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중국 건립후 국민경제가 초보적인 복구를 가져오면서 주은래 총리는 중국의 특별한 도자기를 만들 것을 제기했다. 1975년 중앙에서 서류를 하달해 경공업부 도자기연구소는 모택동 주석을 위해 도자기 그릇과 문방구를 제조하되 "옥같이 하얗고, 종이같이 얇으며, 거울면같이 반들반들하고 부딪히는 소리는 옥경소리와 같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대 도자기의 최고 기준에 따라, 중국 도자기 제조공예의 최고 수준을 대표할 수 있는 도자기를 제조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이 공정을 "7501공정"이라 부른다.
이와같이 특별하고 중대한 정치적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중국 경공업부 도자기연구소에서는 40여명의 기술인재를 선발해 연구에 몰두했다. 상당수의 저명한 도자기 예술가들이 당시 이 사업에 참가했는데 그중 "주산팔우(珠山八友)"의 후손과 계승인들을 포함한 유명인사들도 적극 참여한바 있다.
이 전문용 도자기는 매화, 복숭아꽃, 부용 등 화면을 주로 이용했다. 당시 도요에 들어간 도자기는 14,000여점에 달하지만 실제 완성품은 4,200여점이었으며 그중 정품 2,000여점을 선택해 중남해에 보냈고, 나머지는 파괴후 보완용으로 따로 보관해 두었다.
80년대 초, 따로 보관되었던 약 2,000점의 "7501"도자기는 복리로 직원들에게 방출했다. 1997년 "7501"도자기는 경매장에 등장했는데 그중 도자기 그릇 하나가 경매가격 170만원(인민폐)에 낙찰되어 최고 기록을 남긴바 있다. 그뒤로 "7501"는 각 수장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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