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 계열소설상 수상작(2000년)

김훈
《녀자의 수난사는 대체로 밤에 시작된다.》
나와 그녀의 첫만남을 기억에 떠올려보면 그 어느 첩보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련상시켜 지금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5년전, 몽골로부터 갑자기 들이닥친 한류가 앙상한 가로수 나무가지에 처절하게 매달린 몇 안되는 말라버린 나뭇잎의 림종을 재촉하던 그런 계절의 어느날이였다.
그날 나는 서재에 죽치고 앉아 우리 민족녀성운명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 전날까지만해도 나는 한 잡지사의 청탁으로 쓰게 될 정기칼럼을 구상했다. 처음에 난 칼럼이 뭔지도 몰랐다. 그게 뭔가고 잡지사의 친구한테 물으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칼럼이란 신문, 잡지에서 시사문제, 사회와 풍속, 인생 등 문제를 다룬 글을 전문 기재하는 특별란인데 칼럼을 다루는 사람을 칼럼니스트라고 한다면서 나보고 한번 잘 해보라고 했다. 혼탁한 세상에서 자기 인생도 설계할줄 모르는 사람이 일약 세상은 어떻고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거창하게 운운하는 지성인으로 일약 변신한 셈이다.
세상과 인생을 운운하자면 우선 선인들의 명언록이나 잠언록 같은걸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계격언록을 뒤적이다가 눈에 쑥 들어오는 글 한줄을 발견했다.
《녀자의 수난사는 대체로 밤에 시작된다.》
가석한 것은 이말을 대체 누가 했는지 책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녀자의 수난사는 대체로 밤에 시작된다는 이 말의 뜻을 되새기노라니 언젠가 보았던 한 소설이 떠올랐다. 조선조시대 씨받이운명을 그린 소설이였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인 씨받이처녀는 씨를 받기위해 처음으로 사내를 받아들인 그날밤에 대해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
《나의 운명은 바로 그날밤에 결정지어졌다.》
말하자면 씨받이로서의 그 후 비참한 운명이 바로 첫 사내를 대하던 그날 밤에 결정지어졌다는 얘기다. 말을 바꾸어 말하면 그 녀인의 수난사는 바로 그날밤부터 시작되였다는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쳤다.
가난으로 씨받이 신세가 되던 증조할머니 세대의 녀성들의 수난사, 망국의 설음을 안고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 세대의 녀성들의 수난사, 《정치몽둥이》가 날아다니던 그 시절 우상정치, 《무산계급독재정치》의 순장품으로 된 어머니 세대 녀성들의 수난사, 격변하는 시대에 가치관념의 혼란으로 방황하고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지금 세대 녀성들의 수난사 이런식으로 쭉 선을 그어내려 가노라면 녀인의 수난사로 민족의 비극을 재조명할수 있지않을가.
기발한 생각같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바로 그거다. 녀자의 수난사가 시작된다는 밤을 재조명하자. 그 밤이 숙명적인 밤이던 치욕적인 밤이던 녀자로 다시 태여나는 성스런 밤이던간 그 밤을 그리면 녀성의 수난사가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내가 제풀에 흥분해가지고 해당 자료들을 열독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송수화기를 드니 가녀리지만 약간은 귀맛좋게 들리는 젊은 녀성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안녕하세요? 송철선생님 계십니까?》
《네. 바로 접니다. 누구신지?》
《외람된 물음이지만 글 쓰는 송철선생님 맞죠?》
《글 쓴다기보다 글장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뉘신지?》
《저의 이름을 대도 선생님께선 모르실거얘요. 그저 선생님을 숭배하는 팬이라고 생각해주시고 저의 청을 들어주시면 고맙겠어요.》
《청이라니?》
《언제부터 선생님을 한번 찾아 뵙고 싶었어요. 귀한 시간이지만 한번 짬을 내서 저를 만나주시면 큰 영광으로 간주하겠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팬의 목소리다. 한번 만나만 줘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이런 말을 상급지도자에게 한다면 아첨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라 하겠지만 문학팬들에게 있어서는 아첨이라고 하기보다 경모의 마음이 다분히 깔린 소리라고 표현해야 한다.
한것은 팬들의 말은 진솔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니까. 10년전만해도 이런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다. 그때 나의 팬들은 내 작품이 나가기만 하면 전화를 걸어왔고 편지를 보내왔으며 어떤 극성팬은 사랑을 고백해 오기도 하였다. 지어 한 극성팬은 울면서 내가 비록 처자식을 둔 사람이지만 영원히 문학의 우상, 사랑의 백마왕자로 마음에 모시고 일생을 나만 지켜보고 살겠다고 했다. 그 때는 찬사를 보내주고 열광하는 팬들이 귀찮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의 60년대 후반기처럼 인간령혼을 정화시키는 작가가 《피고름 짜는 의사》나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졸부보다 못한 그런 세월이 오면서 글쟁이들이 머리를 잡아뜯으며 쓴 글을 내주는 이가 없어 자기 호주머니의 돈을 털어 출간하고 또 그 책을 보아주는 이가 없어 창고에 묵여두는 그런 가련한 신세로 전락했다. 누군가 이런 현상을 두고 작가의 타락이라고 했고 또 누구는 작가의 타락이 아니라 문명의 타락이라고 했다. 진짜 누가 타락하고 또 누가 누구를 타락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문분출하고 글을 쓰는 글쟁이들이 12억 인구 모두 돈을 벌라는 세상에서는 어딘가 정신상태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문학팬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그 대신 듣기에도 성대에 이상이 생겨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같아 보이는 사람이 목갈린 소리로 내지르는 단발마적인 괴성도 열광하는 가수팬들의 눈물, 코물, 오줌까지 짜내게 하는 세월에 내가 한 번 만나주면 큰 영광으로 간주하겠다는 팬이 나타났으니 반갑다기보다도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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