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6-17 11:44:23 출처:cri
편집:李仙玉

백색정권들 사이의 투쟁과 분열

중국 공농홍군(工農紅軍)은 샹장(湘江) 강을 건넌 후 장제스(蔣介石)와 광둥(廣東) 군벌간의 갈등을 충분하게 이용했다. 샹장 강에서 홍군에 길을 내준 바이충시(白崇禧)는 사건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해 홍군이 광시에 진입할 추세가 보여 광시보호 차원에서 전략을 조정했으니 속히 군대를 파견해 샹장 강을 방어하라는 전문을 후난(湖南)의 군벌 허젠(何鍵)에게 보냈다.

한편 정찰기로 광시 군벌이 샹장 강의 포위망에 빈 자리를 만든 것을 알게 된 장제스(蔣介石)은 홍군이 포위망을 뚫으면 당신은 천고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전문을 바이충시에게 보냈다. 바이충시는 장제스에게 보여주기 위해 홍군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홍군의 대부대가 샹장 강을 막 건너기 전에 공격을 발동했다.

사실 바이충시 공격의 주요 목표는 홍군을 이 지역에서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 때 광시 군벌 내부 회의에서 홍군이 샹장 강을 다 건너기 4,5일전에 공격을 할 것인지 아니면 2,3일전에 공격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토론했다. 여기에는 광시 군벌이 어느 정도의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관련되었던 것이다. 후에 바이충시는 광시 군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홍군이 모두 강을 건너가기 이틀 전에 공격을 발동하기로 했다.

바이충시가 광시 군벌을 위한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면 장제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장제스도 홍군을 추격함에 있어서 대 규모 작전을 벌이지 않고 1,2일의 거리차를 두고 홍군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중앙군에 내렸다. 그 목적은 홍군이 어디로 가면 그 뒤를 쫓아가서 그 곳의 군벌까지 제거하려는 속셈이었다.

백색정권들 사이의 전쟁과 백색정권들 사이의 분열은 사실 백색정권들 각자 서로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자신의 실력을 보존하고, 서로 상대방을 계산했기 때문에 백색정권들 사이에 큰 균열이 생겼고 이는 중국혁명의 승리에 아주 유리한 외적인 여건을 마련한 셈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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