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 청나라 은괴의 소장
중국 역사에서 은괴의 화폐기능은 한나라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수나라, 당나라시기 이전에는 "은병(銀餠)"으로 불렀고, 송, 금나라시기는 "은정(銀錠)"으로, 원나라시기는 "원보(元寶)"로 불렀다. 이때의 "원보"는 "원나라 보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명, 청시기 백은은 주요 유통화폐로 되었으며 말굽은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부분 원보는 명, 청 시기의 은괴이다.
명나라 은괴는 외관이 우아하다. 현재의 대부분 명나라 은괴는 중국 은괴의 대표적 모양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 영화나 드라마속에서 출현하는 은 원보는 이 기초상에서 예술적 색채를 첨가해 가공한 것이다. 이미 알려진 명나라의 은괴중 가장 큰 은괴는 무게가 500냥에 달하며 주조 장소와 무게 및 공예가 이름 등이 새겨져 있고, 작은 은괴는 가끔씩 연호 등이 새겨져 있다.
청나라 은괴는 모양이 다양하다. 각 지역마다 대표적인 모양이 있었는데 대체로 원보형, 원형, 장방형, 분동형, 패형 등으로 나뉜다.
은괴는 비교적 높은 가치보유기능이 있으며 특히 최근 년래 가격이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 명나라 50냥짜리 은괴는 가격이 30~40만원(인민폐)에 달하며 청나라때의 가장 작은 은괴도 가치가 백원(인민폐)에 달한다.
도자기
명, 청 시기는 중국 도자기 발전사상 르네상스 시기이며 도자기 모양과 무늬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명나라 도자기 발전의 최고봉은 명 영락~선덕시기중 33년간이었다. 청화자기를 예로 든다면 우선 원나라 시기의 외형이 크고, 무거우며 두꺼운 풍격을 변형시켜 적당한 두께와, 외형이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화면이 간결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가정황제시기 도자기 생산은 쇠퇴의 길에 들어섰으며 청나라 강희 대에 이르러 도자기 생산은 또다시 부흥되기 시작했다.
강희 대에 또한 법랑채가 출현했는데 무늬가 튀어나와 입체감을 주며 화면이 우아하여 높은 예술적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옹정시기에 이르러 법랑채 중의 화(花), 조(鳥), 죽(竹), 석(石)은 시, 서예와 일체화되어 화려함속에서 고전미를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건륭 재위 60년간 도자기는 질과 양에서 모두 최고봉을 이루었다. 가치보유와 가치증가의 추세를 보아 청나라 도자기 소장은 강희, 옹정, 건륭 시기의 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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