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1-08-26 10:35:34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1년 8월 26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8월의 네 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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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월

금주 수요일인 25일은 양력 올해의 237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날로 1년이 128 남았습니다.

‘역사의 오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609년 8월 25일,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베니스에서 그가 제작한 접이식 망원경을 전시했습니다.

1894년, 일본 생물학자가 폐스트 병균을 발견했습니다.

이해 8월 25일, 일본학자는 홍콩에서 페스트가 유행하는 기간이 병의 병원체가 세균이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 병균은 훗날 예르시니아증 간균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통상 부르는 페스트입니다. 페스트는 또 흑사병이라고 불립니다. 일반적으로 쥐 사이 혹은 설치류 야생동물 사이에 유행하며 모기로 인해 인간 사이의 페스트 전염병을 일으킵니다.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페스트 병의 치사율은 50%내지 70%입니다. 인류 역사상 여러 번 훼멸적인 페스트 대유행이 있었습니다.

1227년 8월 25일, 칭키스탄이 육반산 부근의 청수현에서 숨졌습니다.

칭키스칸은 대몽골국의 칸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가이고 군사가입니다.

1960년 8월 25일, 제17회 하계올림픽경기대회가 개막되었습니다.

제17회 하계올림픽경기대회 즉 1960년 로마올림픽경기대회에는 83개 나라와 지역의 도합 5348명 선수가 참석했습니다. 이 가운데서 여성 선수가 610명, 남성 선수가 4738명이었습니다. 모로코와 수단, 튀니지, 산마리노가 처음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두 독일은 여전히 독일연합팀의 이름으로 경기에 참석했습니다. 이집트와 수리아는 아랍연합팀을 구성했고 트리니다드와 자메이카는 서인도연합팀을 구성했습니다.

[간주]

중국 여러 지역에는 모두 노인협회가 있습니다. 지역 노인협회는 지역 노인들의 호조 조직으로 노인들의 합법적인 권익을 수호하고 노인들의 사회복지 수준을 증진하는데 취지를 두고 있습니다.

지방정부는, 지방 노인협회가 지역 정부의 영도를 받으며 그 활동 장소와 경비는 지역 정부 혹은 본인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길림성 장춘의 노인협회 회원들을 방송을 통해 자랑하고 싶다면서 장춘의 김수금 청취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청취자 내신]

청취자 담당자 앞,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청취자들에게 좋은 소식보내시느라 수고가 많겠습니다.

장춘은 입추가 지나니 무더운 열기가 물러가고 신선한 감이 듭니다. 저녁이면 수풀속에서서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노래하며 풍년의 가을이 눈앞에 닥쳐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오늘은 장춘제일자동차그룹 조선족노인협회 노인들이 협회를 자기 집처럼 여기고 좋은일 궂은일을 마다하고 발벗고 나서는 정성스런 마음에 감동되어 이렇게 펜을 들어 자랑하고자 합니다.

우리 노인협회는 1995년 노인들이 한푼두푼 돈을 기부하고 과장급, 처장급 성원들이 이전 회사에서 협찬금을 받아와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으로 기지를 만들고 길을 수리, 난방시설 도관을 만들었습니다. 여성 노인들은 냉면을 만들어 팔고 또 공장에서 일을 해서 자금에 보탬을 해서 387제곱미터 크기의 노인활동실을 지었습니다.

노인활동실이 25년이나 지난 오늘 비가 오면 지붕의 훼손된 곳에 물이 새는 등 애로가 큽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너도나도 모여와서 활동실 지붕을 깨끗이 청소하고 보수했습니다. 이 분들이 바로 박회장을 비롯한 심유학, 정군호, 양두봉, 윤영선, 김문식, 진초산, 김선분 등입니다.  거의 다 70이 넘은 노인들입니다. 심유학 노인은 올해 80세이지만 젊은이들 못지 않게 사닥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보수를 했습니다. 이들 몇분은 평소에도 활동실의 하수도가 막히거나 할 때면 소매를 거둬올리고 보수를 했던 분들입니다.

장춘제일자동차그룹에서 일생을 자동차를 만드는데 지혜와 능력을 다하여 일하셨던 분들이라서 일을 천직으로 기쁨으로 여기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노인협회에 일이 있으면 너도나도 다투어 나서고 있습니다. 요즘 협회에 새로 가입한 정군식, 최남규 노인도 앞장에 서서 협회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노인들이 모두 활동실을 이렇게 저마다 정성을 들여 알뜰하게 꾸리는데 감동됩니다. 이것이 우리 자동차공장 근무자들의 자력생생, 간고분투의 본색이 아닌가 합니다. 이 분들은 일생을 중국 자동차공업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고 오늘은 노인협회에서 집단을 위해 어려움도  마다하고 합심하여 현신하면서 노인들의 말년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분들에게 감사하고, 충심으로 되는 경의를 드립니다.

