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뉴스 라디오 언어 교실 블로그
경제     |    문화/교육    |    관광   |    연예오락    |    올림픽    |    재중코리안
CRI 소개 | 조선어부소개/연락방식 | 주의사항 | 게시판
[소설]거미이야기-2
2009-04-15 16:56:47               
cri

《악착하기 그지없군요.》

《새끼가진 놈치고 악착하지 않은 놈 봤어?》

아이의 학비를 대기 위해 나는 집 판 돈으로 자그마한 간이 음식점을 인수해 가지고 양고기 산적점을 차렸습니다. 북경사람들은 특히는 젊은층들은 퇴근하거나 혹은 나들이 가다가도 길가에서 양고기뀀을 둬어개씩 선자리에서 먹고 갑니다. 소수민족의 음식중 그래도 조선족의 랭면과 위글족의 양고기뀀, 만족과 몽고족의 양고기신선로가 북경에서 인기가 있습니다. 양고기뀀과 랭면을 주메뉴로 했는데 예상밖으로 경기가 좋았습니다. 하루 순수입이 적어서 3백원을 오르내렸습니다.

그 녀인도 딸과 함께 가끔 찾아왔습니다. 자그마한 양고기산적점앞에 녀인이 몰고온 고급승용차가 주차하니 주변의 음식점 주인들은 사뭇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녀인의 딸은 양고기뀀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녀인은 양고기가 비만을 초래한다고 하면서 랭면만 청했습니다.

《무척 힘들지요?》

올 때마다 녀인은 나한테 인사말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파출부로 일하기 보다는 기분이 나요. 남의 집 일을 해주는게 아니고 내 가게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일이 고달파도 마음만은 편해요.》

《가게가 작아도 손님이 끓는 것을 보니 나도 가게 하나 차려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세상 못할것이 음식장사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도 막부득한 경우니 하는거지요. 그집같은 경우야 가게보다는 큰 사업을 벌려야지요.》

《저의 뜻은 그런 뜻이 아니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기에도 좋고 부럽기도 해요. 나 절로 한 번 뭔가 해볼 욕심도 생기고요.》

부자들의 눈에는 생존을 위해 아글타글 살아가는 궁한 모습도 부럽고 탐나는 모양입니다.

《벌어다 준 돈을 쓰기보다 자기가 번 돈을 쓰기가 더 기분날 것 같아요.》

또 배부른 흥타령입니다.

《언젠가 이런 꿈을 꾼적이 있어요. 제가 고무풍선을 쥐고 훨훨 날아다니며 황홀하기 그지없는 별천지를 유람하는데 갑자기 고무풍선의 김이 빠지면서 내가 천길 벼랑아래로 곤두박히는게 아니겠어요. 천당에서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런 기분이였어요. 하긴 천당에나 지옥에 가본적은 없지만 어쨌든 말로 형용못할 그런 무서움과 절망감을 감수했어요. 깨고보니 꿈인게 얼마나 다행이였는지 몰라요. 그 꿈을 꾼뒤론 남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훨훨 날아다니기보다는 그래도 편하게 자기 발로 땅을 밟으며 걸어가는 것이 더 안정감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진 사람은 꿈을 꾸어도 별천지우로 훨훨 날아 다니는 꿈만 꾸는 모양입니다. 하루 일에 지치고 나면 잠자리에 들기바쁘게 곯아떨어지는 나에겐 별로 꿈이 없습니다. 간혹 가다 저 세상에 간 남편이 보이는 꿈을 꿀 뿐입니다. 꿈에 본 남편은 언제나 웃는 모습입니다. 꿈에 웃는 남편을 보고는 나는 꿈을 깨고는 웁니다. 꿈에 웃고 현실에 우는 것이 나의 서러움입니다. 그러나 울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인젠 나도 울음을 속으로 삼킬줄 압니다. 울고만 있어서는 밥이 차례지지 않고 아이 공부에 드는 학비가 마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합니다. 악착스럽다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 녀인이 자주 찾아와 배부른 흥타령을 해도 인젠 기분이 나쁘거나 그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아마 내 삶이 고달파서 그런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사람 살아가는것도 사람 나름에 달렸기에 굳이 내가 사는 세계로 남이 사는 세계를 저울질하지 말고 또 넘보지도 말자고 이미 마음가짐새를 가진 탓인지도 모릅니다. 남이 사는 세계에 신경을 쓰면 자연히 부러워나고 질투가 나고 그럴수록 자신이 초라해 보입니다. 하필이면 남이 사는 세계 때문에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와서 나는 녀인의 말을 나하고는 별개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언어로 담담하게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그저 그 녀인이 자주 찾아오는 것이 반가울 뿐입니다.

