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희
[수필]
민들레의 일편단심을 의심해본적이 없다. 믿어서라기보다 노래가사에 익숙하기때문이다. 긴 세월 하루 같이 하늘만 쳐다보는 한떨기 슬픈 민들레. 가수 조용필의 음악속에 나는 민들레 자리에 내가 들어가보기도 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남편을 세워보기도 하다가 금방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일편단심이라고 하면 민들레보다도 그래도 해바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해 뜨는 순간부터 해 질 때까지 목이 아프도록 오직 해님만을 향한 해바라기의 일편단심. 민들레는 불 같은 태양을 좋아할뿐만아니라 밤하늘의 달과 별도 좋아한다. 그러니 민들레는 하늘만 쳐다보는 순정파라기보다는 오히려 플레이보이쪽에 가깝지 않겠는가. 일편단심 해바라기 마음이 너무 섭섭할것 같다.
민들레의 일편단심을 부정하려고 작심한게 아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겠기에 부언한다면 민들레의 상징의미를 모르는바 아니다. 다만 《일편단심》이 좋아서 서두를 뗐을뿐이다. 결혼과 함께 남편이 나의 평생 연구과제가 된것처럼 직업때문에 한국어교육이나 어휘연구가 나의 또 다른 연구대상이 되였기에 오늘은 《일편단심 민들레야》처럼 두 단어의 결합을 화제로 심심한 시간을 보내볼가 한다.
민들레는 일명 포공영(蒲公英)으로도 불린다. 그렇다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편단심 포공영이야》한다면 의사전달이나 감정표현이 영 말이 아니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이러고보면 《일편단심》과 《민들레》는 아주 잘 어울리는 두 단어이기도 하다.
《일기예보》라는 어휘를 보기로 하자. 예보도 인젠 일일기상 예보시대가 아니라 일주일이나 일개월 또는 일년 그 이상의 예측도 가능한 시대에 들어섰다. 그런데 《일기예보》나《기상예보》는 괜찮은데 《날씨예보》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민족성분이 다르니까 결합이 아주 자유롭지 못하다. 《새해》와 《신년》도 마찬가지다. 고유어는 고유어와 결합하고 한자어는 한자어와 어울리면 아주 자연스러운데 《새해를 맞으며》를 《새년을 맞으며》라 한다면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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