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뜨거운 피가 끓는 시대이자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중국공산당의 청년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고, 국민당의 청년들도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코민테른의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청춘을 바쳐 싸웠다.
중국공산당의 창시인 중 한 명인 리다자오(李大釗)가 1927년 희생될 때 38살이었고 마오쩌둥(毛澤東)은 34살에 군대를 이끌고 징강산(井岡山)에 올랐으며 저우언라이(周恩來)는 29살에 난창(南昌) 봉기를 지휘했고 보구(博古)는 23살에 중공중앙의 임시 책임자 직무를 맡았다.
또 코민테른의 중국 대표 파벨 알렉산더 로베치 미프는 25살에 후에 중국 혁명에서 광범위하게 응용된 중국 민족 부르주아의 연약성 관점을 제출했고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이 바로 중국 민주혁명의 성격이라는 관점도 제출했다.
이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청년들이 앞장 섰다. 오늘날 중국의 국가가 된 <의용군행진곡(義勇軍行進曲)>을 창작할 때 네얼(聶耳)은 23살이었고 마오쩌둥을 감동시킨 문장 <혁명군(革命軍)>을 쓴 쩌우룽(鄒容)이 희생될 때 나이는 20살이었다.
청년들이 창조한 파란만장한 그 시대는 청년들이 큰 일을 하는 시대이자 젊은 나이에 생명을 바치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 시대에는 덕성과 명망이 높은 사람도, 건강 장수를 연구하는 사람도 없었고 오직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한 주의와 분투, 희생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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