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공농혁명군 제1군 제1사단 군기)
1927년 9월 9일, 중국 공산당 팔칠(八七)회의 결의에 따라 마오쩌둥(毛澤東)은 추수(秋收) 봉기를 조직하면서 혁명을 배반한 국민당(國民黨)의 깃발이 호소력이 없다고 판단, 공농혁명군(工農革命軍) 제1군 제1사단을 조직, 개편하고 봉기군의 번호와 군기를 통일했다.
추수 봉기 후 중국 공산당이 지도하는 ‘공농혁명군’의 군기가 처음으로 하늘 높이 날렸다.
추수봉기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각지 혁명무장의 명칭은 통일되지 않았다. 1927년 11월 중국 공산당은 후베이(湖北)에서 황마(黃麻) 봉기를 발동하고 황안(黃安) 현을 공략, 공농민주정권을 설립했다. 현지의 한 서예가가 붓을 들어 시를 쓰면서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군대를 홍군(紅軍)이라 불렀다.
그로부터 1개월 후 광저(廣州) 봉기에서 봉기 지휘부는 ‘공농홍군(工農紅軍)’의 깃발을 들었으며 봉기에 참가한 군대를 통일적으로 ‘공농홍군’이라 칭했다.
1928년 4월 주더(朱德) 등이 샹난(湘南) 봉기군을 이끌고 징강산(井岡山)에 올라 마오쩌둥의 공농혁명군과 승리적으로 합류, ‘중국공농혁명군 제4군’을 편성했다.
1928년 5월 25일 중공중앙은 ‘과거 공농혁명군의 명칭을 취소하고 관할구역에서 설립한 모든 군대를 홍군으로 공식 정명(定名)한다’는 내용의 <중앙 통고 제51호>를 발표했다.

(사진설명: 1930년의 공농홍군 군기)
이로부터 전국 여러 근거지의 혁명무장은 모두 ‘홍군’으로 개명하기 시작했으며 1931년 후 전국 각지 혁명군대의 명칭은 모두 ‘중국공농홍군’으로 통일되었다.
그 뒤에 근거지 혁명투쟁의 수요에 근거해 홍군은 선후로 ‘팔로군(八路軍)’과 ‘신사군(新四軍)’,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 등으로 명칭을 바꾸었지만 ‘중국공농홍군’이라는 이름과 2만 5천리 장정의 영웅 서사시는 영원히 사서에 기록되어 중화민족의 영원한 정신적 부가 되었다.

(사진설명: 장정에서 사용한 1934년의 홍군 군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