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적 특색을 살린 베이징 올림픽공원의 침하화원(下沈花園, 주위의 지면보다 낮게 구성된 분지형 화원)이 이미 초보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센터 지역의 침하화원에서 시공인원들은 오렌지색 틀 위에 "길경대고(吉慶大鼓)"를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특별한 북은 직경이 1m~2m에 달해 수백개의 큰 북은 중국특색의 화려한 풍경을 보여주게 된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북이 가장 일찍 출현한 국가중의 하나이며 각 민족과 지역의 북 종류도 다종다양하다. 최초의 북은 제사 혹은 전쟁에 사용되었으며 역사의 발전과 함께 점차 민간에 보급되어 그 용도도 더욱 광범위하게 다양화 되었다. 오늘날 북은 경사스런 분위기에 많이 사용되며 중국의 많은 지역과 소수민족들은 북을 치는것으로 명절의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북은 정신의 상징이고 춤은 힘의 표현이므로 북과 춤의 결합은 춤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문헌 기재에 의하면 최초의 북은 도기시대에 들어선 후 찰흙으로 만든 "흙북"으로서 흙북은 또한 농경문화형 춤의 시작을 표징한다. 일찍 상, 주나라 시대에 이미 원시적인 북춤형식이 출현했을뿐만 아니라 북과 춤의 결합은 당시 사람들의 단결의 힘을 북돋아주는 정신적 역량으로 되었다.
원시사회 사람들은 석기를 부딪히는 것으로 춤에 흥을 돋우어 주었고 도자기시대에 들어선 후 사람들은 찰흙으로 만든 흙북을 사용했으며 그 뒤 흙북, 갈대피리 등 악기와 가무의 결합은 고대 "악(樂)", 즉 歌, 舞, 樂 3자가 일체화된 악무(樂舞, 음악반주가 있는 춤)를 형성했다.
각 민족중에서 유전된 북춤은 대부분 당, 송조이래 성행한 춤 형식으로서 그중 일부분은 천년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미 사라진 당조 "장고(杖鼓)"는 오늘날 조선족 민간에서 여전히 독무 혹은 집체무의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농업사회 초기 북의 수량은 많지 않았다. 사회의 발전, 목축업의 흥기와 함께 충분한 가죽의 공급은 가죽북과 북춤이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도록 추진했다.
각종 북춤은 북을 도구로 혹은 주요 악기로 하여 징, 동발 등 타악기의 배합하에 진행되는데 농후한 지역적 민족색채를 띠고 있다. 북춤은 농경 춤문화를 시작으로 해서 중화민족과 함께 기나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오래된 고대 악기, 무용 등을 보존했을뿐만 아니라 순박한 민족풍속을 보존했으며 오늘날에는 사람들을 고무격려해 휘황한 앞날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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