이런 고마운 마음을 방송을 통해 표현하고 여러 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자랑하고자 합니다.

장춘애청애독자클럽 제일자동차그룹 분회 김수금 올림

노인 사단은 노인협회, 노인활동실은 물론 노교수협회, 노과학기술자협회 등 다양한 조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구의 고령화와 사회의 민주화, 현대화의 발전 그리고 노인 사회와 생활의 필요에 따라 노인 사단은 점차 발전되고 있으며 사회발전에 대한 역할과 사회의 영향력도 날을 따라 늘어나고 있습니다.

길림성 장춘의 김수금 청취자가 보낸 좋은 이야기이었습니다.

[간 주]

지명과 연변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옛날 이주민이 정착했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의 지명 홍기하의 이야기입니다.

붉은 기가 나부끼던 홍기하

훈춘이 ‘꼬리’라는 이 이름은 만족 말에서 기인되었다고 현지 언어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그걸 중국말로 옮기면서 ‘훈춘’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또 “일본통지日本統志”, “금현역명今縣譯名”, “길림통지吉林統志”, “길림외기吉林外記” 등 문헌은 훈춘이 훈춘하琿春河의 이름을 빌어서 생긴 지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훈춘하의 이름은 “금사金史”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기록에 “훈준수琿蠢水와 통문수統門水의 합수목에 우구룬부烏古論部가 있으니…”라는 글귀가 있다. 통문수는 금나라 때 두만강을 이르던 말이며 우구룬부는 옛날 두만강 하류지역에서 살던 여진족의 부족이다. 훈준수琿蠢水는 바로 훈춘하琿春河이며 훈준琿蠢이 훈춘琿春으로 전음된 것이다.

마침 현성은 훈춘하의 기슭에 있으니 훈춘하의 이름을 빌었다는 해석이 그럴 법 하며 훈춘하의 하류에 있으니 ‘꼬리’라는 의미도 톱니처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공교롭게 훈춘은 또 연변 동쪽의 맨 끝부분에 위치한다.

그럴지라도 이와 전혀 다른 설이 있다. “명사明史”의 기록에 따르면 “훈춘은 여진어女眞語에서 기인되었으며 ‘변강지역의 땅’, ‘국경에 가까운 지대’, ‘가까운 변방’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 민간에서는 훈춘이 실은 ‘흐린 봄’이라는 의미의 ‘혼춘渾(混)春’에서 생긴 지명이라고 전한다. 훈춘은 훈춘강과 두만강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침안개가 유별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봄과 여름이 바뀔 때면 아침안개가 자오록이 피어오르다가 점심나절에야 차츰 흩어진다고 한다.

마치 시냇물이 흘러서 한 곬에 모이듯 한다. 그 무슨 발음이나 의미이든지 막론하고 이런저런 설은 나중에 ‘훈춘琿春’이라는 이 두 중국글자로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기실 훈춘에는 또 다른 지명이 하나 있다. 일명 ‘대팔툰大八屯’, 여덟 개의 큰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이상하게 지명 전면조사를 하던 지난 세기 80년대 이 마을이름은 벌써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현지 고희古稀의 노인들도 이 이름을 들은 적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 ‘팔대툰八大屯’의 와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팔대툰은 현성에서 동쪽으로 15리 상거, 강희(康熙, 1661~1722) 연간 목穆 씨 등 만족의 여덟 성씨가 이곳에 살면서 촌락을 형성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팔대툰 마을은 훗날 승리촌勝利村으로 개명하였다.

아무튼 ‘대팔툰’이라는 이 지명이 정말로 있었다면 벌써 다른 촌락에 말끔히 묻혔을 수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그도 그럴 것이 훈춘 지역은 신석기 시대부터 주민 부락이 있었던 오랜 고장이기 때문이다. 근대 고고학 발견에 의하면 4천 년 동안 훈춘에서 촌락이 연속 부절히 나타났다. 아직 여기저기에 적지 않은 옛 성터와 고분 등 유적이 남아서 천 년 전의 옛 기억을 일부나마 전하고 있다. 그러나 조대의 교체, 국토의 변경에 따라 주민들의 이주가 빈번했으며 또 문자기재가 적기 때문에 예전의 대부분의 부락과 역사는 고증하기 힘들다.

청나라가 산해관山海關 남쪽으로 진출한 후 훈춘 지역은 ‘봉금封禁’을 실시, ‘남황위장南荒圍場’으로 불린다. 일찍 금나라 때부터 이 지역에서 살고 있던 대량의 만족이 서쪽으로 이주하며 이에 따라 여기저기 산재하던 촌락들이 눈자리 나게 줄어들었다. 그 후 청나라는 짜리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변강건설을 강화했다. 강희康熙 53년(1714), 훈춘에 협령아문協領衙門을 설치하고 기(旗, 군대를 이르는 말)를 편성하며 다시 촌락을 만들었다.