가게를 차린후 한해 겨울을 보내고 나는 아들이 편하게 피아노공부를 하라고 작은 방 두 개가 달린 세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한달에 집세값이 1500원이지만 가게에서 나오는 돈으로 피아노공부에 드는 비용과 집세값을 감당할수 있었습니다.

꽃샘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 왔습니다. 그날 밤 11시가 다 되여 내가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그 녀인의 딸이 눈물범벅인 얼굴을 해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어서 가서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냐?》

《차사고 났어요…》

그 애는 무작정 내 손을 끌었습니다. 그 애를 따라 간 곳은 3순환도로 북쪽에 있는 자그마한 병원이였습니다. 녀인은 의식을 잃은채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담당의사가 나를 보고 친척인가고 물었습니다. 나는 친구라고 대답했습니다. 담당의사가 나를 데리고 의사사무실로 갔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차사고로 받은 상처는 그리 중하지 않습니다. 손목이 부러지고 이마가 터졌습니다. 그런데 차사고로 류산이 되어 출혈이 심합니다.》

《류산?!》

《임신 3개월이더군요. 환자의 남편한테 인차 련락을 취해주기 바랍니다.》

《홍콩에 있다던데…》

《그럼 전화로 먼저 련락부터 해주십시오.》

《전화번호를 모르는데요…》

《이거 야단났는데. 환자의 딸도 아버지 전화번호를 모르더군요. 친한 친굽니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았습니다.

《먼저 가서 보증금을 무십시오.》

내가 수금하는 창구에 가서 담당의사가 써준 것을 내미니 우선 보증금으로 만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밤중에 저금소가 문을 닫았으니 이튿날 내면 안되는가 하니 절대 안된다는 답이 나왔습니다. 먼저 환자부터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 이미 환자는 살려놨으니 방법을 대서 보증금을 얻어오라는것이였습니다. 돈이 없으면 병치료도 받기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은 턱도없이 모자랐습니다. 하는수없어 나는 가게 주변에 있는 음식점 주인들한테서 돈을 변통해 가지고 병원에 가서 보증금을 물었습니다. 그러곤 울고있는 그 녀인의 딸을 겨우 달래가지고 나의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녀인의 딸을 잠재운후 나는 다시 병원으로 가서 녀인의 곁을 지켰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녀인은 의식을 차렸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사고를 당했나요?》

《전 지금 살고싶은 마음이 아니얘요…》

녀인은 눈물을 짰습니다.

《마음을 진정하셔야 치료를 잘 받을수 있어요. 애는 우리집에 데려 갔으니 시름을 놓으세요.》

나는 아침저녁으로 애들한테 밥을 지어 먹이고 학교로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는 외에 밤낮으로 녀인의 병시중을 들었습니다. 가게 일은 복무원 아가씨한테 맡겨버렸습니다. 며칠 치료를 받은 후 녀인은 응급실에서 골과병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녀인이 만약 인적이 드믄 곳에서 사고를 당했더라면 류산으로 인한 대출혈로 생명을 잃을번 했답니다. 시내안에서 사고를 당했고 또 인차 병원으로 호송된 것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돌던 날 나는 녀인을 부축하여 병원 뜰로 나왔습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기분좋게 얼굴에 맞혀왔습니다.

《벌써 완연한 봄이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녀인은 한숨을 달면서 말을 받았습니다.

