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풀기(수필)
장정일
륙상경기에서 제일 볼만한 경기는 아무래도 백메터경주라고 해야 할것이다. 백메터나 되는 경주로를10여초내에 번개같이 소화해내는 선수들의 각축장면은 실로 가관이다. 거의 한사람처럼 머리부터 먼저 들이밀며 라스트에 골인을 하는 장면은 참말로 멋지다.
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흥미로운건 달리기를 앞둔 선수들의 몸풀기장면이 아닌가 한다. 아직 심판의 호각소리가 울리지 않은 그 찰라, 잠시뒤의 운명적인 질주를 기다리는 그 숨막히는 적막의 순간에 선수들은 오히려 몸풀기에 여념이 없는데 거기에는 필시 볼거리이상의 무엇이 숨어있어보인다.
달리기직전의 선수들은 마치도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부류같아보인다. 어쩌다가 우연히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경주로에 그어진 흰줄같은건 마치도 음악가가 펼쳐놓은 악보이기나 한것처럼 태연히 먼곳을 둘러보는 사람, 그러면서도 팔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힘을 빼기도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숨과 정서를 고르기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질주전의 선수들이다.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해 하는데 당사자들은 도리여 여유를 찾는 모습이다. 그 장면에서 나는 눈길을 뗄수가 없는것이다.
륙상뿐이 아니다. 축구경기에서도 선수들은 몸풀기가 우선이다. 경기장에서는 사자같이 용맹스러운 선수들이 경기전에는 느슨하고 평화롭고 산만하기만 하다. 어서 빨리 경기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관중의 심사와는 상관없이 선수들은 심지어 짝을 지어 서로의 뒤잔등으로 업어주기를 하면서 늑장을 부린다. 똑 마치 유희를 즐기는 장난꾸러기애들같다.
선수들의 몸풀기는 정지에서 운동으로 넘어가는 과도이면서도 일종 긴장해소이며 몸낮추기이다. 몸을 풀지 않고 경기전부터 전신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고 오만가지 심각한 생각에 빠져든다면 선수는 경기장에 들어가 헛다리질을 하기가 십상일것이다. 가볍고도 민첩한 동작을 구사하기도 심히 어려울것이다. 바꿔말하면 몸풀기를 잘하는 선수가 컨디션이 좋다. 몸낮추기를 잘하는 선수가 멀리 뛰고 높이 뛰고 빨리 뛴다.
이메일로 보내온 선배작가 K녀사의 초고 몇편을 감상한 적이 있다. 짧으면서도 인상깊은 그녀의 글에서 나는 선수들의 몸풀기를 닮은 작가의 몸낮추기에 공감이 갔다. 하나도 화려할것 없는 만년의 삶, 그 수수하고 자잘한 일상을 있는그대로 겸허하게, 그러나 세련되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이 인상깊어 나는 한수 배우는 기분이 들군 했던것이다.
작가도 몸풀기를 한다. 창작의 비밀을 다 알수는 없겠지만 나는 몸풀기, 즉 몸낮추기를 정직한 작가와 평자의 기본자세로 꼽고싶다. 몸낮추기를 잘한 작가의 글에서는 독자를 자석처럼 끄당기는 매력이 있다. 이를테면 85세의 시인 라딘 스테어의 <<인생을 다시 산다면>>과 같은 명시가 좋은 보기일것이다ㅡ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욱 우둔해지리라.
가능한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꽃도 많이 꺾으리라.
우둔함, 실수, 맨발, 회전목마. 한마디로 그의 시는 긴장보다는 이완을 지향한다. 인간본연의 순수와 겸허한 자세에서 우러나는 작자고유의 정신적인 알몸의 표출, 그 자유로움과 즐거움에의 희구(希求)가 말하자면 그의 시의 매력포인트인 셈이다. 몸풀기에서 기회를 찾고 부드러움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로자(老者)의 달관이 녹아있어 라딘 스테어의 시를 읽느라면 눈물겹도록 진한 감동이 인다.
심각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의 시어가 진주처럼 빛을 뿌리며 이토록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것은 우둔함이나 실수를 즐기는 시인의 인간적인 저자세때문이 아닐가 한다. 만약 높은 목소리로 훈계만 하는 훈장의 자세였더라면 시인의 몸과 마음이 그토록 너그럽게 풀리고 열릴수 있었을가? 그의 인간성과 상상력이 자리할 공간이 그처럼 넓게, 그처럼 충분하게 비워질수 있었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