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6-27 17:32:46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1년 6월 24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6월의 네 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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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금주 월요일은 6월 21일은 하지입니다.

하지는 24절기의 열 번째 절기로 일반적으로 해마다 6월 21 혹은 23일입니다. 사람들은 늘 하지가 되면 ‘여름철이 왔다’고 말하는데요, 기실 이때면 여름은 중턱을 지납니다. 하지 이후 기온은 차츰 높아지며 제일 더운 시기에 들어섭니다.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동지에는 물만두요, 하지에는 국수’라는 설법이 있습니다.

6월 22일 역시 기록할만한 날입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소련-독일 상호 불침범 조약을 찢어버리고 소련에 돌연습격을 감행했습니다. 독일은 190사단과 3500대의 탱크, 5000여대의 비행기를 출동하여 1800킬로미터의 전선에서 3갈래로 나뉘어 소련을 진공했습니다. 이로부터 소련-독일 전쟁이 일어났으며 소련 국토는 세계 반파시즘전쟁의 유럽 주전장으로 되었습니다. 이날은 소련 국가보위전쟁의 기념의 날로 되었습니다.

6월 22일은 또 ‘중국 어린이 자선행사의 날’입니다.

사회자원을 정합하고 애심의 힘을 모으기 위해 중국 어린이소년기금회는 2002년 6월 22일 창조적으로 ‘중국 어린이 자선행사의 날’을 출범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인 6월 14일은 단오였는데요.

길림성 장춘시에서 전통문화 축제를 열었다고 장춘시의 김수금 청취자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고정간주 청취자 내신]

지난 12일, 길림성 장춘시 세계조각공원에서 조선족 전통문화 축제가 열렸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후 2년만에 열린 이 모임은 산지사방에서 모여온 관객들로 아주 흥성했습니다.

중심무대는 세계조각공원의 공자 조각상 앞이었는데, 전통문화의 축제 의미는 이로하여 더 깊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축제에서 대형 문예공연 종목이 특별히 이채를 끌었습니다. 조선족로인협회와 여성협회 노인 100명의 부채춤과 소고춤, 100명 중학생의 가야금 합주, 100명 소학생의 장고춤과 상모춤 공연이 진행된 가운데 여성들의 널뛰기 연기, 소학생들의 축구 춤이 이어졌습니다.  민족 풍격이 짙은 단체춤은 집단의 힘과 우월성을 보여줬습니다. 축제는 시종 관중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춤의 바다, 환락의 바다를 이뤘습니다. 

전통체육경기는 언제나 단오명절 활동의 필수종목이었습니다. 이번 축제에서 바줄당기기, 줄뛰기, 널뛰기, 씨름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기가 젊은이들이 재능을 자랑하고 즐기는 종목이었다면 노인들은 공 전하기 릴레이, 물동이 이고 달리기, 제기 던지기 등 취미종목이었습니다. 우리 장춘 제1자동차그룹 노인협회는 물동이 이고 달리기 경기에서 1등을 했고 공 전하기 릴레이에서는 2등을 했습니다.  다들 흥이 나서 어깨춤을 두둥실 췄습니다. 

축제 가운데서 음식문화도 흥미를 끌었습니다. 음식점에서는 맛좋은 조선족 전통음식인 찰떡, 쑥떡, 순대, 묵 등을 가게에 올렸는데, 관객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배추김치 담그기는 현장에서 김치양념을 골고루 발라서 만드는 것이었는데, 재미가 있고 맛이 좋아 미처 주문을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찰떡 치기 체험행사도 있었습니다. 우리 협회의 박룡익 노인은 손수 떡메를 치고나서 "아주 힘들어요"라고 하면서도 아주 흥에 겨워 만족했습니다. 이날 인기를 제일 끈 것은 비빔밥 만들기가 아니였나 합니다.  비빔밥은 지름이 2미터나 되는 큰 솥에 쌀밥을 넣고 거기에 당근, 호박, 시금치, 도라지, 고사리 등 채소를 버무렸습니다. 미녀들이 예쁜 손으로 긴 넉가래를 들고 버무리는데, 와중에 장춘시문화관 관장인 이상호 가수가 노래를 불러 비빔 절주에 노래 가락을 어울려 담았습니다. 비빔밥이 완성되지 관객들은 너도나도 달려가서 비빔밥을 맛보았습니다. '이 밥이 으뜸이야!" "맛 참 좋아!" 비빔밥처럼 현장에서는 환성이 어우러졌습니다.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로 어우러진 축제는 시종 흥성흥성했습니다. 건강, 단결, 화목, 평화의 노래소리로  넘쳐흘렀습니다.  정말로 맛 좋고 멋 좋은 단오명절의 축제였습니다.