《전 오래전부터 봄을 의식하지 못한채 살아왔어요. 인생의 봄은 둘째치고 계절의 봄마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비참하기 짝이 없지요.》

그날 녀인은 나한테 그늘에 가리운 생애의 구석진 곳을 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녀인은 원래 현급 가무단의 무용배우였었습니다. 원 남편은 국영기업소 보위과에서 근무했는데 의처증이 심한 사람이였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나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깁니다. 의처증이 심한 한 사람이 나젊은 색시를 집에 두고 밖에 나갈 때마다 마당에 아주 보드라운 모래를 한벌 쭉 깔아놓고 가는 비로 쓸어놓았답니다. 색시가 나가거나 혹은 누가 들어오면 발자국이 찍히라고 말입니다. 녀인의 원 남편은 마당에 모래를 펴놓는 사람보다 더 의처증이 심한 사람이였답니다. 사람을 시켜 녀인의 뒤를 따르게 한다던가 녀인이 집에 있는 날이면 출근했다가도 느닷없어 집에 뛰여들어 온다던가 하는 것은 보통 일이고 부부합방시에도 기분을 내면 누굴 상상하면서 기분을 내는가 하고 윽박지르고 마지못해 응하면 이게 어디 사람이냐 시체냐 하면서 쥐여팼답니다.

《이런저런 수모는 그런대로 체념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권총 총신을 내 입안에 마구 쑤셔넣고는 눈이 맞은 남자를 대지 않으면 쏜다고 할 땐 정말 환장할 지경이였어요. 한번은 장밤 저를 개처럼 두들겨 패고는 그것도 성차지 않아 사형수를 사형하듯이 저를 꿇어 앉히고는 권총을 내 뒤통수에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니겠어요. 다섯까지 세기전에 이실직고 하지않으면 방아쇠를 당긴다고 하면서 안전장치까지 푸는게 아니겠어요. 전 그 때 제정신이 아니였어요. 실신하기 직전이였지요. 다섯까지 셀 때까지 제가 말이 없으니 정말 쏜다고 하면서 방아쇠를 당기는게 아니겠어요. 장탄하지 않은 총에서 격침소리가 찰깍하고 울리는 순간 저는 총에 맞은 사형수처럼 앞으로 꼬꾸라졌어요. 사실 전 그 때 영영 그 사람곁에서 떠나갔어요.》

그 일이 있은후 녀인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답니다. 원 남편이 울고불고 치고박고 얼리고 닥치고 했지만 녀인은 강경하게 리혼을 주장해 마침내 자유로운 몸이 되었답니다. 홍콩에서 사업한다는 남편은 그 후에 만난 사람이랍니다.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북경에 들어와 한 나이트클럽에서 전속 무용수로 있을 때 사귄 사람인데 나이는 50살을 넘긴 홍콩인이얘요. 원 부인과는 리혼했다고 했어요. 자식은 딸 둘밖에 없는데 원 부인이 맡아 기르고 그 분은 부양비만 댄다고 했어요. 저와 결합할 때 그 사람의 요구는 단 한가지밖에 없었어요. 그 요구가 바로 아들 하나 낳아달라는것이였어요. 말하자면 제가 씨받이가 된셈이지요. 그러나 전 딸의 장래를 위해 달갑게 받아들였어요. 자식을 위해선 전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했던거얘요. 그 분도 저와 딸한테는 잘해주었어요. 제가 아들을 낳으면 홍콩의 재산을 정리해가지고 북경에 와서 살겠다던 그 분이 얼마전에 회사가 부도난 충격을 못이겨 심장마비로 돌아갈줄이야…》

녀인은 땅꺼지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참 멀거니 먼곳을 응시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별장도 그 분의 이름으로 되어있었는데 며칠전 경매에 부쳐졌어요. 제가 몰고 다니던 승용차까지도요. 전 인젠 중 잃고 절까지 빼앗긴 신세가 돼버렸어요. 너무나 기막혀서 술을 마신후 마지막으로 차를 몰아본다고 차를 가지고 나왔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거얘요. 언젠가 제가 고무풍선을 쥐고 날아다니다가 천길벼랑에 떨어진 꿈을 꾼 얘기를 한적이 있지요. 이제와서 보면 그 꿈이 내 운명에 대한 징후적인것이였어요. 그 꿈대로 전 천길나락에 떨어졌어요.》

녀인의 신세에 한껏 동정이 갔습니다. 남편잃고 집까지 팔아버린 내 신세와 비슷했습니다. 다름 점이라면 지금의 상태에서 녀인에게는 나처럼 역경을 헤치고 나갈 용기가 없는 그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요.》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도 않고 설사 그 구멍을 발견했다고 해도 솟아날 용기가 없어요.》

《그 용기는 모성애가 줄거얘요.》

《그럴까요…》

새끼거미들이 어미거미 몸에 까맣게 달라붙어 어미거미의 살을 뜯어먹고 있습니다. 어미거미는 미동도 하지않고 달갑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에그 쯧쯧쯧…》

그 광경을 지켜보며 엄마는 연신 혀를 찼습니다.

