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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희태후의 알렉산드라이트 愛
2009-03-31 17: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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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이트(碧璽)는 풍부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세계 가장 특별한 보석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알렉산드라이트는 쥬얼리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며 심지어 현대 중국인들이 익숙하지 못하지만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역사적 연원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서 최초 알렉산드라이트의 출현은 당조시기로 전해지고 있는데, 정관 18년(기원 644년) 당태종이 서정(西征)하면서 알렉산드라이트를 처음으로 얻게 되었으며 옥새로 만들어 간직했다고 한다. 명조때 황제는 환관 혹은 대신들에게 명령해 운남에서 알렉산드라이트와 홍옥, 청옥을 구입하게 했으며 특히 명조 영락(永樂)년간, 스리랑카 국왕은 명성조(明成祖)에게 특산물과 보석을 선물했는데 그중에는 귀중한 알렉산드라이트가 들어 있었다. 청조때 알렉산드라이트는 "피예시", "비샤시" 등 각종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청조말기와 민국시기에 이르러 중국어로 "碧璽(Bi xi)"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자희태후는 알렉산드라이트 팬?

청조때 알렉산드라이트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1급관원과 2급관원이 쓰는 모자위 화령(청조때 황족 또는 고관들에게 하사한 모자뒤에 드리우는 공작의 깃)의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고관들이 패용하는 목걸이 제조에도 사용되었다. 특히 자희태후시기 알렉산드라이트는 중국에서 전례없던 중시를 받게 되었다. 정권을 독점한 자희태후는 비취와 다이아몬드에 깊이 빠져 있었을뿐만 아니라 색채가 풍부한 알렉산드라이트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청조말기 이성무(李成武)가 저술한 "애월선필기"는 자희태후가 즉세한후 수장된 보물에 대해 기재하고 있다. 자희태후의 두발은 알렉산드라이트로 된 연꽃을 밟고 있는데 무게가 36.8냥, 가치가 75만냥에 달한다. 연꽃을 밟고 있는 것은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서양 극낙세계로 간다는 것을 뜻한다. 수장된 자희태후의 금실이불에는 수많은 알렉산드라이트가 박혀 있는데 금실이불의 가치만 해도 8만4천냥에 달하며 각종 진주와 홍옥, 청옥, 알렉산드라이트의 가치는 총 90만냥에 달한다고 한다. 그외에도 자희태후의 관 속에는 수많은 알렉산드라이트로 된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사실 자희태후는 생전에 이미 미래의 무덤속에 대량의 알렉산드라이트 장신구를 방치한 것으로 알려진다. 광서황제 재위 5년(1879년)때부터 광서 34년 (1908)까지 자희태후는 관원들을 명령해 선후로 6차례 무덤속에 대량의 알렉산드라이트를 포함한 보물들을 넣었다.

이로부터 알렉산드라이트에 대한 자희태후의 각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 원인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당시 동양에서의 서양문화 침입이 자희태후가 중국역사상 진정한 "알렉산드라이트 팬"으로 자리매김된 원인이 아닐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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