 

네, 장춘시 김수금 청취자가 보내온 단오 축제 행사 소식이었습니다.

단오 기간 장춘에서는 또 애니메이션 예술박람회가 열렸고 분수와 조명 쇼, 향낭 제작 등 행사가 있었습니다. 

 

네, 단오명절이 지나고 하지가 지나면서 여름철 날씨가 더 더워지고 있는데요.

코로나 확진자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국 김연준 청취자가 전해왔습니다.

편지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연일 30도 이상의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5.21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57명이 발생하였습니다.

발생 추세로 볼때 백신접종의 영향인지 점차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백신접종은 전국민 대비 약 30%가 1차 접종을 받았으며 저는 다음달에 접종을 받을 예정입니다.

천궁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한 유인 우주선 선쩌우12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우주정거장 핵심 모듈인 천화와 도킹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유인 우주선의 성공적인 발사로 2022년에 전면적으로 운용 될 천궁 우주정거장 건설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선저우12호의 성공적인 발사를 축하하며 탑승한 승무원들이 성공적으로 임무을 수행하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 오기를 기원합니다.

중국의 이극강 총리께서 길림성 장춘의 한중국제합작시범구를 방문해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애로사항을 파악했으며 "중국은 더 많은 외국기업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길림은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계신 곳인데 몇해전 습근평 주석께서도 방문했던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이은 최고 정치 지도자의 방문으로 길림성에 살고 계신 분들은 크게 고무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의 기업이 중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한중경제인들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되기를 바랍니다.

무더워지는 날씨에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 연준”

 

네, 여름날의 아주 시원한 이야기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김연준 청취자도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간주]

그럼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재미있는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의 팔도 지명 이야기입니다.

건달바위와 그 아래의 로마

  옛날 로마의 시조인 모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출생 직후 들판에 버려진 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이 건국신화에 따라 ‘어미늑대’는 로마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팔도八道는 ‘늑대’가 아닌 ‘건달바위’가 상징이었다고 한다. ‘건달바위’는 동네의 입구에 장승처럼 서있던 높다란 바위이다.

  팔도 태생인 오정묵은 이 바위가 실은 ‘건달’의 이미지와는 별개였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이 강에서 미역을 감은 후 늘 바위에 올라 배꼽을 드러내 놓고 볕 쪼임을 했지요.”

  그게 마을의 정숙한 사람들에게는 눈꼴 시린 건달 행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엉뚱하게 ‘건달바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잠깐, 팔도는 연변에서 천주교 하면 곧바로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고장이며 교인들에게 연변의 ‘로마’로 추앙되는 성스런 고장이다.

  천주교는 간민墾民들의 이주와 더불어 북간도 일대에 전입轉入하였다. 나중에 지역별로 교인이 제일 많은 고장은 다른 곳도 아닌 여기 팔도였던 것으로 전한다. 지난 세기 20년대 북간도 선교의 중심지로 되었던 연길은 그 무렵 교인이 3천여 명에 불과했다.

  팔도는 이름 그대로 여덟 번째 골짜기에 자리를 잡은 마을이다. 광서(光緖, 1875~1908) 중반 형성된 이 마을에는 시초의 주민들이 대부분 교인들이었던 것으로 전한다. 그때 촌민들은 열간 초가를 지어 예배장소로 삼았고 팔간 초가를 지어 자식들의 배움터로 삼았다. 서산 기슭의 붉은 종루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아침마다 부근 동네까지 떵떵 울렸다고 한다.

  오정묵의 조부가 네 아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천입할 때는 지난 세기 30년대쯤이었다. 이때는 천주교가 팔도에서 초창기를 지나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 무렵 팔도는 왕청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데다가 부근에 금광이 있어서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었다고 한다.

  훗날 동네 노인들은 늘 삼삼오오 모여서 그제 날의 정경을 실타래 같은 담배연기에 뿜어냈다.

