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东光
2021-07-03 18:17:37 출처:cri
편집:金东光

불구소절(不拘小節)

불구소절(不拘小節)_fororder_14.不拘小节

글자풀이: 아닐 불(不 bù), 거리낄 구(拘 jū), 작을 소(小 xiǎo), 마디 절(節 jié).

뜻풀이: 사소한 것에 구애되지 않다. ②사소한 일에 주의를 돌리지 않다. 지금은 생활상의 사소한 일에 주의를 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이 쓰임.

출전: 남조•송(南朝•宋) 범엽(范曄)『후한서•우연전(後漢書•延傳)』

유래: 동한(東漢) 때 진류(陳留) 태생인 우연(虞延)은 몸집이 우람지고 힘이 장사여서 천근짜리 솥을 어깨에 놓고도 날아가는 듯 달렸는데 이웃들이 이를 보고는 하늘에서 신장(神將)이 내려왔다고 감탄할 지경이었다. 우연이 젊었을 때 고향에서 정장(亭長)으로 있었다. 당시 이 지방에는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왕망(王莽)이 총애하는 위귀인(魏貴人)과 먼 친척이라는 것을 턱대고 그 가노들이 포악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우연이 이를 전해 듣고는 노기가 충천해 그 불량배 가노들을 하옥시켰다. 이 일로 하여 우연은 오래도록 승차를 할수가 없었다.

왕망정권이 멸망한 후 류수(劉秀)가 황제로 되었으며 우연은 세양현(細陽縣) 현령으로 파견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복날과 섣달 이 절기를 특별히 중히 여겨 이 기간에는 조상에게 제를 올리고 친지와 친구들을 찾아 떠나군 했다. 우연은 이 기간이 되면 옥에 갇힌 죄수들이 집에 가서 식구들과 만나도록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에 죄수들이 감읍했고 모두가 제 기한내에 돌아왔다. 한번은 죄수 한명이 집에 갔다가 병에 걸렸는데 기한을 어기지 않기 위해 돈을 내어 수레를 타고 옥에 돌아왔으나 오자마자 죽고 말았다. 우연은 죄수가 신용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여겨 직접 여러 사람들과 함께 죄수를 성밖에 매장해 주었다. 이 일로 죄수들의 가족과 백성들이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 후에 우연이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현지의 태수 부종(富宗)은 우연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차라 공조(功曹)를 맡아 줄것을 우연에게 청했다. 부종은 사치한 생활을 하였는데 그 복식이나 수레가 조정에서 규정한 기준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우연은 이러다가는 조만간에 율법을 어길 것이라고 여겨 부종에게 간했다. “안영(晏婴)이 제(齊)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는 그럴듯한 가죽옷 한벌도 없었고 계문자(季文子)가 노(魯)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는 그의 아내가 종래로 비단옷을 입은 적이 없었습니다. 고금을 통털어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생활상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허나 공께서는 이처럼 낭비가 심하니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부종이 우연의 권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제멋대로 했다. 부종이 잘못을 깨닫지 않는 것을 본 우연은 조만간 일이 터질 것이라 생각하고는 즉시 사임을 하고 낙향했다. 얼마후 부종의 사치가 지나치다고 상소하는 사람이 있어 황제는 죄를 물어 극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형장에서 부종은 과거 우연이 좋은 말로 권고했던 일을 생각하고는 후회하며 개탄했다. “당초 우연의 말을 들었을걸. 그랬다면 어찌 오늘 목이 떨어지는 화를 당할수 있었으랴.” 어떤 자가 이 말을 황제 류수에게 전하니 황제는 우연이라는 인물을 기억하게 되었다.

한나라 건무(建武) 20년(기원 44년)에 류수가 동부지역을 돌아보는 길에 소릉(昭陵)을 지나면서 독우(督郵)벼슬을 하고 있던 우연을 불렀다. 황제가 보니 우연은 법도가 있고 모습이 당당했으며 예의가 몸에 배어 있었다. 특히 제사에 관한 일과 소릉의 나무품종과 그 수에 대해 물 흐르듯 대답하는 것을 보고 황제는 크게 만족을 표했다.

그러나 이어 류수의 마차가 봉구문(封丘門)을 지나려고 하니 문이 너무 협소하여 의장대가 통과할 수 없었으며 길이 크게 막혔다. 류수가 대노하여 시어사(恃御史)에게 채찍 백대의 벌을 내리자 우연이 나서서 말했다. “성문이 협소한 것은 지방관의 잘못이옵고 시어사는 그 책임이 없습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소관입니다.” 황제가 그 말을 듣고 도리가 있다고 여겨 시어사의 벌을 면해 주었다.

이처럼 대의명분을 잘 따지는 우연을 사람들은 칭송해 마지 않았다. 우연은 원칙적으로는 밝았으나 작은 일에서 조심하지 않는 점들이 있어 사서에서는 “그 성격이 소박했으나 사소한 일에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불구소절)”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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