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8-05 11:41:25 출처:cri
편집:权香花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던 중국 등산대원들의 이야기

오늘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던 중국 등산대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시간은 1960년 5월 24일 오후 4시 중국 등산대원들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북쪽 "두번째 계단" 을 오르는 중이였다.  중국 등산팀의 돌격대원들인 왕푸저우(王富洲)와 궁푸(貢布), 취인화(屈銀華), 류롄만(劉連滿)  네 명이 몇 시간째 거의 수직으로 솟은 암벽아래에 고립되어 있었다.  네 사람이 손바닥만한 좁은 비탈에 엉켜 붙어 7급의 강풍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대원들은 "두번째 계단"으로 불리는 이 90도 각의 절벽을 극복하기 위해 이미 4시간째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5미터 높이의 이 암벽은 아무런 지지대가 없어 설사 평원지대에서라도 등반이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곳은 해발 8600미터의 고산이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몹시 숨이 차고 힘이 든다. 여기에 두꺼운 방한복과 장비까지 휴대하다보니 더욱 어려웠다. 

"이제 곧 날이 저물 것 같습니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내일에는 또 날씨가 바뀐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은 우리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할 마지막 기회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돌격대 대장 왕푸저우가 하는 말이 다른 세사람에게 는 명령조로 들렸다. 

"난 오늘 산에 오르며 다시 내려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벌목 노동자  출신의 취인화가 쓰촨(四川)사투리 억양으로 이렇게 말한다.

"올라가도 내려가도 죽기십상인데 죽더라도 정상에 올라가서 죽읍시다."   티베트 시가체에서 온 궁푸는 등산대에 참가하기 전에 "진주마리"고 불렀는데 티베트어로 "해방군"이라는 뜻이다. 

"지금 급선무는 이 절벽을 넘는 것입니다.  우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소방대원 경력이 있는 류롄만은 다른 세사람보다 일찍 등산훈련에 참가했고 이번 돌격대에서도 주력 대원으로 지금까지 길잡이를 담당하고 있다. 

" 무슨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인간 사다리를 만듭시다." 

"어떻게 만들까요?"  취인화가 물었다. 

"내가 전에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화재 진압을 위해 벽을 넘을 때 인간 사다리를 엮군 했습니다.  내가 밑에 앉을테니 여러분이 내 어깨를 밟고 절벽에 오른 다음 다시 저를 끌어올리세요. " 

취인화는 등산화 바닥의 요철이 류롄만의 어깨를 상하게 할가봐 신을 벗고 맨발로 류롄만의 어깨를  디디고 일어서 암벽에 하켄을 박고 지지대를 만들면서 먼저 절벽에 올랐다. 그후 왕푸저우와 궁푸도 잇달아 류롄만의 어깨를 밟고 절벽에 올랐다. 이때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지났다.  

 류례만은 지칠대로 지쳐 암벽밑에 주저앉고 말았다.  세 사람이 바줄로 류롄만을 절벽위로 끌어올렸다. 

"두번째 계단"에 오르니 작은 돌이 쌓인 비탈이 나타났다.  이곳 해발은 8600미터, 산 정상까지 200미터만 남았다. 

네사람은 1960년 5월 24일의 마지막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정상을 행해 전진했다. 이날 저녁 7시가 되자 해가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떨어졌고 네사람은 어둠을 헤치고 계속 산을 톱아올랐다. 

이때 가장 앞에 섰던 류례만이 갑자기 쓰러졌다. 세사람이 황급히 다가가 살펴보니 류례만은 얼굴이 하얗고 입술이 파랗게 변했는데  너무 힘이 들어 두눈을 꼭 감고 있었다. 

"류례만 씨, 정신 차리세요. 잠들면 안됩니다. " 

대원들의 부름속에서 정신을 차린 류롄만은 눈을 뜨고 힘겹게 이렇게 말한다. " 저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를 관계말고 계속 오르십시오."

나머지 세 사람은 류롄만을 바람을 등진 암석 뒤에 옮기고 침낭으로 잘 싸 놓은 후 계속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날 밤은 날씨가 유난히 맑았다.  류롄만은 돌 위에 누워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류롄만이 어릴 적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류롄만을 데리고 동냥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류롄만은 13살 되던 해 어른들처럼 부자집에서 머슴을 살았다. 그때 그는 자기가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언제든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년 365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소처럼 일했지만 그들 모자는 여전히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면서 류롄만은 그제야 가난과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다. 