  예전에 팔도를 지나는 길 양쪽에는 여인숙이며 상가가 줄느런히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산골 벽지인데도 희한하게 2층집이 있었고 또 기생집까지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연길 시가지에 짝지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팔도를 다녀온 사내들치고 기생집 나들이를 했노라고 허풍을 떨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기실 오정묵의 조부가 두만강을 건넌 후 맨 처음 이삿짐을 내려놓은 곳은 이곳 팔도가 아니라 용정의 부암富岩이었다. 부암은 광서 말년에 세워진 마을로 동쪽의 오봉산五峰山에 바위가 유달리 많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부암은 북간도의 천주교 교인들이 맨 처음 예배모임을 갖던 달라자大砬子의 바로 동쪽에 위치한다. 그러고 보면 오정묵의 조부는 시초부터 연변 천주교의 메카인 팔도와 끊지 못할 인연을 맺고 있었을지 모른다.

  살기 좋은 고장을 찾아 고향을 떠났던 조부 일행은 바위투성이의 심심산골에 도무지 안주安住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얼마 후 고개 너머 북쪽의 금곡金谷에 이사를 했다. 금곡은 이름 그대로 금이 난다고 지은 이름이다. 1930년대 일본군을 공포에 빠뜨렸던 ‘연길폭탄’은 금곡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누런 금이 있었든지 아니면 사제 폭탄을 만들었든지 금곡 역시 부암처럼 심산유곡이었다. 조부는 다시 이삿짐을 싸고 해란강 기슭의 귀화촌歸化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귀화촌은 미구에 인구가 불어나면서 이웃한 인의촌仁義村과 한 동네로 이어졌고 1940년 두 마을의 이름을 각기 한 글자씩 취하여 인화촌仁化村이라는 이름을 만든다.

  바야흐로 마을이 덩치를 불릴 무렵 행운의 여신이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팔도에 사는 부호 박진조가 조부의 처갓집 쪽으로 친척벌이 되었던 것이다. 박진조는 팔도는 물론 연길 시가지까지 소문이 자자한 큰 지주였다. 그는 그때 세간에 흔치 않았던 트럭만 해도 여러 대 갖고 있었다고 한다.

  팔도는 여기저기 전전하던 오 씨 가족에 하늘에서 내린 구원의 밧줄로 되었다. 천리 밖의 함경도 명천에서 시작된 오 씨네 이민사는 마침내 이곳에서 일단락을 지었다.

  그때 오정묵의 부친은 박진조의 집에서 소작농으로 일했다고 한다. 신세를 적지 않게 입었지만 워낙 식솔이 많다보니 궁색한 생활은 좀처럼 펴이지 않았다. 궁핍한 삶에 대한 울분은 나중에 다른 곬으로 분출되었다. 해방 후 지주를 청산하는 운동에서 부친은 제일 앞장에 서서 박진조를 투쟁했다고 한다.

  그 일은 오정묵의 마음에 마냥 지울 수 없는 골짜기를 후비고 있었다. “우리 오 씨와 박 씨의 후손은 그때부터 차츰 소원해진거지요.”

  그 무렵 외국 교민과 선교사들은 앞을 다투어 귀국했다. 연길 교회당은 부득불 예배활동을 중단했다. 와중에 팔도 교회당은 1960대 중반까지 예배행사를 지속했다. 팔도는 연변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천주교 교단을 고수한 것이다.

  그렇다고 팔도에는 천주교 교회당만 있은 게 아니라 불교 사찰도 있었다. 쌍봉사雙鳳寺라고 하는 사찰이었다. 이 사찰은 팔도 위쪽의 쌍봉촌雙鳳村에 있었다. 쌍봉촌은 동네에 가지런히 서있는 두 작은 산봉우리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오정묵은 어릴 때 옛 동창이 말하던 쌍봉촌의 유래에 귀밑을 붉힌 적 있다고 한다.

  “쌍봉雙鳳이라는 건 말이야, 여인의 두 예쁜 젖을 말하는 거래.”

  전하는데 의하면 옛날 수련하던 웬 비구니가 아이의 젖 먹는 모습을 보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두 봉우리의 산은 두 봉새의 산으로 둔갑했으며 산기슭에 있던 사찰은 쌍봉사雙鳳寺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찰이 있었던 동네는 절 동네寺洞라고 불렸다.

