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4월3일, 10여m 높이의 틀 위에 걸려있는 수백개의 청동편종(編鐘, 음률이 다른 16개의 작은 종을 두 층으로 나란히 매달아 만든 옛날 타악기의 하나)이 올림픽센터 지역에 등장했다. 바람에 가끔씩 귀맛좋은 소리를 내는 편종은 마치 베이징올림픽 맞이의 새로운 악장을 연주하는듯 했으며 정밀한 제작공예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고전미의 청동편종과 현대미 건축 "새 둥지"의 조화로운 결합
편종은 중국 상조시기에 출현했으며 춘추, 전국시기로부터 진한시기 사이에 성행했으며 송조이후로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편종은 중국 고대의 중요한 타악기으로서 노래와 같은 선율을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종(歌鐘)"이라고도 부른다. 편종은 종의 크기에 따라 목제틀에 나란히 매달고 나무로 만든 채로 치는데 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고대 편종은 늘 궁중의 아악(雅樂)으로 사용되었으며 매번 출정하거나 연회, 제사 등 행사때 편종을 연주했다. 고대시기 통치자 전용의 악기인 편종은 신분, 등급과 권리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천자나 제후들만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1978년, 중국 호북성에서 전국(戰國)초기의 증후을묘(曾侯乙墓) 편종이 출토되었는데 총 65개의 크고 작은 종으로 이루어졌으며 중국 고대 편종의 왕으로 불리우고 있다.
진한시기 이후, 궁중의 아악으로 사용된 편종은 모양이 대부분 원형으로 변화되었으며 매개 종은 한개 음만 낼 수 있었다. 500여년의 황금시대를 거친후 편종은 성행에서 점차 쇠퇴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수당시기에 이르러 편종은 아악으로 사용된 외 수조의 "9부악"과 당조의 "10부악"중의 "청악(淸樂)", "서량악(西凉樂)"에도 사용되었으며 민간에는 거의 유전되지 않았다.
송조이후로부터 청조시기에 이르기까지 편종 제조기술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종악(鐘樂)도 점차 도태되기 시작했다. 청조시기 궁중에서 만든 편종은 그 모양이 이미 전통적인 편종과 상이했으며 종에서 나는 음률도 뚜렷이 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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