1951년 18살의 류롄만은 하얼빈 전기기계공장에서 서기원으로 일하다가 1954년 소방훈련반에 참가하여 공장의 소방대원이 되었다.  1955년 신체조건이 뛰어나고 소방대원의 기능도 갖춘 류롄만은 중국등산훈련팀에 선발되었다. 

1956년 4월부터 1년여시간에  류롄만은 선후로 중국의 타이바이산(太白山)과  무스타거봉,  궁가산 그리고 유럽의 최고봉 엘브루스봉을 등정했으며 1957년에 국가급 운동건장(健將)의 칭호를 받았다.  

수년간의 등산활동에서 그는 여러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이번은 아무래도 죽음을 피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류롄만은 필기장과 붉은 연필을 꺼내 별빛을 빌어 힘겹게 써내려갔다.

왕푸저우 동지:

나는 당과 국가에서 나에게 내려준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이 임무는 당신들 세 사람이 완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산소통을 이곳에 남겨둘테니 세 사람이 개선하고 돌아올때 사용하십시오.  도움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 

당신들의 동지 류롄만 씀

류례만은 유서를 적은 종이장을 필기장에서  찢어내어 장갑속에 밀어넣었다.  그는 얼굴에 썻던 산소마스크를 벗고 산소통 밸브를 잠근 다음 눈을 감았다. 

한편 왕푸저우와 공푸, 취인화 세사람은 이때 이미  돌자갈 비탈 정상을 지나 빙설의 산꼭대기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고 있었다.  세사람은 지녔던 장비들을 모두 버렸지만 그래도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25일 새벽 4시, 세 사람이 기어서 산기슭을 오르는데  선두에 섰던 공푸가 먼저 한 고지에 도착하여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더는 더 높은 곳을 오를 길을 찾을수 없었다.  얼마후 왕푸저우와 취인화도 이 곳에 도착하여 이 곳 말고는 더욱 높은 곳이 없음을 확인했다. 

왕푸저우는 "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모두 하산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동지들, 이곳이 바로 산정상입니다. " 

세 명의 중국인들이 "두번째 계단"을 떠난지 9시간만에 마침내 세계의 최고봉 정상에 서게 되었다.  세사람은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를 배낭에서 꺼내 흔들며 최고봉 정복을 경축했다. 왕부저우는 필기장에 " 왕푸저우 등 3명이 1960년 5월 25일 4시 20분경에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 "라고 적었다. 

세사람은 정상에서 15분 머물다가 산아래로 철수했다.  취인화가 철수 도중에 촬영기로 영상을 찍었다. 오른손 장갑을 벗고 촬영하다가 동상으로 두번째 손가락을 잃었다.  이 뿐만 아니라 취인화는 이번 등산에서 두발도 동상을 입어 열 발가락을 모두 잃었다. 

세사람이 "두번째 계단"으로 돌아왔을 때 날이 이미 밝았는데 갑자기 큰 바위옆에서 누군가 이들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이곳에 남겨두었던 류롄만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해발 8700미터 고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하룻밤 동안 죽음의 신과 싸워 이기고 기적같이 다시 의식을 회복했다. 

다시 상봉한 네 사람은 류롄만이 쓴 유서를 보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60년 5월 24일부터 25일까지 중국등산대는 인류 사상 처음으로 북쪽기슭으로부터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다.  1975년 중국등산대는 또다시 북측 등정에 성공했고 "두번째 계단"에 금속 사다리를 설치하여 뒤에오는 사람들의 등산을 도왔다. 그래서 이 사다리를 "중국 사다리"라고 부른다. 

시간이 흘러 그 후 네 사람은 각자의 인생이야기를 엮어나갔다.  

왕푸저우는 그후 줄곧 등산운동과 관련한 교육과 훈련, 지도 업무를 담당했는데 한때 중국등산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궁푸는 티베트야생동물보호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취인화는 여러 곳을 다니며 스포츠 관련 일을 했고 한때 중국등산협회에서도  일했다.

류롄만은 무려 13년간 등산운동에 종사하면서 티베트등산캠프 구축 사업에 참가했다. 1963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4주년 때 류롄만은 베이징에서 마오쩌우둥 주석의 접견을 받고 10월 1일  국경일 경축행사에 참석했다. 

류롄만은 2016년 하얼빈에서 83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류롄만은 생전에 한 TV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내 인생에 가장 큰 유감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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