  기왕 사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망정이지 팔도에는 사찰이 쌍봉사 하나만 있은 게 아니다. 팔도에서 왕청 쪽으로 약 40리 상거한 골짜기에는 용주사龍珠寺가 있었다고 한다. 발해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찰에는 전성기에 스님 수백 명이 수행을 했다고 전한다.

  “말도 마십시오, 골짜기에 숲이 꽉 들어차서 사찰 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정묵은 그게 마치 자기 탓이라도 되는 듯 자책하는 표정이었다.

  고찰은 행적이 묘연하였지만 옛 동네는 아직도 팔도의 남쪽에 성터로 남아 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옛 장성을 수비하던 장군이 이 성곽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옛 장성은 팔도 부근의 산을 가로타고 지난 8백리 옛 장성을 이르는 말. 그런데 또 이 장성처럼 팔도를 쭉 내리 지나 흐르는 강이 있다. 강은 양지바른 남쪽을 향해 흐른다고 해서 조양하朝陽河라고 불린다. 또 아홉 갈래의 물이 모여서 흐른다고 해서 구수하九水河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 건달바위 아래의 강위에 놓여 있었던 나무다리는 강덕(康德,1934~1945) 연간 세운 다리라고 해서 강덕다리康德橋라고 불렸다. 강덕康德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義가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 황제로 있을 때 사용한 연호이다.

  강덕다리를 건너면 바로 팔도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고향과 한데 이어지는 이 다리는 건달바위와 더불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훗날 오정묵이 그의 진료소에 기어이 ‘강덕’이라는 이름을 단 데는 그런 배경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부의황제의 수라상에 쌀밥을 올렸던 개산툰의 어곡전御谷田 개발에 집착하게 된 것도 ‘강덕’이라는 이 이름에 귀신처럼 홀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덕다리는 1960년대 홍수에 밀려갔고 지금은 그 자리에 새로 콘크리트다리가 생겼다.

  각설하고, 오정묵이 어릴 때 듣던 강 이름은 분명히 조양하나 구수하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홍하紅河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피로 붉게 물든 강이라는 뜻이지요.”

  팔도 북쪽의 골짜기에서 일본군이 늘 반일지사들을 무더기로 살해했다고 한다. 선혈이 골짜기에서 시냇물처럼 흘러내려 강물을 벌겋게 물들였다는 것이다. 이 골짜기는 일명 소팔도골小八道溝라고 하는데 음기가 세다고 귀신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예전에 점쟁이가 살고 있었다고 해서 점쟁이골, 또 그 점쟁이의 이름이 팔범이라고 해서 팔범이골이라고도 불린다. 부근의 둥근 모양의 두리봉 때문에 점쟁이가 날 정도로 영험한 곳이라고 하지만 일본군의 피비린 총칼 때문에 무덤처럼 음산한 곳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이 귀신골 어구에 있던 동네는 훗날 장춘-연길 고속도로를 닦으면서 철거의 파국을 맞는다. 잇따라 팔도의 동네어구에 서있던 건달바위도 피폭, 드디어 돌조각의 분신分身으로 되어 고속도로의 노반 아래에 잠적했다.

  이와는 달리 한때 잿더미로 되었던 교회당은 다시 서산 비탈에 나타난다. 구수하 기슭의 여덟 번째 골짜기에는 바위에 부딪쳐 흐르는 물처럼 또다시 종루의 해맑은 종소리가 쟁쟁히 울리고 있는 것이다.

  ‘로마’는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 있었으나 어미늑대 아니, 건달바위는 더는 없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지명과 관련한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용정에는 또 ‘세린하’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지명 ‘세린하’는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일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명 ‘세린하’는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일까요.

중국 길림성 장춘시의 김수금 청취자가 퀴즈 답안을 보내왔는데요, 그 답안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강에서 버들치 같은 작은 물고기가 난다하고 세린하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세린하는 만족들의 선인이라는 뜻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세린하에서 머지 않는 유신촌에 살고 있었는데요, 후에 이곳은 농촌 노동대학이 설립되어 유명했습니다.

 

네, 김수금 청취자와 함게 라명희, 주송숙, 양두봉, 박숙녀, 오애화, 허희숙, 주혜숙, 한란희, 리명희, 정기순, 김금녀, 박룡익, 정성갑, 박영희, 방태식, 진초산, 권오관, 윤영선 등 18명이 이번 퀴즈 답안을 보내왔습니다.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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