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고요함

겨울이 오면 보타산은 또 다른 세계에 들어선듯 그렇듯 장중하면서도 물과 같이 깨끗한 사색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또 오랜 옥과 같은 고요함으로 빚은 듯 하다.

고요함은 불국의 하늘로써 비어있는 담백함을 보여준다. 겨울의 따뜻한 햇빛은 두터운 구름층을 뚫고 금빛의 햇살을 대지위에 비춘다. 세월의 윤회속에 봄의 생장과 여름의 다툼, 겨울의 득과 실을 거쳐 겨울은 생명의 희노애락에서 벗어나 속세를 벗어난듯 하다. 푸르른 하늘은 깨끗한 눈동자처럼 다가올 내년의 생기를 보여주는 듯 하다.

고요함은 불국의 산색으로써 집요한 적막을 펼친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매화,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녹나무, 서리를 떠인 소나무, 우아한 수선… 먹처럼 짙게 변한 겨울의 보타산은 말은 없어도 수많은 말을 하는 듯 하다.

사실 고요함은 마음이고 사색이고 깨달음이다. 지난 천백년동안 얼마나 많은 겨울밤이 지나갔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해천불국에서 소나무와 바람과 달과 물을 보며 하늘세상의 소리를 들었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이 곳에서 주옥같은 글을 남기며 보타산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었던가!

달빛아래 반타암앞의 나한송은 여전히 바람을 따라 춤을 추면서도 마음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홀연듯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바람따라 날아가는 것은 낙엽이 아닌 내 마음의 사색 한 조각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