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9월 마오쩌둥(毛澤東)은 홍군을 이끌고 북상하는 도중 팡뤄진(榜羅)진에서 상무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그에 앞서 확립한 ‘먼저 소련과 가까운 곳에 근거지를 세우고 후에 동쪽으로 발전한다’는 방침을 바꿔 산베이(陝北)의 혁명근거지를 보호, 확대하고 산베이의 소비에트 구역으로 전국의 혁명을 지도하기로 결정했다.
북상하는 길에 팡뤄진에 이른 마오쩌둥은 최근의 신문과 간행물을 다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 중 톈진(天津)의 <대공보(大公報)>에 “산베이의 23개 현이 모두 공산주의에 물들어 현재 공산당 세력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확대추세를 보이며” “홍군 제26군단과 제25군단이 산베이의 소비에트 근거지를 통제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 정보를 본 마오쩌둥과 중공중앙의 지도자들은 중국혁명이 홍군도 있고 빨치산도 있는 산베이에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산베이에 중국혁명의 근거지를 두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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