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8-09 10:36:51 출처:cri
편집:权香花

룽즈싱(容志行)의 축구 이야기

오늘은 중국의 축구 명장 룽즈싱(容志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48년 생인 룽즈싱은 어릴 적에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인도에서 생활하다가 10살 때 귀국하여 중국 남부 광저우(廣州)에  정착했다. 

어느날 동네 남자아이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좁은 골목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 중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한 어린이가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키는 다른 아이들보다 작은데 발재주가 뛰어나 그가 축구공을 차지하면 상대편에서 서넛이 달려들어도 공을 빼앗지 못했다. 그는 상대측의 두명이 협공으로 공을 빼앗으려 하면 민첩하게 방향을 바꾸어 몸을 돌리며 가볍게 피해나갔다.  이 어린이가 바로 룽즈싱이다.

어느날, 현지 체육학교의  축구감독 루젠주(盧建柱)가 룽즈싱이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시합아 끝나자 루젠주 감독은 룽즈싱을 불러세웠다. 

"우리 체육학교에 와서 축구를 해볼래? "

"시켜주시면 하고 싶습니다." 

룽즈싱이 얼굴의 땀을 닦으며 대답한다. 

"그럼 좋다. 이틀 후 우리 학교에서 시합이 있는데 네가 와서 한번 차보거라." 

사실 루 감독이 말한 이 시합은 룽즈싱의 축구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이였는데 시합에서 룽즈싱은 시야가 넓고 또 발재주도 좋은 등  천부적인  축구 기질을 보여주었다.  

루젠주 감독은 이날 저녁 룽즈싱 부모를 찾아 룽즈싱을 체육학교에 보내 줄 것을 요구했다. 룽즈싱의 부모가 이를 흔쾌히 수락하면서 10살의 룽즈싱은 체육학교에 입학하여 자신의 축구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9년 21살의 룽즈싱은 광둥성(廣東省) 축구팀에 입단했다. 1971년 쿠바 축구대표팀이 중국을 방문, 광둥팀과 한차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경기는 웨슈산(越秀山)경기장에서 열렸는데 2만명의 관중들이 몰려 들어 관람석을 꽉 채웠다. 

경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쿠바팀이 먼저 한 골을 넣어 1:0으로 앞섰다. 경기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감독은 룽즈싱을 교체 투입시켰다. 룽즈싱이 경기에 나오자 관중석이 술렁이였다.  관중들은 아직 룽즈싱이 누군인지를 잘 몰라서 감독이 이런 무명 선수를 투입시키는데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고 룽즈싱이 큰 기쁨을 선물했다.  룽즈싱이 쿠바팀 문전으로 멀리 높게 패스한 공을 중국팀의 다른 동료선수가 받아 슛해 쿠바팀의 골망을 갈랐다. 

경기가 1:1 동점이 되자 장내 관중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광둥팀 파이팅! 광둥팀 파이팅!!"

관중들의 열띤 응원 속에 광둥팀은 더욱 강하게 쿠바팀을 공격했고 경기종료를 앞두고 룽즈싱이 30미터 밖 원거리 슛으로 결정 골을 넣어  쿠바팀을 2:1로 이겼다.  이번 경기를 시작으로 룽즈싱은 광둥팀에서 주력선수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고  1972년 24살 되던 때 중국 남자축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다.

 1980년 2월부터 1981년 1월까지 열린 12회 월드컵 아태지역 예선경기에서 룽즈싱이 공격수를 담당한 중국팀은 선후로 중국홍콩팀과 일본팀, 중국마카오팀, 조선팀을 이기고 예선 소조전 1위를 차지했다.  

월드컵대회 8강에 진입했던 조선팀과의 경기에서 룽즈싱은 너무 열심히 뛰여 다리 근육에 경련이 발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치렀고 경기 종료 뒤에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했다. 

그 다음 아시아 우승팀 쿠웨이트팀과의 경기에 앞서 룽즈싱은  발목을 다쳐 10바늘을 꿰맸다.  이 상황을 안 감독은  "즈싱, 경기에서 견디기 힘들면 언제든지 내려오세요." 라고 말했다. 

이에 발목에 붕대를 감던 룽즈싱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살갗이 조금 까졌는데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경기에서 11번 유니폼을 입은 룽즈싱은 쿠웨이트팀의  주요 수비 대상이여서 그가 공을 잡으면 여러명이 달려 들어 밀착방어를 실시했다. 

중국팀이 반격에 나섰는데 룽즈싱이 공을 몰고 쿠웨이트팀 진영으로 돌진하여 골문을 위협하자  쿠웨이트팀 수비수 두명이 달려들어 거세게 충돌하며 공을 빼앗으려 한다.  키가 171cm 밖에 안되는 룽즈싱이 만약 이 두 수비수와 부딪치면 이번 중국팀 공격이 와해될뿐 아니라 룽즈싱도 충격으로 부상을 입고 퇴장할 것 같았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 룽즈싱은 공을 발에 감고 앙감질로 훌쩍 뛰어 두 수비수 사이를 뚫고 나왔다. 룽즈싱의 발이 땅에 닫는 순간  뒤에서 "쾅쾅", "아이구"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한편 룽즈싱은 이미 공을 몰고 상대방 골문 10m 지점까지 달려왔고  또한  골문까지는 수비수 한명도 없어 룽즈싱이 가겹게 살짝 슛해도 득점할 것 같았다. 

"즈싱, 빨리 슛하세요!"

그라우드 밖에 있던 감독과 동료 선수들이 큰 소리로 룽즈싱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룽즈싱이 갑짜기 걸음을 멈추더니 머리를 돌려 뒤를 돌아다 본다.  쿠웨이트의 두 선수가 경기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다가가 머리 숙여 부상상태를 살펴보고 이들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하고 또 손을 내밀어 두선수를 일으켜 세웠다. 

룽즈싱의 행동은 관중들을 감동시켰다.  장내에 박수소리와 환호의 소리가 오랫동안 울려퍼졌다. 경기 후 현지의 축구팬들이 그라운드에 내려 와 "11번!", "11번!"을  절주있게 외치며 룽즈싱을 비롯한 중국 선수들을  이끌고 이들이 투숙했던 호텔까지 바래다 주었다. 

한편 현지 매체도 중국팀 11번 선수의 고상한 품성을 칭찬하는 글을 실었다. 이번 경기에서 중국팀은 3:0으로 당시 아시아우승팀이였던 쿠워이트팀을 이겼다. 

"중화의 진흥을 위해 노력하자!"

"노력하고 또 노력하자!"

이날 저녁 중국의 많은 도시들에서 군중들이 거리로 나와 "룽즈싱! 룽즈싱! 룽즈싱!"을 외치며 행진했다. 룽즈싱은 중국인들 마음속의 영웅이 되었다.

1982년 은퇴한 후 룽즈싱은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그 뒤에는 중국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축구인생에 룽즈싱은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경기장에서 룽즈싱은 늘 상대방 선수의 난폭한 방어에 시달렸지만 그러나 그는 종래로 상대방과 비슷한 수단으로 보복하지 않았다. 

룽즈싱의 축구 매너와 품성은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즈싱품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이 중국축구의 본보기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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