《부모신세도 저 거미와 다를게 없어.》

저으기 감개에 젖은 아버지의 목소립니다. 그 말에 엄마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녀인은 당분간 자기 딸을 맡아달라고 나한테 부탁하고는 어디론가 떠나갔습니다. 둬달 소식마저 없다가 하루는 녀인이 역시 화사한 모습으로 내앞에 나타났습니다. 옷차림새도 종전과같이 귀부인차림입니다. 녀인은 내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한테 큰절을 올리겠다는 것을 내가 굳이 말렸습니다.

《여러모로 고맙구요, 그보다도 저한테 좋은 조언해주신 그 은혜 평생 잊지않을거얘요.》

내가 해준 조언이 뭔지 나로선 기억마저 없습니다.

《세상 모질게 살아갈 용기를 모성애가 줄것이라는 그 말뜻을 제가 뒤늦게나마 터득했어요. 감사해요. 모성애앞에서는 범도 자리를 피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내 경우에 비추어 다시 풀이한다면 모성애만 가지면 뭐든지 달갑게 받아들일수 있고 무슨 일이든지 해낼수 있어요.》

녀인은 그 사이 심수에 새집을 장만했다고 하면서 그날로 딸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심수에 외국인이 꾸리는 피아노학원이 있다고 합니다. 교학수준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녀인은 무슨 일자리를 찾았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옷차림을 보아선 상당히 수입이 높은 직업같습니다. 그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내 삶이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구질구질한 삶이 될지라도 아이만은 꼭 피아노연주가로 키우겠어요.》

아이를 꼭 피아노연주가로 키우겠다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어쩔수없이 저 세상에 가 있는 남편을 떠올렸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웃는 모습이였습니다.

어미거미의 살을 다 파먹은 새끼거미들이 어디로 제마끔 흩어져 가버렸는지 거미줄엔 빈 깝대기만 남은 어미거미만 매달려서 바람부는대로 거미줄과 함께 흔들립니다.

엄만 빈 깝대기만 남은 어미거미를 거미줄에서 떼여내서앞마당에 묻어주었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밤새껏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면서 모지름을 쓰다가 나를 낳았습니다. 그러곤 대출혈로 20리 떨어진 공사병원으로 소수레에 실려가던중 숨을 거뒀습니다. 그 뒤로 아버진 거미줄만 보면 죄다 거둬냈습니다. 남의 집에 쳐진 거미줄까지도 말입니다. 하여 아버진《거미줄》이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간혹가다 아버지의 친한 친구들이 《거미줄》이라고 아버지 별명을 부르면 아버진 꼭 이렇게 규정해줍니다.

《이봐, 거미줄이 아니고 거미야.》

지금도 나는 거미줄에 데룽데룽 달린 빈 깝대기만 남은 어미거미를 그려보면서 아버지한테서 들은 거미이야기에 담긴 그 뜻을 다시다시 음미해봅니다. 언젠가는 내 아들한테도 거미이야기를 해줄 생각입니다. 어미거미는 영특하고 이악스럽고 악착한 미물이지만 그 최후만은 아주 처절하고도 장렬하다고 말입니다.


1 2
 
소설
v [소설]미향이-3 2009-03-30 16:01:51
v [소설]미향이-2 2009-03-27 15:10:11
v [소설]미향이-1 2009-03-17 16:56:46
v 《 나 + 너 =?》 2009-03-09 17:02:54
v [소설]또 하나의 나 2009-03-04 16:41:23
이름: 메일주소:
내용:
  리플보기    뉴스 리플보기
매주방송듣기
   
프로그램 편성표
 
 
 
서비스 홈   
 
 
 
 
  ©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 10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