이때 북쪽의 녕고탑寧古塔에서 안초랍安初拉, 소와안蘇瓦顔 등 성씨가 이주, 현지에 남아있던 토착 만족들과 함께 마을을 세운다. 건륭乾隆 17년(1752)과 23년(1758), 수천 리 밖의 신강新疆 등 지역에서 만족이 대거 이주하였다. 그리하여 함풍(咸豊,1851~1861) 말년에 이르러 경내의 촌락은 무려 80여개나 되었다.

미구에 강 건너 조선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동치(同治,1861~1875) 연간부터 조선인들은 훈춘 지역으로 대량으로 이주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훈춘의 금전판은 또 이민들에게 색다른 유혹을 던지고 있었다. 일설에 ‘금金’이라는 국호는 바로 옛날 여진인이 훈춘을 포함한 백두산 일대에 금이 많이 난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광서(光緖, 1875~1908) 연간 조선인이 처음으로 훈춘 태평구太平溝에서 사금광을 발견했으며 그 후 이 일대에는 금을 캐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어 관방에서는 중국인과 조선인 금점꾼 3백여 명을 모집하여 금광을 꾸리고 금을 캤다. 금전꾼들은 땅을 뙈기로 떼어 굴을 파고 주변에 흙더미를 쌓았으며 그 위에 붉은 기를 꽂아놓았다. 이것으로 그가 이 땅의 임자임을 표시했던 것이다. 훈춘하 기슭에는 도처에 붉은 기가 나부끼었다. 그래서 한때 훈춘하를 ‘홍기하紅旗河’로 불렀다고 한다.

그때 훈춘하의 하류는 수심이 깊었고 물살이 셌다고 전한다. 두만강의 물 흐름을 거슬러 바다의 연어가 현성 부근의 훈춘하까지 올라왔다. “훈춘현지琿春縣志”의 기재에 따르면 청나라 말 민국 초기부터 현성에 부두를 세웠다고 한다. 1926년 훈춘에는 선박이 60척 있었으며 평균 탑재량이 15톤 이상에 달했다. “만주연감滿洲年鑒”(1933)의 기록에 따르면 훈춘하의 부두를 출입한 각종 선박은 1929년에 1,469척이었으며 1930년에는 847척, 1931년에는 1,394척에 달했다. 선박은 현성 남쪽의 훈춘하 부두에서 출항하여 두만강에 들어선 후 나중에 ‘토자패’ 국경비석을 지나 동해 바다에 들어갔는데, 서남쪽으로는 조선의 청진에 이르렀고 동북쪽으로는 러시아의 해삼위에 이르렀다.

이때 훈춘은 엄연히 국제상업도시로서 인구가 밀집하고 상가가 즐비했다. 번창한 그 규모는 당시 길림성 소재지였던 길림시吉林市의 버금에 갔다. 이름이 ‘꼬리’이지 실은 꼬리 아닌 ‘머리통’으로 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31년 ‘9.18’ 사변 이후 두만강의 선박운수가 중지되었고 또 1938년 ‘장고봉사건’ 이후 두만강 항로가 전면 폐쇄되었다. 그 후 이런저런 원인으로 두만강의 출해권은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훈춘하에는 더는 붉은 기가 나부끼지 않고 빨간 단풍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강기슭을 거니노라니 웬 시구가 차디 찬 강바람에 날려 와서 더구나 나그네의 애달픈 마음을 잡아 흔들었다.

“훈춘향토지琿春鄕土志”에 실린 시 “홍계하의 저녁”이었다.

“옅은 노을이 홍계하에 비낄 제

구경꾼들이 강기슭에 실북 나들듯 하네.

솔솔 부는 바람에 돛 그림자가 춤추듯 하고

파도에 둘린 섬은 정원을 방불케 하네.

…”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지명과 관련한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도문에는 ‘까울령’라는 산 이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명 ‘까울령’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일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지명 ‘까울령’은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일까요.

네, 길림성 장춘의 청취자들이 답안을 보내왔는데요, 답안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도문과 훈춘 사이에 고려마을이 있었는데, (근처에) 까울령 고이산이 있었다고 합니다. 해 나무가 많이 자라는데 해나무 산이라는 뜻에서 까울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답안을 보낸 분들은 장춘 애청애독자클럽 제일자동차그룹 분회 김수금을 비롯하여 라명희, 주송숙, 양두봉, 박숙녀, 오애화, 허희숙, 주혜숙, 한란희, 리명희, 윤영선, 김금녀, 박룡익, 박영희, 방태식, 정성갑, 정기순입니다.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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