월 혁명의 포성이 우리에게 마르크스 주의를 전해왔다”고 말한다. 마치 1900년대 초반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사회주의가 탄생하고 또 금방 중국에까지 전해온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사회주의가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중국공산당이 창건되며 웅장한 기세의 혁명을 일으키기까지 중국은 아주 힘든 길을 걸었다.

1840년, 중국의 국문이 강제로 열렸다. 중국은 제국주의로부터 국권을 상실하고 국위를 실추시킨 많은 조약을 강요당했으며 그로부터 중국의 운명은 역사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병입고황(病入膏肓)의 환자처럼 아무 약이나 다 먹고 아무 처방전이나 다 썼다.

그럼 어떤 약이 중국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주의를 선택하기에 앞서 중국은 사실 아주 많은 선택과 시도를 했었다. 먼저 홍수전(洪秀全)의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사례로 보자. 사실 기독교 교의를 중국화한 태평천국은 하나님과 예수를 억지로 천부(天父)와 천형(天兄)으로 바꾸어 도입했으며 그로 인해 증국번(曾國藩)은 중국의 “명교(名敎)”를 보호한다는 호소력으로 많은 군대를 모아 태평천국을 진압했다.

태평천국에 이어 증국번과 이홍장(李鴻章) 등이 주도한 양무운동(洋務運動)은 기계제조와 과학기술의 발전 두 가지에 포인트를 두었다. 근대화 운동으로 서양의 문물을 수용해 구국강병을 이루는데 취지를 둔 양무운동은 1861년부터 시작되어1894년 갑오전쟁(甲午戰爭)까지 지속되었으며 궁극적으로 갑오전쟁의 패전과 함께 산업과 기술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제도의 근본적 개혁까지 이루어야 한다는 무술변법(戊戌變法)에 자리를 내주었다.

청(淸) 나라 때 앞서 가는 사상을 지닌 강유위(康有爲)와 양계초(梁啓超) 등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중국의 문제는 단순하게 기계와 기술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고 인정하고, 군주입헌(君主立憲)을 위한 무술변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무술변법도 실패로 끝난다.

무술변법의 뒤를 이은 민주주의 혁명은 손중산(孫中山)의 신해혁명(辛亥革命)이다. 신해혁명으로 공화제도를 구축하고 제도적 차원에서 중국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이 천여 년 역사의 중국 봉건사회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신해혁명 초반의 성과는 원세개(袁世凱)에 의해 찬탈되고 1916년 원세개가 죽은 후 1928년까지 12년 동안에도 공화제도의 기회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 12년 동안 베이징에서는 정부 교체가 9회 이루어졌고 내각개편은 24차, 통령(統領)은 26대가 바뀌었으며 그 결과 군벌의 혼전이 이어져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그리고 중국을 구하려면 기술과 제도뿐만 아니라 사상문화도 진보해야 한다는 취지로 신해혁명 후의 1915년 신문화(新文化) 운동도 있었다.

근현대 이래 중국은 사회주의를 선택하기 전에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파시즘주의든 무정부주의든 삼민주의(三民主義)든 무슨 약이든지 다 먹어 보고 나서야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에 이른 것이다.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주의가 행운아여서가 아니라 사회주의는 중국이 반복적으로 선택과정을 거친 후  도출한 결과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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